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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일 하시네요 Oct 31. 2020

랜선 밥상수다 4: 재휘님과의 랜선수다


재휘님의 10문 10답


01  이 나라는 나의 3 번째 파견지다. 

02  여기서 나의 밥친구는 나(ㅠㅠ)이고, 주로 냉장고에 있는 것을 먹는다.

03  어제 점심에/지난 주말에 나는 에서 이탤리안 피자를 시켜 먹었다.

04  같이 밥을 먹은 사람은 다.

05  밥을 먹으며 주로 일과 이사에 대한 생각을 했다. 

06  나는 그 생각을 하며 나는 짐이 왜 이리 많지라고 느꼈다.  

07  요즘 내가 제일 자주 하는 혼잣말은 아.. 또 줌 미팅..이다. 

08  최근에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운동이고, 가장 기분이 안 좋았던 건 지원했던 포지션 최종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09  코로나19는 나에게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다.

10  내년 이맘때 나는 미얀마 행정수도에서 을 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는 행복도 예상치 못했던 때에 오는걸까. 코로나19로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지만, 재휘님은 오랜만에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하는 평범한 하루의 행복을 되찾았다. 그러니 코로나19는 재휘님에게 나쁜 놈이고 이상한 놈이지만 동시에 좋은 놈이기도 하다. 따뜻한 집밥으로 에너지를 가득 채워 미얀마로 돌아간 재휘님을 만나보았다.




벌써 3번째 파견지이시군요! 그동안의 여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려요.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어요. 영국에서 교환학생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그 학교가 개발학으로 유명한 학교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개발경제학을 접하게 되었어요. 공부를 할수록 이 분야가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학부 졸업 후 정책학을 공부하고, 난민기구에서 인턴을 했어요. 인턴을 하다 보니 이 일이 또 저랑 잘 맞는 것 같은 거예요. 그 이후로 가나에서 1년 반, 탄자니아에서 3년을 거쳐 지금 미얀마에 오게 되었어요. 작년 3월에 미얀마에서의 생활을 시작했고, 2-3년 정도 있을 계획입니다.   


미얀마에서 요즘 혼밥을 즐기고 계신다고요. 주로 어떤 걸 드시나요? 

미얀마의 한인 사회가 꽤 커서 한식 반찬가게를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카톡으로 주문도 할 수 있어서 종종 시켜먹고 있어요. 육개장, 오징어볶음, 장조림 같은 반찬이랑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을 같이 먹어요. 코로나19로 한국에 잠시 돌아갔다가 얼마 전에 미얀마로 돌아와서 2주간 자가격리를 했거든요. 집에만 있는 동안 삼시 세 끼를 그렇게 챙겨 먹었던 것 같아요. 자가격리가 끝나고 난 뒤에는 피자나 다른 배달 가능한 음식들을 이것저것 주문해서 먹고 있어요. 지난주에는 피자가 원 플러스 원이라 주문해 먹었어요(웃음). 건강하게 먹으려고 브로콜리, 당근 같은 채소도 꼭 냉장고에 구비해놓는 편이고요.  


미얀마도 배달 시스템이 잘 되어있나 봐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식당들이 문을 닫아서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는 라이더들이 많이 졌어요. 주문하면 30~40분 안에 음식을 받을 수 있어요. 이 시기에 가장 돈이 되는 활동인 것 같고, 배달 플랫폼도 계속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라이더가 새로운 일자리의 기회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코로나19로 실직자들이 많아졌거든요. 특히 미얀마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많은 나라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일거리가 구하기 정말 어려워졌죠.  


코로나 이전의 밥상은 어땠나요?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다른가요? 

코로나 전에는 사무실에 매일 나가니까 동료들과 점심을 같이 먹었어요. 미얀마 밥상문화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각자 가져온 음식들을 한가운데 놓고 같이 나눠 먹거든요. 이렇게 삼삼오오 어울려서 먹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사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저녁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는 식사 자리가 많았는데, 코로나19 이후로는 외부에서 식사하는 것이 좀 불편해져서 주로 집에서 먹고 있어요. 아, 가끔 줌(Zoom)을 사용해서 온라인으로 점심 데이트를 하기도 해요. 만든 음식을 보여주면서 같이 수다도 떨고요. 새로운 일상이죠.  


현지 음식은 어떤 게 있나요? 좋아하는 미얀마 음식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느끼기에 미얀마는 주변 동남아시아 나라에 비해서 음식이 좀 맛 없는 편이에요(웃음). 아, 미얀마에 중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샨주(Shan state)라는 지역이 있는데요, 그 지역 음식이 가장 맛있어요. 또, 모힝가라는 음식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생선국수 같은 거거든요. 메기 종류의 생선을 갈아 국물을 내고, 그 안에 면, 향신료를 넣어서 주로 아침으로 먹어요. 사무실이나 사업장에 갈 때 종종 먹곤해요.

  

혼밥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식사하시며 일 생각을 주로 하신다고요. 

사람은 공간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잖아요.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제가 사는 곳이 집인 동시에 사무실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일과 삶의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일 생각이 많아진 것 같아요. 식사 시간에도 일과 관련한 고민을 자주 하고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집안의 가구나 짐들이 눈에 다 잘 보이는 것 같고, 자연스럽게 이사 생각도 하게 된 것 같아요. 혼자 사는데 왜 이렇게 짐이 많지, 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하고 있어요. (웃음) 늘 줄인다고는 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혹시 파견 갈 때 이것만큼은 꼭 가지고 간다 하는 게 있으신가요? 

여성용품이요. 파견지에서는 질 좋은 제품을 구하기 어렵고, 좋은 걸 사려고 하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여성용품을 꼭 챙겨가요. 제가 좋아하는 차나 개인용 상비약들도 꼭 챙기는 편이고요. 참, 밥솥도 꼭 가져갑니다. 이번에는 전기밥솥을 가져왔는데,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 세입자 분이 귀여운 밥솥을 두고 가셔서 잘 사용하고 있어요.  


요즘 줌 미팅 참 많죠? 저희 인터뷰도 줌으로 진행하는 거라서 좀 뜨끔했어요(웃음).

줌으로 하는 미팅이 너무 많아요. 거의 줌 때문에 일을 못할 정도예요. 하루에 보통 2-3개, 많을 때는 종일 할 때도 있어요. 온라인상에서 회의를 하다 보니 만나서 이야기하면 10분 정도면 끝날 이야기인데 길어지더라고요. 저희가 하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진행해야 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제안서를 하나 만들어도 여러 명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고, 그 뒤에 결재를 올리는 시스템인데,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온라인 회의를 할 수밖에 없어요. 사소한 의사결정, 제안서 작성 등등 모든 일들이 줌 미팅으로 귀결되니까 조금 피곤할 때가 있어요. 요즘에는 줌 미팅을 꼭 필요할 때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아마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실 것 같아요. 


또,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아졌거든요.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 활동을 모두 변경해야 하고, 보고해야 할 것들도 더 많아졌어요. 업무를 처리하면서 내부의 관료주의적인 것들이 드러나기도 해요. 기관의 정책이니까 하는데, 정말 필요한 절차인가 의문이 들기도 하죠.  


최근에 재휘님을 즐겁게 한 건 운동이라고 들었어요. 요즘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에 있는 호숫가를 걷기도 하고 홈트레이닝도 했어요. 짐(gym)에 가서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요. 전에는 줌바 같은 운동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할 수가 없어서 요즘엔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많이 하고 있어요.  


반면에 가장 기분이 안 좋았던 일은 지원했던 포지션에서 떨어진 것이라고요. 이제 다음 스텝을 준비하시는 시점인가 봐요.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음 스텝을 스스로 꾸려가야 해요. 프로모션도 본인 스스로 해야 하고요. 저는 다음 레벨로 가기 위해 지원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안됐어요. 제가 가고자 하는 레벨이 저희 팀에서 나왔었거든요.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경쟁이라는 것이 저보다 더 강력한 경쟁자가 있으면 그 자리는 제 자리가 아니더라고요. 기분이 좋지 않았죠.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팀 매니저로부터 이런저런 조언과 피드백도 받고, 동료들과 얘기도 나누면서 이겨내고 있어요.  


코로나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표현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웃음). 그중에서도 좋은 놈이라고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로나로 이번에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 중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아서요. 물론 부정적인 면이 훨씬 많지만요.(웃음) 이번에 일시 귀국을 해서 한국에 6개월 정도 있었는데, 이렇게 가족들이랑 오랜 시간 같이 있었던 게 정말 몇 년만인 것 같아요. 2013년에 가나에 첫 파견을 간 이후로 계속 해외에서만 일하다 보니 가족들이랑 지낼 시간이 없었거든요. 물론 한국에 있으면서도 종일 일을 하긴 했지만, 한국의 집이라는 둥지 안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것,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체험했던 것들이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이었어요.  


내년에도 계속 미얀마에 계실 예정이신가 봐요. 행정수도에 사업장이 있나요?

저희 사무소를 미얀마의 행정수도인 네피도로 옮기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저도 내년에는 지금 있는 양곤이 아닌 네피도에서 일하고 있을 것 같아요.  


개발협력 분야에서 경력을 차근차근히 쌓아가고 계신데요. 혹시 재휘님께 일이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는 생계수단, 밥벌이라고 볼 수 있고, 두 번째는 밥벌이를 하면서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돈을 보고 하는 일이 아닌, 어떤 가치를 위해서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스스로 느끼죠. 요약하자면, 밥벌이와 저의 자아실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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