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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Aug 23. 2021

반려묘가 떨군 안경이 문제였을까?

오늘도 싸웠다, 별 일 아닌 문제로 by 유자까

아내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오늘도 그녀 곁을 맴돈다. 물론, 아내는 귀찮아한다. 어찌 되었든 고양이는 빈틈을 노려 그녀 곁에 존재하려 애쓴다. 오늘도 내가 사랑하는 둘은 다툰다. 한 명은 소리 지르며 자신의 작업공간을 지키려 했고, 한 마리는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만들려 울며 보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둘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다.


일이 터진 시각은 저녁 7시 정도였다. 반려묘가 이번에는 책상 위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작업을 마친 아내가 그 위치에서 엎드리면 가장 잘 보일 터였다. 그러다 내 안경을 반려묘가 툭 건드렸다. 책상 위에 둔 내 안경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우리 다툼이 시작됐다. 이번 싸움은 다행히 그리 길지 않은 3시간짜리였다.


사실 안경이 떨어졌을 때, 난 별일 아니라는 듯 웃었다. 이런 마음이었다. ‘고양이가 안경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아주 흔한 일이 일어났구나.’ 나는 짜증이 난 아내를 보며, 웃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 “괜찮아. 새로 맞추면 되지.” 이 말이 아내의 화에 기름을 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소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터였다.


“돈이 진짜 많은가 봐.” 아내가 쏘아붙이며 말했다. 난 여유로운 태도로 답하려 웃으며 이야기했다. “반려묘가 무슨 일을 해도 괜찮아. 그러니 화내지 말자.” 이 말에 더욱 열 받은 아내, 나를 노려보다가 다른 장소를 쳐다보다가 화를 이어갔다. 이 말을 들으니 화가 북받쳐 올랐다.


“돈이 썩어 나나 봐. 물건이 소중한 걸 왜 몰라.”


나도 돈이 아깝고, 물건을 소중히 여긴다. 하지만 반려묘가 사고를 일으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그곳에 물건을 둔 내가 잘못했고, 그 물건이 깨지도록 한 우리의 잘못이다.


몇 년 전에 맥북 프로 액정이 깨졌을 때가 대표적으로 그랬다. 침대에서 글을 쓰던 중 맥북을 침대에 그대로 두고 화장실에 갔다. 그 순간, 반려묘 A가 반려묘 B와 장난을 치다 침대에서 맥북이 떨어졌다.


사설에서 수리비 40만 원이 나왔다. 아내는 그 일로 반려묘들이 장난치는 모습만 봐도 걱정한다. 지금 아이맥과 모니터들이 있는 작업 공간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일도, 당시 사건에 기인한다. 아이들이 밑으로 지나가거나 밀어 떨어뜨릴까 걱정한다. 심지어 가운데 놓인 아이맥을 반려묘가 미는 모습을 보며 경악했던 그녀다.


어쨌거나 나는 고양이가 한 행동은 모두 용서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고양이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내가 안경을 막 두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이가 없다 못해, 영혼이 가출하려 했다. 아니, 내 안경을 벗어서 막 두는 경우가 어디에 있나. 아내에게 난 그런 적이 없고, 안경은 책상 위, 책이 쌓여 있던 장소에 두었다고 말했다.

가운데 있는 아이맥. 고양이들은 저 사이로 지나가고 싶어 한다.

그때 우리는 ‘성서’를 펼쳐 들고 싸우고 있었다. 내 안경이 떨어진 시간, 하필이면 성서를 읽고 있었다. 사실, 스마트폰으로 성서를 보고 있었다. 하여튼 묵상하던 중, 아내가 내게 화를 낸 것이다. 난 성서를 보자고 했고, 아내는 답이 없었다. 우리 싸움이 제대로 시작됐다. 이제 누가 잘못했는지 명확해졌다. 먼저 사과하는 쪽은 잘못한 싸움이다. 싸움 앞에서 성서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다.


결론은 내가 잘못했다고 났다. 먼저 용서를 구했고, 잘못했다고 했으니. 10시가 다 된 시각 화해는 했지만, 아내는 지금도 화가 난 상태다. 아마, 내가 물건을 대하는 태도가 ‘부잣집 도련님’ 마인드 탓이라고 여긴다. 아내의 이 말에 난 화를 내며, “쪼잔한 마인드” 덕으로 돌렸다. 아마도 이 말에 크게 화가 나서 아직 안 풀리는가 보다.


아, 이 글을 보는 사람은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말해 둔다. 내가 아끼는 안경은 아무 일도 겪지 않았다. 고양이가 떨어뜨린다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튼튼한 안경이. 사람들이 오해하는 말을 튀어나와서, 밝혀 둔다. 나는 ‘부잣집 도련님’도 아니고, 아내는 쪼잔한 마인드 덕에 화를 잘 내지도 않는다. 정말 홧김에 한 말들이다. 결국, 오늘 싸움의 주요 요소인 안경은 무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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