수위는 다르지만, 구조는 같았다
폴라 화이트 목사가 트럼프 대통령 바로 뒤에 서서 말했다. "당신은 배신당하고, 체포되고, 거짓으로 고발당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보여 주신 익숙한 패턴입니다." 부활절을 며칠 앞둔 4월 1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였다. 트럼프는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100여 명의 종교 지도자들은 그 자리를 지켰다.
같은 주, 지구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졌다. 4월 5일 여의도순복음교회, 소강석 목사가 이재명 대통령을 소개하며 말했다. "뼈저린 절망을 경험하셨던 이재명 대통령. 실개천 출신이지만 결코 개천을 잊어버리지 않으며 국민 화합에 올인하는 모습이 한국교회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청중을 향해 두 번 박수를 유도했다.
수위는 다르다. 폴라 화이트는 트럼프의 생애를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직접 대입했다. 정치적 칭찬이 아니라 신학적 주장을 한 것이다. 소강석 목사는 거기까지 가지는 않았다. "고생 많으셨다, 멋지다"에서 멈췄다. 다행히 멈추어서 괜찮은 걸까?
당연히 괜찮지 않다. 정치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 몰라도, 종교에서 봤을 때는 최악의 방법이다. 종교인의 발언 수위가 다르다는 의미지, 작동 원리가 다르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두 장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종교 지도자가 종교 행사에서 정치 권력자를 향해 영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교회가 무대를 제공하고, 정치인은 그 무대에 올라 신앙 공동체의 언어를 빌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소 목사는 제 오랜 친구"라며 분위기를 띄웠고, 트럼프는 "그들이 나를 왕이라 부른다"고 농담했다. 교환은 이미 성립한다. 교회는 정치적 존재감을 얻고, 정치인은 영적 보증을 얻는다.
차이가 있다면 동기 쪽이다. 트럼프는 수세에 몰려 있다. 이란 전쟁 비판, 지지율 하락, MAGA 내부 균열. 이 상황에서 복음주의 기반은 마지막 방패에 가깝다. 폴라 화이트가 트럼프를 예수에 비유한 것은, 흔들리는 지지자들에게 "이건 정치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의 상황은 반대다. 높은 지지율에, 국회 다수당. 교회의 도움이 절실한 처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73개 교단 연합 예배에 직접 가서 축사를 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 기독교 표를 관리하려는 계산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에서 대통령이 부활절 연합 예배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관례화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안 가면 "교회를 무시한다"는 프레임이 생기고, 가면 소강석 목사 같은 사람이 박수를 유도하는 무대를 제공하게 된다. 트럼프에게 교회가 방패라면, 이재명에게 교회는 보험이다. 동기는 달라도, 교회가 정치적 지렛대를 쥐는 구조는 같다.
흥미로운 것은 반발의 양상이다. 폴라 화이트의 발언에 대해서는 보수 복음주의 안에서도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가톨릭 신학자, 침례교 목사, 보수 팟캐스터까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백악관은 행사 영상을 공식 채널에 올렸다가 조용히 삭제했다. 불완전하지만, 자정 작용이 작동한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소강석 목사의 발언에 대해 한국교회 안에서 공개적 비판이 나왔는가. 73개 교단이 참여한 연합 예배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줄줄이 올라와 자기 교회 직분을 내세우며 축사를 하는 풍경에 대해, 교회 내부에서 "이건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렸는가.
폴라 화이트가 처음부터 트럼프를 예수에 비유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 관계가 대선 캠프 자문을 거쳐, 취임식 기도로, 백악관 공식 직책으로, 결국 "당신의 고난은 예수의 고난과 같다"는 발언까지 도달하는 데 20년이 걸렸다. "수고하셨습니다"에서 "당신은 예수와 같습니다"까지의 거리는 처음에는 멀어 보인다. 하지만 한 번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 사이를 메우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소강석 목사의 박수 유도는 폴라 화이트의 신성모독에 비하면 한참 약하다. 하지만 그 약함이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거기까지 가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문제는 수위가 아니라 구조다. 교회가 정치권력에 무대를 내어주고, 그 무대 위에서 영적 언어로 권력을 칭송하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수위는 언제든 올라갈 수 있다.
두 장면 사이에서 떠오르는 물음은 결국 하나다. 부활절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었을까? 적어도 2000년 전에 부활한 예수를 기념하는 행사에 대통령을 상찬하는 예배는 없어야 한다.
안타까지만 지금 세계는 온통 전쟁 이야기로 시끄럽다. 적어도 교황 레오 14세는 "손에 피가 가득한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않으신다”고 했다. 적어도 개신교의 유명 목사들도 이런 설교나 말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몇 교단에서 이단으로 지목한 천주교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럴 땐 정말 개신교회에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다행히라고 해야 하나, 출석 교회 목사는 설교 시간에 전쟁에 반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