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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Sep 11. 2021

주차비가 제일 아까운 걸 어쩌라고

소비에 대한 생각이 다른 부부의 갈등 by 믹서

오전에는 안산, 오후에는 서초.


하루에 스케줄  개였지만 괜찮았다.   실내 인터뷰에,  시간 내외로 끝날 터, 크게 힘든 촬영은 아닐 거니까. 다만 오빠가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해서  피곤하겠구나 싶은 정도. 저녁엔 맛있는  먹으며 피로를 풀면 좋겠다. 오늘은 불금이기도 하다. 야호!


이렇게 계획대로 착착 하루가 마무리되었다면 얼마나 평화로웠을까. 하지만 오늘은 평화는커녕 1 동안  욕을 하루에   날이 되시겠다. 지금부터 하소연 스타뚜.


아침 10시, 안산의 한 법조빌딩에서 촬영 스케줄이 있었다. 8시부터 한 시간 반을 달려왔다. 법원 근처라 그런지 큰 법조빌딩이 여러 개였다. 건물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아 주위를 몇 바퀴 돌았다. 그러다 제일 눈에 잘 띄는 주차장 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무려 유료 주차장이었다. 정확히 우리가 촬영할 건물인지 아닌지 확인하지 않고 오빠는 일단 차를 넣었다.


"오빠, 여기 ㅇㅇ 법조빌딩 맞아?"
"몰라. 다른 데는 주차장이 없는 것 같아"


법조빌딩인데 주차장이 없다고? 처음 와서  몰라서  찾는 거겠지. 10 뒤쯤 도착 예정인 동료 C에게 전화를 했다. 우리가 주차를 다른 빌딩에 했으니, 도착하면 주차장 좀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촬영 장비를 들고 거리를 빙빙 돌다가 앗! 찾았다! 우리가 찾던 건물과 주차장 입구!


근데 오빠는 별로 반응이 없었다. '설마 다른 건물에 차를 그대로 두려고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반짝 든 순간, 오빠는 배고프다며 편의점에 들어갔다. 난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불길했다. 폭풍 전야의 기운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색하게 앞뒤로 거리를 좀 두며 걷던 그때 막 도착한 C를 만났다. 쉽게 주차장을 찾은 C는 정확하게 ㅇㅇ 법조빌딩에 차를 댔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촬영 차 방문한 건물에 주차를 하면 보통 주차권을 받는다. 주차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시내의 유료 주차장은 주차비가 만만찮기 때문에 주차권을 챙기는 일은 꽤 중요하다. 그런데 오빠는 이런 사실을 다 알면서도 주차권이 나오지 않는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댄 것이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유료 주차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주차권이 보장된 주차장이 버젓이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 주차를 한 것이다.


우리가 다른 건물의 유료 주차장에 주차한 사실을 안 C는 물었다.


"어! 여기 ㅇㅇ 법조빌딩 주차장으로 차를 옮기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2초간 정적이 흘렀다. 평소 같으면 뭐라고 오빠가 대답을 했을 텐데 묵묵부답이길래 내가 반사적으로 대답했.


"그냥 다른  두고 주차비는 자기가 내겠대. 장거리 운전하고 나니 피곤하고 귀찮아서 그런 가봐"


찌릿. 오늘 한바탕 전쟁을 치르겠구나. 강한 확신이 엄습했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주차비가 세상에서 제일 아까워


사람마다 민감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같은 경우는 그게 주차비다. 납득하기 힘든 주차비를 내야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다. 공영 주차장은 그나마 괜찮은데, 사설 유료 주차장은 요금이 살인적이어서 신경이 곤두설 때가 종종 있다.


나와 달리 오빠는 주차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서울 시내 다니면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거다. 촬영 장비 때문에 차를 끌고 다녀야 하므로 주차비가 제작 비용에 엄연히 포함되는  모르냐며 되려 내게 묻는다. 이성적이고도 논리적인 말투로. 주차비 내기 아까우면 그냥 걸어 다니라고 성을  적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주차비 때문에 싸우는 일이 잦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 내가 꼬리를 내리지만, 요만큼이라도 이해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한 마리의 야수가 되어 오빠를 윽박지른다. 주차비 줄이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거나 최대한 아끼지 않는 오빠를 질책한다.


오늘이 딱 그랬다. 주차비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오빠가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주차비를 지출하게 생긴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일어나기 일보직전이었다.


마지막으로 오빠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촬영 진행 중에 오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촬영이  시간을 넘을  같아. 촬영 끝나고 근처에서 C 점심 먹으려면 얼마간  주차를 해야   같은데, 헣게 되면  시간  주차 요금이 나올 거야"


그러니까  말은, 지금이라도 차를 옮겨서 주차를 다시 하라는 말이었다. 지금 촬영이 진행되는 바로  건물 주차장으로! 그러나 오빠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주차비 신경 쓰지 말고 촬영이나 하세요. 어차피 주차비는 우리 출장비에 포함된 거니까"


...   왔다. 속에서 화산 폭발이 났다. 일하는 중이니까 침착하게 안정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전쟁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촬영 시간도 평소보다 길어졌다. 촬영이 끝난  결국 C 점심도 같이  먹고 어색하게 빠이빠이했다. 서둘러 차를 빼야 했기 때문이다.


5천 원이 불러온 파급


주차비는 5천 원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나오진 않았다. 그러나 내 마음속은 활화산으로 지글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돈 문제가 아니다. 오빠의 태도 지적으로 방향을 잡았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했다.


"5천 원이 문제가 아니라 주차비를 대하는 오빠의 태도가 맘에 안 들어"
"아니, 너는 5천 원이 아까워서 그러는 거잖아"
"5천 원 때문이 아니라니까"
"5천 원 아까우니까 오늘 내가 점심을 안 먹으면 되겠네"


오빠는 폭주했다. 지그시 액셀을 밟고 도로를 달렸다. "5  때문에! ~~~"라며 괴성을 질렀다. 나는 나대로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주차비에 예민한  몰라?", "5  때문에 이러는  아니라고!", "  듣고 있니?", "이런 삐삐야!" 등등을 반복하다 지쳐 쓰러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서초에 왔다. 안산에서 서초까지 엄청 달렸나 보다.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이 삐삐야, 어디까지 가려고? 근처에서 밥 먹게 좀 세워"
"주차비  드는 데로 가려고 하는 잖아! CC!"


서초-교대-강남-삼성. 대낮에도  교통체증이 있는 곳이다. 시간은 흐르고  흘렀다. 다음 스케줄이 서초에서 4시에 있는데 이따 다시  지옥 같은 도로를 와야 하는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기 시작했다. 오빠는 대체 디로 가고 있는 건가!


운전대 잡은 사람을 어떻게  수는 없었다. 차는 잠실 롯데 주차장에서 멈췄다. 나의 이성은 이미 집을 나간 상태였다. 그래도 인간으로서 밥은 먹어야 계속 전쟁을 치를  있을  같아 식당으로 향했다. ... 차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고 걸었다.


홀로 짜장면을 허겁지겁 먹고 다시 주차장으로 왔다. 오빠는 없고, 문은 열려 있었다. 잠시  차로 돌아온 오빠는 영수증을 달라고 했다.


"뭐야!  원이  되잖아.   넘어야 주차비  내니까   사와"
"뭐야! 밥을 안 먹었어?"
"......"
"오빠가 밥을 먹고 만 원을 채워 놓으면 되겠네"


내가 짜장면을 먹는 사이 오빠는 쫄쫄이 굶고 있었다. 밥 먹고 오라고 해도 절대 가지 않았다. 옥신각신 "한심한 삐삐야!"를 외치다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촬영 장비를 들고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음 스케줄 장소인 서초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또 2차 옥신각신을 치르다가 결국 눈물샘이 터졌다.


주차장에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망정이지, 누구라도 있었으면 아주 볼만한 싸움이었을 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는 없는 노릇. 다음 촬영이 있었기에 차는 다시 서초로 향했다. 오빠도 나도 야수가  상태로.


잠실에서 얼마라도 쓰고 주차비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오빠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오빠는 아예 밥을 안 먹었고, 난 싸구려 짜장면 한 그릇만 먹고 나왔으니 고스란히 주차비를 내야 했다. 겨우 한 시간 남짓 있었는데 6천 원이 나왔다. 망할 잠실!


잠실에서 서초까지 또 엉금엉금 달렸다. 나는 한참을 엉엉 울다가 눈이 퉁퉁 부었고, 오빠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속은 아마 새까맣게 타지 않았을까.


드디어 촬영 장소인 서초 왔다. 그런데 아뿔싸! 인터뷰 예정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다. 차를 대고 마땅히 있을 곳이 없는 거다. 오전에 갔던 ㅇㅇ 법조빌딩과 달리 이번 촬영 장소는 주차 지원을 받을  없는 상황이었다. 직원들 주차만 가능하고, 손님들은 근처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했다. 가까운 곳에 공영 주차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공사 중이라 갈 수 없었다. 정말 되는  없는  아닌가. 주차비에 쥐약인 나도 이쯤 되니 해탈의 경지에 오르지 않았을까.


비교적 저렴한 유료 주차장을 찾느라 골목을 15 정도   같다. 이제 삐삐의 대상은 오빠가 아니라  도시의 주차 시스템이 됐다. "이런 삐삐 같은 건물이  있나! 손님 주차장을 빼놔야지 너무 이기적인  아닌가!", "삐삐 같은  동네 주차! 심각하네!" 등등 걸레를 물고 떠들어 댔다.


결국 10   원인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댔다. 나와 오빠는 녹초가 됐다. 점심도  먹은 오빠는  힘들었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 사정이고, 일은 일이니 마지막까지  먹던 힘을 내어 촬영을  마쳤다.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불 같이 솟아 오른 감정들이 사그라들었다. 나의 마음이 잔잔해지니 오빠의 감정을 살필 여유가 좀 생겼다. 다행히 오빠도 나와 비슷한 상태여서 이제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대체 오늘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찔러댄 걸까.


근본 원인은 자라온 환경


실은, 내가 오늘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울어댄  엄마 생각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어렵게 자란 엄마는  쓰고 안 사는 습관이 몸에 뱄다. 우유 하나를 사도 제일  , 햄보다는  소시지를 골랐다. 월급쟁이인 아빠의 수입에 더해, 엄마는 집에서 부업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와 비슷해졌다. 작은 돈을 아끼는 습관은 나에게도 내리 뱄다. 평생 절약하는 삶을 살아온 엄마, 그리고 엄마를  닮은 나를 생각하니 서글펐던 게다.    


반면, 오빠는 사업하는 부모님을 두었다. 부모님은 아침에 나가서 밤에나 돌아오시니 집에는  오빠와 오빠의 동생  뿐이었다. 용돈을 받으며 독립적으로 자란 오빠는 나와 달랐다.  절약에 가치를 두며 지내왔지만, 오빠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 경험을 중요시 여겼다.     


그런 오빠와 살면서 소비 습관 때문에 많이 부딪히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화해 가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유독 주차비 문제 앞에선 갈등이 좁혀지지 않았던 거다.


고작 몇 천 원 때문에 전쟁 같은 하루를 치렀다 생각할 수 있지만, 몇 천 원은 내게 '고작'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가장 싼 우유를 샀던 엄마를 떠올리게 한 '사건'이었던 게다.


하지만 오빠에게 몇 천 원의 주차 요금 정도는 합리적인 소비, 그러니까 정당하게 지불된 제작비에 속한 돈일뿐이었다. 안산 ㅇㅇ 법조빌딩이 아닌 다른 건물에 얼마 간 주차를 했다면 이미 2,500원의 요금이 나갈 것이고, 나중에 차를 옮긴다고 해도 거기서 몇 천 원 정도만 더 붙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실제로 장거리 운전에 피곤함이 있었고, 그 상황에서 자칫하면 차를 재 주차하다가 접촉 사고가 있을 수도 있으니 그대로 두는 것이 오빠에겐 더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저녁에 차분히 이런 대화를 하며 종전했다. 하루 종일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며 전쟁을 치른 오빠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몸은 피곤한데도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앞으로 우리는 이런 비슷한 상황에 닥쳤을  어떻게 대처할까. 오빠와 내가 서로 다름을 조목조목 따지고 인정하게 됐지만, 그것이 우리의 갈등을 줄여줄  있을까. 깨달음이 행동으로 이어질  있을까. 적어도 주차비로 인한 싸움만 없어도  수확이 아닐까 하며 마음을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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