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의미를 탐구하기로 한 부부 by 유자까
"오빠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할 마음이 있어?"
"결혼은 왜 해야 하지?"
가끔 아내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스스로 한 질문의 답은 자기가 내야 하는 법이나, 답하지 않으면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니, 대답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우선 아내가 질문한 그날 주변 여건을 생각해야 한다. 가령, 페이스북·인스타그램·블로그·드라마 등에 결혼을 부정적으로 그린 콘텐츠가 등장하면 아내는 "맞아! 맞아!"를 연발한다. 그럴 땐 어김없이 같이 공감해 주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 포스팅을 보면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어느 날, 누군가 SNS에 올린 결혼한 여성이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경험담을 아내가 보았다. "대체 결혼은 왜 해서 이런 일이 날까? 결혼은 안 해도 정말 괜찮은데"라고 말하며, 위의 질문을 던진다.
이런 질문에 답하기 굉장히 곤란하지만 일단 맞장구를 쳐준다. 생각해 보라. 남편 입장에서 결혼에 부정적 답을 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러나 이런 날은 어쩔 도리가 없다. 결혼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동의해야, 아내도 만족하고 평화로운 날이 이어진다.
아내는 남편·아내·부부 등 무엇이든 우리를 규정하는 단어도 부정한다. 새로운 단어나 표현의 등장은 반길 일이다. 그걸 내 앞에서 말한다는 부분이 거시기하다. 딱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하던 일을 하거나, 운전을 말없이 계속한다. 그럼, 아내는 삐친다.
반대로 위의 질문에 긍정하면 지옥이 펼쳐지기도 한다. 내가 결혼에 만족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 날이, 바로 그날이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결혼해서 너무 좋다 싶은 날이 가끔 있다. 그런 기분이 들면 아내는 어김없이 물어본다.
"오빠는 나 없이 살 수 있어?"
잠시 내 정신이 가출한 날 이 질문이 나오면 답이 없다. 농담을 담아 "그럼, 너 없이도 살 수는 있지"라고 답한다. 웃자고 답한 말에 돌아오는 말은 어김없는 쌍시옷이다. 물론 이 욕설에는 진심이 담겨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니, 난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장난을 친다. 한대 얻어맞기 전까지.
그렇다고 아내가 기분대로 행동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생각을 확신하고 싶은 날이 있다. 자기가 긍정하는 콘텐츠에 동의해 주기를 바라는 날도 있다. 그냥 내가 느낀 현실이 그렇다는 의미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내가 처음부터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신혼 초에는 주변 미혼자들에게 결혼의 장점이 무엇인지 떠들고 다녔다. '결혼 예찬자'가 딱 적확한 표현이겠다. 이젠 신혼 시절과 함께 저 멀리 사라진 말이 됐지만, 아무튼 아내도 한때는 “결혼하니 마냥 좋다”고 말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 생각이 바뀐 즈음,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정상가족'에 의문을 던지는 책들을 보았다. 결혼에 묶이지 않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고, 사회도 현실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었다. 모두가 꼭 결혼할 필요는 없으며, 결혼한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아내는 아이 없이 살기로 한 우리처럼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결정을 한 사람들 이야기에서 위로를 얻었다. 안도감도 같이 느꼈다.
그 시기부터 우리는 결혼을 왜 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아이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생각이다. 정신없이 아이 양육하느라 이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지 않았을까. 우리 역시 부부가 되고, 상대방의 가족이 나의 가족이 되고, 아이로 인해 비로소 부부가 하나 된다는 명제, 그 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았을 테다.
아내와 나는 결혼의 의미를 찾는 작업을 아직도 하고 있다. 결혼 이후의 삶을 고민한다. 마치 운명처럼 주어진 과제같다. 아이 없이 둘이서만 지내는 너희가, 결혼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그게 우주는 아니겠지?) 아내가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는 이유도 같은 선상에서 나오고 있는 게 아닐까. 바로 이 물음.
“우리가 지금 결혼해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