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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Nov 15. 2021

당신이 아플 때 나는 딴생각을 하지

남편의 뇌경색 1주년을 맞아 by 믹서

나의 결혼 생활은, 오빠가 뇌경색으로 입원한 전후로 나뉜다. 작년 이맘때 갑작스레 찾아온 뇌경색으로 오빠는 일주일간 병원에서 지냈다. 입원은 일주일간만 했어도 나머지 기간은 집에서 투병했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뇌경색으로 말을 못 해 예민해진 오빠와 말없는 오빠가 낯설기만 했던 나, 두 사람의 시간은 천천히 흐를 것 같았다. 갑자기 일상이 멈추어 하루 24시간을 둘만 마주해야 하는 상황은 꽤나 고됐다. 오롯이 두 사람에게만 주어진 회복의 날들, 그때로 시계를 되돌려보고자 한다.  


언어가 멈추다


2020년 11월, 낮잠을 세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난 오빠가 조금 이상했다. 살짝 말을 더듬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단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이모부가 심장 마비로 갑자기 쓰러지셨는데 오빠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급성 실어증이 왔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했다.


언어 상태는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했다. 3일이 지나고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오빠는 거부했다. 병원은 무슨 병원이냐고 고집을 피우던 오빠와 한바탕 싸우고 나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결국, 쓰러지신 이모부가 돌아가셨다. 오빠의 언어에 문제가 생긴 지 4일째 되던 날, 장례식에 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인사 나누는 오빠를 유심히 지켜본 시어머니가 심각한 얼굴로 날 부르셨다.

 

쟤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당장 진료받으러 가자.

장례식이 있던 병원이 2차 의료기관이라 곧장 신경과로 갔다. 의사는 몇 마디 나누더니 바로 MRI를 찍자고 했다. 결과는 뇌경색이었다.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이 손상되어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운이 안 좋았으면 운동 신경까지 손상이 갔을 텐데 그 부분은 피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의사는 “적당한 때에 병원에 잘 오셨다”는 말을 덧붙였다. 너무 빨리 왔어도 MRI 상에서 손상 부분이 잘 안 보였을 수 있고, 너무 늦게 오면 당연히 더 안 좋아졌을 터였다. 어쨌든 당장 입원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뇌에서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만 손상되었고, 운동 신경에는 문제가 없어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


입원 절차를 밟고, 오빠가 환자복을 입는 동안 잠시 멍해졌다. 장례식에 왔다가 갑자기 병원에 갇힌 이 상황이 실감이 안 났다. ‘뇌경색’이라는 병명 자체가 주는 위압감에도 눌렸다. 당사자인 오빠는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 “별일 아니야”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지만, 정작 내 머릿속에서는 이게 얼마나 큰 별일인지 계산하느라 분주했다.


병원에서는 뇌경색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다양한 검사들을 진행했다. 제일 먼저 당뇨 수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MRI 사진을 본 의사는 뇌혈관이 무척 좁다는 소견도 냈다. 목에서 뇌로 가는 혈관은 정상인데, 뇌 쪽으로 갈수록 혈관이 좁아지는 뇌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선천적으로 좁은 혈관이 당뇨를 만나 뇌경색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이후, 추가적으로 CT 검사와 심장 검사 등을 했다.


언제까지 정신 줄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을 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간단한 의사 표현 정도만이 가능했던 오빠를 달래 말을 시켰다. 언어는 재활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계속 말하는 연습을 하라고 강요했다. 그때부터 매일 싸웠던 것 같다. 오빠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짜증내고 잠만 자려고 했다.


그때의 내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봤다. 결국은 내가 아닌 오빠에게 닥친 병이었다. 그러니 오빠의 감정을 최우선으로 살피고, 오빠 치료에만 집중할 줄 알았다. 당연히 그래야만 하니까. 허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 의외로 내면으로 침잠한 나를 발견했다. 좀 놀랐고,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오빠에겐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오빠는 말만 못 한 게 아니라, 읽고 쓰지도 못했다. 독서를 사랑하고, 작가로서 글을 쓰고, 누구보다 말하기를 좋아했던 오빠는 절망에 빠졌다.


힘겹게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던 오빠에게 말하는 연습을 재촉했던 건, 하루빨리 우리의 생활이 정상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나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꾸 말을 걸었다.


오빠, 오늘은 좀 어때? 어제보단 좀 나아졌어? 말을 계속해 봐.

잠시 뇌경색이라는 수렁에 빠졌으니 ‘그저 나오기만 하면 된다’고 되뇌었다. ‘금방 괜찮아질 거야, 최대한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고 다그치기도 했다. 대체 이런 나의 조급함은 어디에서 온 것이었을까. 언어 회복은 갑자기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의학적으로 봤을 때 뇌경색으로 인해 손상된 부분은 재생되지 않는다. 다만, 언어를 관장하는 부분의 주변 뇌신경들이 언어를 익혀서 점점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원리로 언어 회복이 일어나니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의사는 “오빠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경색이 왔기 때문에 나이가 든 사람보다는 회복 속도가 빠를 수 있다”라고는 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가


생각해 보니 그때 난 항상 입술을 꽉 깨물고 다녔다. 뭔가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간병을 제대로 할 수 없을 테니까. 오빠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야, 오빠도 이 시기를 아무렇지 않게 지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나는 오빠의 입원 기간 중 딱 한 번 울었다. 입원 후 이틀은 밤 9시에 오빠를 재우고, 집에 와서 혼자 잤다. 당시 나는 헬스장도 다니고 홈트레이닝도 꾸준히 하면서 열심히 살을 빼던 시기였다. 그날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평소와 똑같이 운동을 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였을까.

 

병원에 있는 오빠가 안쓰러워서? 이 상황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와서? 냉정하게 판단하건데, 아마도 이 악물고 일상을 지켜내고 싶었던 나에 대한 연민이었을 거다. 오빠를 사랑하던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물론 오빠를 사랑하고 걱정했다. 그러나 난, 내 자신에게 더 집중했기에 눈물이 났다.


오빠가 퇴원하고 집에서 지내면서 그런 나를 더 정확히 보게 됐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대성통곡을 했다. 오빠가 퇴원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오빠는 여전히 우울해했고, 도무지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시 오빠는 말을 못 했다고 해야 맞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엔 늘 둘만의 파티를 하곤 했는데, 이날은 어두운 분위기로 그냥 지나가서 너무 서러웠던 것 같다. 정말 엉엉 울었다. 오빠는 뭐라 말 한마디 못한 채 그저 날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오빠는 내게 물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냐고. “글쎄,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지만, 난 안다. 이기적인 내 마음 때문에 눈물을 쏟았다는 걸. 왜 울었는지 몰랐던 게 아니다. 폭풍 같았던 나의 감정이, 아픈 오빠를 돌봐야 하는 당위를 눌러버렸다. 그걸 인정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인정한다. 나도 그런 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자기감정에 충실했던 나를 돌아보다

 

오빠의 언어는 차츰차츰 제자리를 찾고 있다. 현재는 90% 정도 회복했다. 다시 책을 읽고, 글도 쓴다. (아직 조금 서투르지만.) 오빠의 투병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부부는 한 몸이라고 하지만, 결코 한 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라 자신을 먼저 보호하려 드는데, 감정도 그랬다. 서로를 위한다지만, 그보단 먼저 자기감정 안에서 허우적대는 게 진실이었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상대방의 감정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당신이 아픈 와중에도 난 내 감정을 보듬었듯, 당신도 어쩌면 그런 시간을 거치지 않았을까. 당신도 당신의 자아 안에 침잠해 울었겠지. 오빠가 겪었을 절망감을 이제야 공감할 수 있다. 고통스러웠을 오빠의 시간들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며 눈물 흘린다.


결혼할 때 흔히 하는 서약이 생각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하며...” 부부로서 애정이나 의무감만으로 이 서약을 지킬 수 없다. 사회가 요구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거기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당신이 아플 때 난 딴생각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은 자신 있게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상 에세이: https://www.youtube.com/watch?v=9AWuswVIB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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