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기를 모래폭풍보다 더 걸출하게 뱉어내는 이 사람. 그는 신성한 말씀을 자기가 그 주인이라도 되는 냥 오른손으로 왼손으로 비벼댑니다. 경전을 신봉하라 배운 사람들의 분노와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통에, 군중은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 모습은 마치 ‘펭수’의 힙함에 휩쓸리는 원로들의 덕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그를 향해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곧 추종자가 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남자가 불러온 것 같은 거대한 자연 현상이, 한 도시를 둘러싸 총공세를 취하려는 (IS로 추정되는) 무력 단체마저 무력하게 하거든요. 군중을 살린 힘 앞에 의심으로 일관할 도리가 없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무력 단체를 피해, 그를 따라 광야로 나섭니다.
그가 일으킨 (듯 보이는?!) 기적에, 사람들은 광야로 알 마시히를 따라 나서는데
그가 행한 기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알 아크사 모스크에 갑자기 등장한 그는, 총에 맞아 죽어가던 아이를 살린 (것 같은) 기적으로 중동 지역 종교 지도자와 정부, 정보기관에 BTS마냥 뜨겁게 주목받습니다. 이렇게, 이 힙한 구원자는 등장서부터 ‘알 마시히’(메시아)로 추앙받게 됩니다.
그런데 웬걸. 중동 지역의 지도자로 남을 줄 알았던 그가 돌연 미국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의 빠돌이 집단은 중동 오지에 내버려 둔 채, 자신의 찐 목적이었던 나라로 날아가 버린 것이지요. 알 마시히는 이곳에서도 자신만을 바라고 모여든 수많은 군중 속에 섭니다. 그리고는 이번엔 끝없는 침묵을 선사합니다.
그의 첫 번째 대리인 역할을 자처한 자의 입에서 “그분에게 계획이 없어”라는 한탄이 터져 나올 때까지 그냥 짱박혀 있는 거죠. 노숙자 행색으로,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퍼 자는 퍼포먼스를 벌이면서 말입니다.
왜? 왜였을까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메시아‘는 이렇게 극단적인 대비와 암시를 이용합니다. 이 작자는 대체 누구고, 대체 뭐 하자는 것이며, 대체 누굴 위해 온 것인지를 계속해서 떡밥만 던져댑니다.
폭풍, 아니 강력한 토네이도 속에서 유유히 나타난 알 마시히. 중동에 있던 그가 갑자기 미국으로 이동해 등장한다.
개신교 덕후인 제게, 정신적으로 치명타를 허용한 몇 대사가 있었습니다. 그 첫째가 바로 저겁니다. “그분에게 계획이 없어”라니요! 이거 뭐 기생충 히어로 '기택'인가요? “아들아, 자고로 무계획이 실패할 수 없는 계획이다.”구원자가? 메시아가?
그 침묵과 고독에 이겨내지 못하고 한 말씀 주십사 매달리는 추종자에게 그가 내뱉는 한 마디는 한술 더 뜹니다.
무슨 소리야? 네가 나 여기 데리고 왔잖아!
이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슬픈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제 질문에 신이 침묵했기에세상 무게에 밟힌 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 병들 정도로 신에게 토라졌던 수많은 순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사람들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입은 (것 같은) 바로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야, 내가 여기 오자고 했니? 네가 멋대로 여기 끌고 왔잖아.” 혹시, 이 말이 고구마 10개 먹은 답답함을 주나요? 대리인을 자처한 그 사람은 무척 당황하고 답답해했지요. 그런데 전 오히려 너무 통쾌해,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마저 들더군요.
전쟁 같은 자기 삶 속에 신을 소환한 우리가 바라는 건, 신적 권위도 신비한 기적도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소망, 누군가 내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거란 믿음, 일어설 힘이 없을 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랑을 바라는 것일 겁니다. 근데 거기다 대고 “응, 이거 다 내 계획 아님, 끝” 이게 쿨한 건가요? 펭수도 이렇게 방송하진 않을 겁니다.
알 마시히를 모셔왔지만, 그가 "계획이 없다"고 느낀 시골 교회 목사. 그런데 이 말에 그는 메시아의 길을 안내하는 대리인을 자처하게 된다.
우리 믿음은, 아니 그냥 누군가에게 주워들은 신앙적 메시지 대부분은 이런 맥락과 완전히 반대 자리에 있습니다. 그 허울 좋은 메시지의 대부분은 간간히 주어지는 심적 위로에 기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혀 살거나, 해결되지 않는 상처에 둘러싸여 자기 연민과 자기 위로를 이어가는 게 신앙의 전부인 양 여기게 됩니다.
그 좁은 신앙 안에 갇히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와 대면하고야 말겠다는 고집불통 추종자들처럼 응어리만 쌓이게 됩니다. 인생의 문제들이 메시아를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그는 정말 무엇을 주러 온 걸까요?
앞으로 몇 가지 주제를 통해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메시아 시즌 1에 공개된 것만큼의 이야기와 그 숨은 의미들을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