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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일 하시네요 Dec 02. 2021

02 델타 변이가 확산되던 8월, 다시 르완다로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 시대, 국제개발 활동가의 일


코로나 상황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커리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국제개발협력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파견을 가기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토요일 오후 세시, 도아님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앉았다. 일곱 시간의 시차가 있으니 현지 시간으론 토요일 아침 여덟 시였다. 주말 아침에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아니 그 시간이 좋다고 먼저 제안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대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아! ‘코로나 블루’도 비껴가는 사람이 있구나! ‘이 시국’ 파견 생활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고, 씩씩하게 자신의 길을 닦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햇살 같은 에너지가 전해져 내 오후의 채도와 명도도 높아졌다. 




이렇게 줌으로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현지 시간으로는 주말 아침인데, 이렇게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코이카 르완다 사무소에서 YP로 활동하면서 농업사업, 국제기구 및 민관협력사업, 국제기구 사업을 담당하는 파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8월 말 경에 파견을 오게 되어서, 업무 시작한 지는 오늘로 2개월 정도 되었어요. 그리고 국제개발협력 뉴스레터인 <김치앤칩스> 팀에서 디자인 업무를 맡고 있어요. 인스타그램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업로드 되는 카드 뉴스를 포함해서 기타 행사가 있을 경우 포스터 디자인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국제개발협력 분야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르완다에 계시지만 ‘네팔소녀’라는 닉네임을 쓰고 계셔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계신지도 궁금했거든요.

사실 저는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어요. 중학교 때부터 꿈이 취업을 빨리 하는 것이었고, 상업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 후 S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취업을 하게 되면 꼭 나처럼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첫 직장에 들어간 뒤 국내아동 한 명, 해외아동 한 명을 후원하게 되었는데 그때 랜덤으로 지정되어 후원하게 된 아동이 네팔 아동이었어요. 

1년 정도 후원하고 나니 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싶어서 직접 후원아동을 만나러 가게 되었는데, 그 아이와의 만남이 저에게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할까요. 10살 정도의 아이였는데 너무 마르고 작았고, 제가 사준 음식, 저와 함께 간 관광지 등 저에게는 일상이었던 경험들이 그 아이에게는 모두 처음해보는 일들이었던 거예요. 그 부분에서 처음에 충격을 받았어요. 네팔에 있는 동안 경험한 정전이나 비포장도로 같은 것도 놀라웠고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제가 무엇을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없이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따라서 진로를 정한 거였는데, 이 아이를 만나면서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가치 있는 일, 공익을 위해서 다같이 협력하는 일이잖아요. 또 이 분야에는 자기 일을 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그 부분도 좋아보였어요. 

그렇게 첫 직장에서 4년 반 정도를 일하다가 NGO에서 일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방향을 돌리게 되었어요. 그게 7년 전 인데요. 네팔에서 활동하는 작은 NGO에서 6개월 정도 인턴으로 일을 시작했고, 다른 기관을 통해서 NGO 봉사단으로 2015년에 네팔로 파견이 됐는데 가자마자 두 달만에 대지진이 나서 긴급하게 대피했다가 한국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어요. 결국 네팔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캄보디아로 국가를 바꿔서 1년 임기를 마치게 되었죠. 

한국에 돌아와서 이 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려면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제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어요. 한국에서 수능 공부를 처음부터 시작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서른이 넘어서 졸업하게 되겠더라고요. 방법을 찾다가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길을 생각하게 됐고, 첫직장에서 중국 수출 관련 업무를 했던 경험도 있어서 중국에 있는 대학교에 가게 되었어요. 학교 다니면서도 네팔 관련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진행하기도 했고요. 작년 여름에 대학교를 졸업했고, 6개월 정도 직업전문학교에서 디자인을 배우고 나니 올해 1월이었는데요. 취업을 하려고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파견을 갈 방법이 정말 없는거예요. 네팔에 있는 NGO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다른 국가에 비해 당시에는 상황이 더 안좋아서 입국 절차도 까다로웠고요. 그러던 찰나에 코이카 YP 채용공고가 떠서 지원을 하게 되었죠. 


그런데 네팔이 아니라 아프리카 르완다로 가게 되셨네요?

지원 과정에서 5지망까지 쓸 수 있었는데 당연히 1지망이 네팔이었고, 나머지는 사실 아무렇게나 썼는데요(웃음). 지원서도 면접도 처음부터 끝까지 네팔 얘기만 했는데, 합격 후 확인하니 최종 국가가 르완다로 배정이 된 거예요. 저도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코로나 상황 탓인지 네팔사무소에서는 실제로 YP를 안뽑은 걸로 알고 있고요. 처음에는 네팔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잘 모르는 르완다라는 사실에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어요. 


이 분야에서 일하신 분들 모두에게 각자의 계기가 하나씩은 다 있는데, 도아님의 경우 정말 다른경로로 이 분야로 오게 되신 것 같아서 무척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커리어를 전환하신만큼 이 일에 대한 열정이 크시다는 생각도 들고요. 대학 공부를 마치고 일을 시작해보려고 하는 시점에 코로나가 한창이었어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은데요. 바랬던 일이긴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로 파견을 가게 된 것인데, 혹시 국내에서 일하는 옵션을 고려하지는 않으셨는지, 파견을 결정하는데 망설임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엄청 컸죠(웃음). 르완다가 94년에 제노사이드가 있었던 나라이다보니 어른들은 치안 걱정을 많이 하셨고요. 근데 알아보니까 아프리카 중에서 치안이 가장 좋은 나라 중 하나더라고요. 코로나 상황은 파견 예정 시기였던 올해 7월에는 좋지 않았어요. 당시에 인구는 천만명 중 하루 확진자가 심하면 3천명 가까이 나오고 있어서 파견일이 계속 미뤄지다가, 최종적으로 8월 말에 출국을 하게 됐어요. 코로나와 치안 등에 대한 이유로 망설였지만, 코로나 상황이어도 지금 제가 파견을 가지 않으면 (커리어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국제개발협력에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오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파견된지 두 달 정도 되셨을텐데요. 그동안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코로나 상황이나 치안 등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은 없었나요?

8월 말에 처음 왔을 때는 저녁 8시 부터 통금이 있었는데, 점차 9시, 10시, 11시로 완화가 되면서 이번주부터는 12시로 바뀌었어요. 코로나 관련 정부 정책이 완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일에서는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일을 통해서 많이 배우고 경험하고 있어요. 농업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YP로서 농업 사업을 담당하면서 NGO의 농업사업 모니터링도 하고, 협동조합 운영이라든지, 기후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관개시설을 어떻게 구축하는지 등의 과정을 보는게 정말 신기하더라고요. 1년 동안 여기서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재택근무를 했다고 들었는데 제가 파견된 시점부터는 사무실 출근을 했고요. 또 처음에는 단축 근무를 해서 8시 출근-4시 퇴근을 했는데, 10월 초부터는 단축근무가 종료되고 정상 근무 체제로 돌아왔습니다. 


파견 생활 자체가 인간관계도 제한적이고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도 많지 않다보니 고립되는 경향이 있는데요.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는 더 그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코로나 상황에서 파견 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도아님만의 방법이 있으실까요?

사실 저는 핵인싸 기질이 좀 있어가지고(웃음). (통금시간 안에서) 약속을 잡고 사람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중국 유학 생활부터 포함하면 해외 생활한지 거의 6-7년 정도가 됐는데요. 저는 그 나라 친구들을 사귀려고 노력하고 현지 문화를 체험하려고 해요. 또 르완다에도 중국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까 중국 친구들을 사귀기도 하고요. 네팔에 대한 애정이 계속 있다보니 르완다에 있는 네팔인 커뮤니티를 소개받아 네팔 분들과 네팔어로 얘기하거나 네팔 음식을 먹기도 하고요. 저는 계속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는데, 파견와있는 한국인들 중에서 굉장히 활발한 편인 것 같아요.  


저희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정말 건강하고 활발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웃음). 이렇게 일하고 사람들 만나는 동시에 또 <김치앤칩스> 활동도 같이 하고 계시는거죠? 

네, 맞아요. 화요일과 목요일에 카드뉴스가 업로드 되기 때문에, 월요일과 수요일에 퇴근하고 후다닥 작업을 해요. 한국과 7시간 시차가 있기 때문에 <김치앤칩스> 팀원들에게 초안을 공유하고 자고 일어나면 피드백이 와있어요. 그럼 출근 전에 피드백을 반영해서 후다닥 수정해서 컨펌을 받고 업로드 하고요. 2주에 한번씩 한국 시간으로 일요일 저녁 8시에 회의를 하는데, 여기 시간으로는 오후 1시다보니 딱 점심 약속을 잡을 때예요(웃음). 저는 종교가 없지만 일요일 점심은 교회 간다는 생각으로 김치앤칩스 모임을 하면서 팀원들과 서로 뉴스레터 기사에 대한 논의나 이벤트 기획 회의를 해요.  


코로나 시국의 파견 생활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쉽게 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 코로나 이후에 많은 분들이 해외에 있고 싶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봤어요. 대학교에서 만난 한국인 친구들도 졸업 후 중국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귀국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해외 파견의 경우 코로나 영향이 컸기 때문에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시던 분들의 일이나 삶이 불안정해지는 모습도 봤고, 작년에는 코이카나 NGO 봉사단원 분들도 모두 철수를 했잖아요. 이렇게 파견이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학교 졸업 후에 파견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서 도아님이나 주변 동료분들이 일하시는데 있어서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도 궁금한데요. 

아무래도 비대면으로 진행하는 활동이 많아졌다는 점인 것 같아요. 훈련이나 연수 같은 경우, 이전과 달리 이제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게 많았는데, 대면으로 했을 때보다 확실시 한계가 존재하는 것 같아요. 소통이나 효과성 측면도 그렇고, 인터넷 접근성이 안좋은 경우는 접속 자체가 어려우니까요. 활동을 비대면으로 대체하다보니 사업 규모 자체가 축소되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많고, 모니터링 횟수도 줄어들게 되고요. 여러 사람이 모이는 정부 관계자 연수를 하는 경우에는 3일에 한번씩 PCR 테스트를 받기도 했어요. 연수나 회의 장소로 직접 의료인력이 출장을 오셔서 테스트를 진행해주시거든요. 접종률에 따라 정부 지침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만큼, 향후에는 이렇게 축소되었던 부분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지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내년에 도아님은 어디에 계실지도 궁금해지는데요. 

네팔에 있을 것 같아요! (웃음) 네팔에서 교육 분야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요.만약 르완다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난 뒤에 네팔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네팔에 가서 네팔어 배우면서 지내다가 포지션이 생기면 지원하려고 하고요. 한국 NGO에서 일할 기회가 제한적이라고 한다면, 네팔에 있는 중국 기업에서 일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쨌든 네팔에서 가급적이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보려고 합니다. 


내년에는 네팔에 계신 도아님을 다시 인터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도아님과 비슷하게 코로나 상황에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셨거나 혹은 준비하고 있는 주니어분들에게 오늘 이야기가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못다한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마지막으로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5년 정도 공백이 있다가 다시 국제개발협력 분야로 발을 들이게 된 지 두달 밖에 안된 상황이라,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요. 오늘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여기서 아빠라고 부르는 네팔 분 댁에서 파티를 할 예정인데요. 그래서 오늘 이렇게 네팔 전통복을 입어봤어요! (웃음) 마지막으로 저희 줌으로 같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물론이죠! 너무 잘 지내고 계신 것 같아서 저희도 에너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단체사진 찍고 인터뷰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일 하시네요 vol.2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19 국제개발 활동가들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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