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비싼 케이스와 강화유리 구입에 대한 변 by 믹서
오빠는 며칠간 아이폰13프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관련 유튜브는 모조리 봤다. 직접 대리점에 방문해 상담도 받았다. 고심 끝에 낙점된 아이폰13프로, 사전 예약 후 정확히 도착 예정일 밤 12시에 방문 택배로 받았다.
지난 10월 8일의 일이다. 그리고 아이폰13프로는 11월 3일인 오늘, 내 손에 있다. 며칠 아이폰을 만지던 오빠는 재미가 없다며 나에게 넘겼다.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이, 처음부터 내게 주려고 아이폰13프로를 샀다고, 영상을 많이 찍는 나에게 필요한 스마트폰이라고, 자신은 쓰던 갤럭시 노트10이 더 좋다고.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었다.
오빠, 고마워. 나 이거 정말 잘 써볼게.
정녕 최고의 스마트폰이었다. 120Hz 주사율 덕분에 화면 터치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웠다. 아이폰12미니를 쓰다가 13프로로 넘어갔기에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기대 이상이었다. 매끄러운 작동에 매료되어 앱들을 열었다 닫았다 여러 번 했다.
카메라는 설명이 필요 없다. 그냥 웬만한 일반 카메라보다 좋다. 특히 동영상은 너무 훌륭해서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다. 시네마 모드로 촬영을 하면 DSLR 못지않게 훌륭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영상을 업으로 하는 나로서는 기가 막힌 서브 카메라를 한 대 얻은 느낌이다.
사실 나는 스마트폰 중독자에 가깝다. 폰으로 모든 것을 한다. 헤비 유저라고 할 수 있다. SNS는 물론이고 영상 콘텐츠, 각종 기사들, 전자책 등을 달고 산다. 몇 분만 폰과 멀어져 있어도 불안하니 말 다했다.
스마트폰 성능이 좋아지면서 일도 이걸로 한다. 클라우드가 잘 되어있어서 컴퓨터로 작업한 파일을 폰에서 쉽게 확인, 수정할 수 있다. 물론 영상 편집은 아직 좀 어렵지만, 언제 어디서든 쉽게 고퀄리티 촬영이 가능하니 영상 피디인 나에게는 대체 불가한 장점이다.
이제 아이폰13프로는 내게 컴퓨터나 카메라 장비 못지않은 ‘일하는 도구’가 됐다. 이걸 갖고 하루 종일 놀 수도 있지만, 반대로 24시간 폰으로 일할 수도 있다. 나는 아이폰13프로를 집에 있는 600만 원짜리 아이맥과 동급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리하여 내게 너무도 소중한 아이폰13프로를 감싸 안고, 세상 힙하다는 케이스를 사러 여의도 케이스티파이 팝업 스토어에 갔다. 비싼 고릴라 강화유리는 기본, 이미 붙여주었다. 48,000원짜리 강화유리는 내 생애 처음이었지만, 완소 아이폰의 안전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케이스티파이 케이스는 ‘폰케이스의 애플’이라는 별명답게 가격이 화려했다. 내가 고른 건 무려 65,000원! 이렇게 비싼 케이스를 사다니, 내가 이런 소비를 하다니 세상도 나도 많이 변했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모든 사람이 폰을 보고 있는 게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모습은 똑같지만, 아마 각자 다 다른 작업들을 하고 있을 테다. “쯧쯧, 젊은 애들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구먼, 말세야”라며 한심한 듯 여기면 안 될 일이다. 다들 중요한 자신만의 일들을 하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하루 중 나와 가장 가까이에서 나와 관련된 많은 일을 나와 함께 하는 물건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망가지거나 잃어버리면 그날로 나의 모든 것이 정지된다. 은행 거래도, 사람들과의 연락도, 내가 남긴 모든 기록도 모두 위험에 빠진다.
내 삶에서 이렇게나 중요한 스마트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대접을 해주고 싶었다. 친구이자 훌륭한 동료인 아이폰13프로가 다치지 않도록 강화유리를 붙이고, 볼 때마다 기분 째지게 좋은 케이스티파이 폰케이스를 씌워준 건 나로선 용기를 낸 최초의 폰 관련 과소비(?)였다.
총 12만 원을 순전히 아이폰에 투자했지만 아깝지 않다. 아이폰보다 훨씬 더 비싼 아이맥보다도 나와 더 친하니까 괜찮다. 아이폰13프로는 컴퓨터보다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