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일 하시네요 Dec 22. 2021

03 코로나19 위기 관리 최전선에서 일한 1년의 기록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 시대, 국제개발 활동가의 일


“불확실성 세제곱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도 불확실한 존재인데,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불확실하고, 지금 우리의 상황도 불확실한 거죠.”



2019년, 오늘의 인터뷰이인 강신호는 퇴사 후 영국으로 떠났다. 그가 가는 길을 지인으로서 응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강신호는 종종 텅 빈 학교 사진이나, ‘사람이 없으니 여우가 신나게 돌아다닌다’는 글이나, 아무도 없는 학교 계단을 홀로 뛰어오르는 영상 같은 걸 SNS에 올렸다. 그리고 또 얼마 뒤,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던 그가 다시 아주 한적한 인천 공항을 거쳐 캄보디아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여전히 강신호의 타임라인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혼자 먹은 음식이나 고양이 사진만 올라왔다. 신호좌, 대체 2년간 어떤 삶을 사신 겁니까… 코로나19가 시작되던 때부터 현재까지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계속 해외에 머물렀던 강신호를 줌으로 만나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캄보디아에서 일하고 있는 강신호입니다. 한국에 있는 NGO에서 6년 동안 근무하다 퇴사 후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작년 말쯤에 캄보디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시점에 영국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부를 마친 후 한국에서 일을 다시 시작하는 대신 캄보디아라는 또 다른 나라로 향하셨더라고요(웃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파견을 결정하는데 망설임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다른 분들과 출발점이 조금 달랐던 것 같기도 해요. 우선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이미 한국을 떠난 상황이었거든요. 팬데믹 초기, 영국은 한국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어요. 확진자수가 (한국 대비) 거의 두배에 가까웠지만, 당시만 해도 영국 사람들 대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었고요.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돌아왔을 때, 지금 파견된 기관인 코이카의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는데요. 당시에 캄보디아는 타국가에 비해 코로나 확진자 수가 많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기대 아닌 기대도 있었던 터라, 파견을 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미 해외에 나가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해외 파견에 대한 불안도가 상대적으로 낮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부 국가에서 백신 접종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할 무렵에 캄보디아에 왔어요. 머지않아 접종을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기서 한 텀을 보내면 어느 정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어요.


파견 생활을 시작하신 지 이제 10개월 정도가 되셨는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캄보디아에 왔을 때는 (코로나 상황이) 안정적이었어요. 일일 확진자가 8명에서 10명 정도였고, 올해 2월 초까지만 해도 누적 확진자 수가 400명대였어요. 정상근무 체재로 사무실로 매일 출근을 했고, 출장이나 파트너 기관과의 미팅 등 다른 업무들도 안정적인 상황이었죠. 파견 초반 업무는 재정비와 도약의 느낌이었어요. 주요 업무가 봉사단원 관리인데, 코로나 때문에 단원들이 없으니 단원들이 재파견될 그날을 기다리는 거죠. 동시에 현재 파견되어 있는 인력들의 안전관리도 담당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2월 말부터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2021년 10월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 수가 11만 명을 넘어섰거든요. (2021년 12월 17일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는 약 12만 명이다 – 편집자주) 10개월 만에 10만 명이 늘어난 거죠. 이런 상황은 사무소에서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고, 모두 예상을 못했던 일이라 2분기에는 24시간 대기하는 것처럼 일했어요. 정부에서 락다운이나 이동제한과 같은 정책을 이틀 전에 발표하고 갑자기 시행하게 되면서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 생겼거든요. 예를 들어, 지방으로 출장 간 인력들이 이동제한 조치로 인해 수도로 돌아올 수가 없다든지 하는 일이요.

한 번은 한인 교민 사회에서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중증 환자가 발생한 적이 있었어요. 국제 보험사의 에어 앰뷸런스를 통해 한국으로 이송하려고 했지만 캄보디아 정부에서는 확진자를 국외로 보내본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승인을 해주지 않았어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 기관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부적으로 이러한 리스크를 인지하고 있을까? 보험사에서는 대비책이 있었을까? 이러한 상황에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이나 해당 국가의 정부가 협조적이지 않을 경우 등 시나리오별 대비책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한동안은 체계와 비상시 대응방안 만드는 일을 우선으로 했어요. 사무실에 산소통이나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비상약 등을 구비해두기도 했고요.


업무 특성상 코로나19와 관련한 위기 대응의 최전선에 계셨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일일 상황보고를 하고 있어요. 확진자 수, 증가 추이, 지역별 확진자 현황 등과 관련한 정보를 매일 수집해서 정리하고 보고하죠. 이렇게 데이터를 모으다 보니 주간 확진자 추이가 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5월부터 지방에 있는 수행인력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안전 관련 회의를 하고 있어요.

다행히 캄보디아 정부가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어서, 현재 1차 접종 완료율이 90%에 달하고 있어요. 일반 국민들은 시노팜과 시노백 백신을, 의료 종사자, INGO, 외교 파트너 등은 주로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을 접종하고 있어요.

정리하자면, 요즘에는 매일 코로나 관련 상황을 점검하고 있고, 사업 수행 인력의 백신 접종 지원, PCR 신속 진단 키트 구매, 확진자 대응 매뉴얼 수립 등의 업무를 하고 있어요. 기관 방침에 따라서 곧 봉사단 파견이 재개될 예정이라, 연말까지는 파견 준비 업무를 하게 될 것 같아요.  


혹시 파견직 안전관리 및 코로나19 위기 대응과 관련하여 시민사회단체들의 상황은 어떤지도 궁금한데요.

파견 초기에 시민사회 파트너들과의 온라인 간담회를 통해 제가 하고 있는 업무인 안전관리와 관련된 내용을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참여하신 분들께 각 기관에서 책임을 가지고 현장에 인력을 보내야 한다고 말씀드렸어요. 기관마다 상황과 가치관이 다르다 보니 할 수 있는 대응 조치의 수준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아직 대비책이 부족한 곳들도 있고요. 다행히 아직까지 심각한 상황은 없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신호님의 세 번째 파견지이고, 이전에 남수단에서 내전으로 인해 긴급 대피하신 적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수단에서는 내전 상황을, 캄보디아에서는 팬데믹을 경험하고 있는데요. 병렬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각각의 상황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피곤함의 정도로 얘기하자면 지금이 더 피곤한 것 같아요. 남수단에서도 늘 긴장하면서 지냈지만 일상생활에서의 불확실성을 지금처럼 크게 느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는 예측을 할 수 없으니까요. 불확실성 세제곱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저도 불확실한 존재인데, 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불확실하고, 지금 우리의 상황도 불확실한 거죠. 같이 일하는 동료가 코로나 확진이면 저도 자가격리를 해야 하는 이 상황. 이런 상황들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어디서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모르니까요.


불확실성 세제곱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많이 되는데요.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감을 해소하는 신호님의 방법이 있으실까요?

10개월이 넘는 파견기간 동안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한 경우가 다섯 번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안전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보니 약속을 잡을 때도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한 끼, 보통 저녁식사를 나에게 잘 차려주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요. 그외에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보기도 하고,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거나 축구를 하기도 하면서 버티고 있어요. 이런 생활을 캄보디아에 와서 처음 겪었다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영국에서 한번 경험을 했었기에 그럭저럭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팬데믹이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들에게 미친 영향이나 변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업무적으로 보면 생소했던 개념들이 주류로 가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USAID의 ‘Remote evaluation’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출장이 어려워지면서 원격으로 평가를 하기 시작했잖아요.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생겨나요. 원격으로 가능할까? 데이터만 가지고 가능할까? 앞으로도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이렇게 원격으로 가능하다면 활동가들의 파견이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나가서 일을 했던 것이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우리의 개입이 정말 쓸모 있었을까? 갈 수 없고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해야 하고 우리 없이도 무언가는 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자연스럽게 ‘코로나 상황에서도 파견은 계속되어야 할까?’란 질문으로 이어지는데요. 신호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파견 인력이 없어질 경우 사무실 운영이 잘 될까를 생각해 보면 파견은 재개될 것 같아요. 현지화(localization)나 권한 이양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더딘 것이 사실이니까요. 이런 흐름이 한 번에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군가는 있어야 하니 최소한의 인력, 필수 인력의 파견은 계속되겠죠. 다만 위기대응체계가 잘 갖추어져야 하고요. 지금 당장 위기대응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업계 전체의 안전관리 체계가 안정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년 혹은 내후년을 상상해봤을 때, 어떤 변화들이 있을까요? 혹은 아무런 변화 없이 이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가 있을까요?

우리가 일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회복이 더 더딜 수밖에 없고요. 우리가 그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하는 동안에도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차이는 더 클 것 같아요. 가령 코로나19로 인해서 교육을 받지 못한 아동의 학습 공백은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온라인 교육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아동의 비율은 실제로 얼마나 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우리가 10년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있다면 코로나로 인해서 그 기간이 훨씬 늘어나지 않을까요. 또 어느 정도의 요건이 갖춰지면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낄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현장의 변화를 우리의 일로써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라는 고민이 생기네요. 내년 이맘때는 모두가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1년 후 오늘 신호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개인적인 이유로 다른 파견지에 있을 것 같아요. (웃음) 갈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알아보고 있어요.  


그곳에서는 여러 사람들과 마음 편히 저녁식사를 즐기는 파견 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라고 기대해보겠습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셨던 말씀이 있다면 편하게 나눠주세요.  

다른 국가도 비슷하겠지만, 캄보디아의 경우 외국인이 갈 수 있는 병원이 한정적이에요. 혹시 확진자가 발생하면 치료할 수 있는지 병원마다 전화를 걸어서 확인해야 해요.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가 가능하더라도 최저 1만 달러에서 최대 8만 달러에 달하는 예치금을 내야 하죠. 이러한 상황을 우리 기관에서 인지하고 있는가? 예치금을 선지급을 할 수 있는가? 보험의 보장내역은 충분한가? 지금은 이런 조건도 파견 고려사항에 필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불가능하다면 내가 증상이 심각하더라도 병원에 가기가 어렵겠죠. 얼른 4만 달러 정도 준비해 놔야겠네요. (웃음)




좋은 일 하시네요 vol.2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19 국제개발 활동가들의 일

매거진의 이전글 02 델타 변이가 확산되던 8월, 다시 르완다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