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유영 Apr 04. 2020

부모가 만든 세상을 깨고 진짜 자아를 찾았다

타라 웨스트오버 <배움의 발견> 리뷰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배웁니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나이에도,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개념을 익히고 습관으로 만들어가지요. 아이들은 엄한 가르침을 통해 질서와 개념을 익히기도 하지만, 더 좋은 방식이 있습니다. 최근 개발된 기법은 아니고요. 오랜 미래라 불리는 방법, 스토리텔링입니다. 이야기를 통해 공동체 질서와 법규, 전통과 가치를 전수하는 방법이지요.


스토리텔링 교육은 글이 발달하지 못했던 고대 사회에서부터 행해진 유구한 교육법입니다. 물론, 그 시대에만 사용한 방법은 아닙니다. 내전과 기근에 시달리는 현재 아프리카 난민 캠프에서도 여전히 찾을 수 있는 현상인데요. 실제 글을 몰라도 되고, 잃어버린 터전을 기억하기 위한 전승에도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문명과 경제가 발달한 사회에서도 통하는 방식입니다. 동화나 여러 미디어 콘텐츠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으니까요. 아이들 배변 교육도 익숙한 캐릭터가 나오는 이야기로 시작할 정도지요. 건강히 자라려면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거나, 부모와 조부모에 감사하게 하는 마음도 만화나 노랫말로 교육받습니다.

배변 훈련은 뽀로로와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스토리텔링으로 습득한 가치관은 어지간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사람은 익숙한 이야기가 구성한 환경에 적응합니다. 적응하지 못하면 불편해하고, 불편한 환경에서 사람은 예민해지고 쉽게 지칩니다. 스토리텔링으로 새겨진 인식은, 한 사회에서 도덕이나 규범이 빠르게 바뀌지 못하도록 붙잡는 닻과 같습니다.  


물론, 스토리텔링 교육이 언제나 순기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역기능도 존재합니다. 사람을 구성하는 이야기가 한 사람 인생을 파멸로 이끌기도 하니까요. 최근, 타라 웨스트오버가 쓴 비망록 <배움의 발견>을 읽었습니다. 어긋난 스토리텔링을 통한 배움이 얼마나 사람을 비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돌이켜 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타라를 구성한 이야기는 주로 종교·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자주의(경전을 상황과 시대에 맞게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믿는 신앙 양태)와 보수성을 드러내는 개신교의 한 분파(또는 이단)인 모르몬교가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이야기 전달자인 타라의 아버지는 모르몬교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할 극단주의자였습니다. 어느 정도였냐고요?


아버지는 정부가 강제로 우리를 학교에 가도록 만들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정부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일곱 자녀 중 네 명은 출생증명서가 없다. 가정 분만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의사나 간호사에게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료 기록도 전혀 없다.(<배움의 발견> P.12)
타라의 부모는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로 반정부주의자들이 되었지요. 종말을 대비해 집에 무기와 석유를 비축했습니다

타라의 아버지는 곧 종말이 도래해 지구가 파멸한다고 믿었습니다. 정부는 일루미나티 지배 아래 있어서 공교육과 각종 사회 시스템은 사탄의 지시를 받는다고 여겼고요. 그래서 막내딸 타라를 포함해 7남매는 공교육과 병원을 이용해 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타라의 아버지는 가족 모두가 다친 교통사고나 폭발 사고로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도 병원 치료를 거부하지요.  


7남매는 학교에 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책도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대신 믿음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종말에 때에 살아남기 위해 복숭아 병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는 고철장에서 폐철을 줍고, 각종 풀과 꽃으로 약 대신 사용할 기름을 짜는 어머니를 돕는 일을 했죠.


극단적 종말론 이야기에 사로잡힌 타라 가족은 심각한 폭력 문제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타라와 언니들은 친오빠 ‘숀’에게 심한 가정폭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머리채를 잡혀 내동댕이 당하고, 변기에 머리가 박히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폭행에 시달립니다.(저자는 폭력의 참혹한 과정을 너무 자세히 설명을 해서 읽기 불편한 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믿는 이야기는 가족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어 가지요. 화상이나 각종 질병 때문에 고통에 시달려도 이들은 약 한 번 먹지를 못합니다.

타라 아버지의 이야기 교육에서 텍사스주 '웨이코 사건'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요. 웨이코 사건은, 다윗파라는 사이비 단체와 정부의 갈등에 많은 사람이 희생한 실제 사건입니다

자의식이 생기면서 7남매는 이 집에서 떠나려는 시도를 이어갑니다. 이 책을 쓴 타라도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벗어나려 마음먹는데요. 소녀와 여성 사이에 선 나이가 되었을 때, 타라는 부모에게 대학에 가겠다고 말합니다. 먼저 집을 떠나 대학에 진학한 타일러 오빠가 타라에게도 대입을 권하면서 마음을 굳힌 것이지요. 미국은 ‘홈스쿨’ 제도를 인정하는 대학이 많습니다. ACT(대입자격시험)을 치르고 학교가 요구하는 점수 이상이면 대입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타라의 아버지는 대입을 반대하지만, 정규 교육을 받은 적 없는 타라는 결국 대입에 성공합니다. 그것도 동갑내기들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였습니다. ACT 교재로만 공부 대입에 성공한 것이죠. 일루미나티의 세뇌를 우려하면서도 타라는 대학에 입학합니다. 어린 딸은, 아버지가 구축한 이야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인데, 그 이야기 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사실 타라는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갔습니다. 음악학사가 있으면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나 음악 관련한 업무를 맡을 수 있으니까요. 집과 교회에서 노래로 인정받았던 터라, 졸업 후 교회에서 일하면 집에서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에서 만난 역사 과목을 통해 자신의 세계가 조금씩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나폴레옹과 장발장 중 누가 역사적 인물이고 누가 허구의 인물인지 구분이 안 됐다. 두 사람 모두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배움의 발견> P. 242)
"그런 걸 가지고 농담하면 안 돼. 농담할 주제가 아니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교실에서 나갈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코트의 지퍼가 고장 난 척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러고는 바로 컴퓨터실로 가서 내가 질문한 그 단어를 검색했다. 그 단어는 바로 '홀로코스트'였다.”(<배움의 발견> P. 252)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타라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해, 흔히 상식이라 불릴 지식이 없었으니까요. 교과서를 읽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미술 과목은 그림만 보고 넘겼고, 음악 과목은 CD만 듣고 시험을 치렀지요. 대학에서 무언가 배울수록 타라의 세계는 혼란을 경험합니다. 깨어지기도 하지만, 변하지 않기 위해 저항하기도 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자기를 구성하던 스토리텔링이 무너지는 상황을 어떤 이가 쉽게 받아들일까요.

대학 학위를 받는 타라 웨스트오버. 부모(특히 아버지)가 이야기로 만들고 자녀에게 주입한 세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아를 찾은 여성이 되었습니다.

변화는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일어납니다. 타라는 역사학을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대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대학원 과정도 마치고 박사 논문까지 제출하지요. 이 과정에서 가족과는 큰 갈등을 이어갑니다. 타라의 세계는 이미 아버지가 쌓아 올린 스토리텔링에서 벗어났고, 가족들은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는 일입니다.


물론 타라도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하지요. 자기가 배움으로 구축한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지, 내적 갈등을 계속 경험합니다. 정말 읽는 내내 가장 힘겹고 답답한 부분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니, 주변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많은 사람이 떠오르더군요. 가족과 깊은 애착 관계에 있지만, 함께하면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들 말이지요.


책 말미에 타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사는 자기를 고백합니다. 그가 과거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세계로 어떻게 진입했을까요. 그리고 이전 세계에 여전히 머무르는 부모, 언니들과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 것일까요. 폭력과 억압을 부추기는 세계를 이룬 스토리텔링과 자유와 진보를 일으키는 세계를 구축한 스토리텔링은 어디서 그 차이를 찾아야 할까요.


<배움의 발견>의 원제는 <Educated>입니다. 고등 교육 기관에서 정식으로, 조직적으로 가르침으로써 개인의 잠재된 능력, 재능을 이끌어내 발전시킨다는 뜻이지요. 저는 취업을 위해 학위를 취득하는 고등 교육은 신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배움의 발견>을 읽고 ‘우리를 이룬 스토리텔링을 객관화하고 과학적으로 살피며, 더 나은 이야기를 찾는 과정으로 고등 교육이 역할을 감당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타라의 이야기를 보며, 그의 인생을 응원하는 팬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타라가 이 비망록을 남긴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요. 자기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상기하도록 돕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기 인생 스토리텔링을 통해 많은 사람이 스스로 교육과 배움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려는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요.


타라는 이 책으로 ‘타임’지가 선정한 2019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이 되었습니다. 개인의 세계관 변화 여정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이지요. 500쪽이 넘는 조금 두꺼운 분량, 참혹한 가정폭력 묘사와 더딘 심경 변화가 답답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한번 읽어 보면 좋겠습니다. 지금 자신의 세계에서 떠나려는 사람은 분명 어디선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덧말: 특정한 가치관(또는 종교)에 머무르고 있다면 꼭 한 번 읽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내 세계를 이룬 스토리텔링이 무엇에 기인했는 지 살피는 여정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는 계획이 없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