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환경 보호 방법 by 믹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라
5년 전 뉴욕에서 지낼 때 일이다. 내가 살던 지역은, 쓰레기 분리수거가 그다지 중요한 곳이 아닌 듯했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에게 들어보니 뉴욕시 전체가 그랬다. 한국에서는 분리수거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심이던 내게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게다가 기껏 분리수거를 해도 결국 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서 버린다는 사실! 이 문제는 뉴욕에 사는 내내 우리 부부를 괴롭혔다.
뉴욕은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정말 더러운 도시다. 특히 맨해튼 거리와 지하철에서 나는 악취는 매우 심했다. 거기에 익숙해지면 “뉴요커 다 됐네!”라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자주 다니는 곳에 쓰레기가 쌓여 있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분리수거도 영 마뜩잖고, 지하철도 더러운 뉴욕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배운 것도 한 가지 있다. 뉴욕에 있는 가게에서는 대부분 얇은 재생지로 된 종이봉투에 물건을 담아 주었다. 그들만의 방법으로 환경 보호에 힘쓰는 노력으로 보였다. 뉴욕에서 1년을 지내면서 버리지 못한 종이봉투가 하나 가득 쌓여 갔고, 대신 플라스틱 비닐 사용량이 현저하게 줄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종이봉투를 모은다. 뉴욕과 달리 한국 종이봉투는 두껍고 질이 좋다. 일명 '쇼핑백'으로 불리는 이 고급 종이봉투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국에서는 얇은 재생지 종이봉투도 못 버리고 모았는데, 하물며 예쁘고 질도 좋은 쇼핑백은 얼마나 아까운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플라스틱 봉투 대신 사용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물건을 선물을 할 때는 포장용으로도 훌륭한 역할을 한다.(남편은 재활용품 버릴 때 모아둔 쇼핑백들을 제발 버리라고 잔소리를 한다. 결국 버릴 걸 쓸데없이 모으기만 한다고 말이다. 실제로 이사갈 때마다 분리수거장으로 향하는 쇼핑백들...ㅠ)
그러던 어느 날 뉴스가 나왔다. 한국의 플라스틱 봉투 사용량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이야기였다. 핀란드의 100배, 미국의 1.5배라고 한다. 중국도 우리의 절반 정도만 소비하는 추세였다. 남편은 뉴스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 뒤로 내가 쇼핑백을 모아 사용하는 일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 후, 쇼핑백 외에 물건을 재활용하는 활동, 즉 ‘리사이클링’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리사이클링은 우리 소시민이 쉽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리사이클링 혹은 업사이클링에는 디자인, 재가공, 아이디어 등 여러 요소가 많이 필요했다. 직업이 영상 만드는 PD인지라 일이 많을 때는 잘 시간도 부족한데, 그런 일에 에너지를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영역을 정해 지키기도 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차 트렁크에 항상 종이봉투를 쟁여두는 것이다. 뭘 사러 갈 때 장바구니 챙기는 걸 깜박하는 일이 자주 있어서 생긴 버릇이기도 하다. 이게 생각보다 좋을 때가 많은데, 한 두 개의 종이봉투에 들어갈 정도의 물건만 사게 된다는 점이다. 종이봉투가 찢어질 정도로 사면 곤란해지기에, 내가 가져간 종이봉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산다.
다음으로, 플라스틱 용기를 장 볼 때 가져간다. 이건 작년에 환경 운동을 열심히 하는 한 단체의 활동을 촬영하면서 배운 아이디어다. 대형마트에서는 좀 어려운 일인데, 동네 시장에서 장 볼 때는 아주 요긴한 방법이다. 생선·고기 등을 살 때 내가 가져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달라고 부탁한다. 이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육점이나 생선 가게에서 고기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달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니 부끄럽다. 물론 처음 몇 번만 그렇다. 많이 하다 보면 괜찮아진다.
이렇게 소소한 실천을 해도 쓰레기는 넘친다. 남편은 워낙 새로운 물건을 잘 사는 데다, 최근에는 몸무게를 17kg나 빼서 옷 사는 재미에 빠졌다. 쇼핑을 자주 하니 물건과 함께 쓰레기도 쌓여 간다. 쇼핑백은 그동안 했던 것처럼 모아서 재활용하고, 종이 상자는 분리수거함으로 사용하지만, 각종 포장지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쓰레기를 줄이고 싶은 마음은 큰데 아직 서툴고 모르는 것도 많은 나다.
아주 작은 실천만 하는 단계라, 환경을 살리는 데에는 효과가 미미해 한숨을 쉬기도 한다. ‘남들처럼 멋지게 리사이클링도 하고, 야무지게 살림하면서도 환경 보호에 앞장서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나를 감싼다. 내가 하는 실천이 작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옷이나 가방을 살 때 받는 종이봉투나 차곡차곡 모아 장을 볼 때 재사용하고, 생선과 고기를 살 때 조심스럽게 용기에 담아달라는 말을 하는 정도이지만, 그 작은 실천이라도 계속하고 싶다. 나의 행동 하나도 지구를 살리는 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말이다.
*이 글은 월간 <빛과소금>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