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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유영 Dec 06. 2021

아내 앞에서 자존심을 세우다

결혼 10년을 기념하여 쓴 글 by 유자까

2012년 12월 8일,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날씨는 정말 무지막지하게 추웠다. 우리 부모님은 추운 날 결혼해서 ‘사람이 많이 안 오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는 눈치였다. 눈까지 많이 와 길이 엉망이어서, 하객이 와준 사실만으로도 무척 감사히 여겼다. 어렵게 식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서로 힘이 되어주기로 약속했다. 그 약속을 한 지, 어느덧 10년이 되어 간다. 우린 그 약속을 잘 지키고 있던가. 햇수로 결혼 10년을 맞아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쉬운 결혼 생활은 아니었다. 결혼하고 바로 다음 달부터 우리가 방송을 시작한 까닭이다. 원래 방송인이었던 아내의 권유로 내가 방송작가가 된 기간이기도 했다.(이 부분은 다른 글을 쓸 것이다.) 내 첫 촬영 날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출연자도 우리에겐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훌륭한 분이었다. 그는 푸드뱅크와 기타 여러 가지 일로 아이들을 돕고 있었다. 거기에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인형극까지 공연했다. 감사하게도 마음씨 좋은 목회자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날 찍은 사진. 아내가 카메라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다. 해가 진 뒷일을 알지 못했으니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촬영은 새벽에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졌다. 당시 카메라 감독을 우리에게 붙여줄 프로그램은 아니어서, VJ가 찍는 느낌으로 진행했다. 프로그램 PD였던 아내는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고, 내가 보조했다. 거기에 인터뷰하고, 기타 촬영 세팅까지 전부 신경 써야 했다. 초보 작가였던 내게 무척 어색한 시간이었다. 이제 영상 일을 시작한 나에게 무엇이 새롭지 않겠는가.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왠지 마음 한 구석이 뭐라 말할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영상을 시작한 그날, 난 아내와 싸웠다. 겉으로는 아내를 걱정하는 말을 내뱉었다.


네가 너무 힘든 상황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밟혀. 추위에 몇 시간을 떨면서 촬영하는 네가 안쓰러워. 거기에 촬영하는 일이 다가 아니잖아. 앞으로 편집도 해야 하고. 방송하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또 밤샘하고 그러려고 그래. 도대체 그런 일을 왜 해.


뭔가 울분에 찼지만, 당시에는 그 내용이 무엇인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내에게 화를 내며 내질렀다. 대체 내가 무엇을 화내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생떼를 썼다고 생각하니 아내는 어떠했겠는가. 아내가 느끼기에 억설 같았을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왜 그렇게 어리광 부리는 행동을 했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먼저, 말 그대로 아내 걱정이 많았다. 그렇게 일하는 아내가 정말 싫었다. 당시 방송 날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하던 습관이 방송국에서 나온 지금까지 살아 있을 정도다. 지금도 그런 행동은 정말 싫지만, 마감 날짜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아내가 일하는 방송국 자체가 마음에 들 수 없었다. 그래서 첫 촬영을 마치고 방송 일을 핑계 삼아 아내에게 짜증을 냈던 것이다. 거기다 가장 중요한 지점, 나는 내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내 자존심을 상하게 한 부분은 이것이었다. 개신교 방송국은 주로 교회 친화적인 콘텐츠를 생산한다. 교회의 잘못은 일절 다루지 않는다. 그에 비해, 내가 방송작가가 되기 전에 기자로 일했던 개신교 신문사는 이런 방송국들과 논조가 전혀 달랐다. 교회의 잘못이나 그릇된 지점을 지적하며, 성역 없는 보도를 자랑으로 여겼다. 당시 난 교회의 잘못을 비판하는 시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 아내가 일하는 방송국, 아내 일까지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 모습. 방송 관련 자료부터 최신형 아이맥까지 둔 집이었다. 방송국이 집으로 옮겨 온 느낌이랄까.


거기에 전통적 가부장도 나를 몰아세웠다. 아내가 우리 생활비를 벌고, 내가 거기에 맞춰서 생활해야 하는 사안에서 자유롭게 되기도 쉽지 않았다. 나는 거기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무리 아내가 우리 생활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해도, 가부장의 세례를 받은 내가 받아들이는 일은 어려웠다. 지금도 남성이 여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부장적 시각과 싸우는 중이니, 신혼 때는 말도 못 하게 어려운 문제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우리의 싸움은 이어졌다. 아내는 자주 울면서 집을 뛰쳐나가야 했고, 나도 힘들어하며 집에서 나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저 사랑하니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서로를 더 힘들게 했다.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전제는, 짧은 연애 기간이 불러온 참사였는지 모른다. 우리는 9개월 만에 결혼에 성공한 부부다 전에는 그냥 먼 거리에서 서로의 존재만 알던 사이였다.


우리는 만나기 전까지 전혀 다른 인생을 살며, 다른 사람과 연애하며 살아왔다. 아내와 연애 전, 나는 5년을 사귄 애인이 있었다. 아내도 나와 만나기 전까지 사귄 남성 때문에 고민이 깊었다.(이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지만, 나중에 들려 드리겠다.) 하여튼,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서로를 감싸 안기에는 10년은 좀 길었다. 아니, 많이 길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나도 나를 모른다’는 문제도 끼어 있었다. 적어도 나는 결혼 전부터 가부장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래서 “방송작가가 되어보겠냐”는 아내의 질문에 별생각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니 이 문제로 내가 힘들어하고 자존심 상해할지 몰랐다. 아니,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없다. 결혼 기간, 이 문제로 주야장천 싸웠지만, 우리는 이게 우리를 괴롭힐지 생각도 못했다. 우리가 결혼해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있는 부분인데도.


지금은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바뀐 상황에 맞게 싸움 내용도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도 지치지 않고 싸우는 듯하다. 어쩔 수 없다. 해결 방법으로 '서로 조금 더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자'가 채택됐다. 구체적 방안으로 서로 인터뷰할 생각이다. 앞으로 우리는 서로 더 알아가기 위해서, 우리 둘만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서로 몰랐던 이야기를 주로 나눌 계획이다. 우리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사회와 마주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해 본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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