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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일 하시네요 Feb 18. 2022

04 활동가 잡담회 2편:코로나 2년, 본질을 고민하다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 시대, 국제개발 활동가의 일



NGO 활동가로서 국제개발협력의 본질적인 일은 우리의 가치와 방향성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 아닐까요.

 

좋은 사업은 현장의 맥락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문서로만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 가서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맞춰 기획된 <이 시국 활동가> 시리즈는 오미크론 변이로 일일 확진자가 5만명을 넘어서는 시점에 마무리하게 되었다. 아직은 과거형이 되지 못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우리가 놓지 않고 가져가야 하는 것은 무엇일지 중간급 이상 활동가 4명과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보았다.



좋은 일 하시네요: 공통적으로 주신 의견이 파트너십 형태보다는 현장사무소와의 기존 관계와 사업 경험이 사업관리에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네요. 그렇다면, 파트너십 중심으로 일하는 기관의 경우, 코로나로 인해서 어떤 영향들이 있었는지 희영님이나 유나 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박희영: 사실 원격 모니터링만 했다고 해서 사업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무엇을 사업의 ‘질’이라고 봐야 할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코로나로 인해서 계획했던 대로 사업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졌고 활동이 지연되는 경우도 많잖아요. 자연스럽게 예산 집행율도 낮아지고요. 이런 상황에서 기관 안팎으로 코로나19 대응 활동으로 변경해서 진행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들이 있었어요. 담당자로서도 변경하는 게 차라리 쉽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희 현장의 스텝들은 계획했던 활동을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저희 사업활동의 대부분이 지역주민의 생계와 직결되는 부분이라, 이런 활동을 코로나 대응 활동으로 바꿔버리면 나중에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그런데 도너 입장에서는 사업 기간 동안 써야만 하는 예산과 달성해야만 하는 성과가 있으니, 사업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할 수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사무소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도너의 요구사항과 현지의 입장 차이를 조율하고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우리가 앞으로 더 많이, 그리고 치열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일 하시네요: 데스크 담당자의 역할이 여느 때보다 더 중요했던 시기였던 것 같은데요. 말씀 주신 부분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나 역량들이 실무자에게 필요할까요?


박희영: 굉장히 광범위한데요. (웃음) 우리가 스페셜리스트, 제너럴리스트 이런 얘기 많이 하잖아요. 저도 한 때는 어떤 섹터를 바탕으로 한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뭔가 제너럴리스트는 비전문가 같고 스페셜리스트는 멋져 보이잖아요(웃음). 그런데 코로나 상황을 겪으면서 데스크 업무가 굉장히 프로페셔널해야 한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데스크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사업의 기획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다 알아야 하고, 성과와 예산 관리도 종합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현장에서는 스페셜리스트 분들이 업무를 하고 계신다면, 데스크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실무자에게는 ‘코디네이션’이라고 하는 전문성이 높은 수준으로 필요한 거죠.



좋은 일 하시네요: 공감해요. 저도 ‘코디네이션’이 전문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 인데요. 실제로는 저평가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코디네이션은 커뮤니케이션이자 협상이자 외교이기도 하잖아요. 조정을 ‘잘’ 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내용, 예산, 도너 규정(Donor Compliance)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어야 하고요.  


신유나: 저도 말씀하시는 ‘코디네이션’에 대해서 공감해요. 제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한국 본부에서 일하는 실무자의 역할이에요. 저희 기관의 경우에는 국가사무소와 파트너십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한국사무소에서는 데스크 업무뿐만 아니라 정기적으로 현지 출장을 가서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코로나로 출장이 막히다 보니까 내부에서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아졌어요. 우리가 현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사업은 돌아가는데 그러면 앞으로도 우리가 굳이 가서 봐야 하는 걸까,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꼭 가야만 할까, 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역할은 앞으로 어떻게 가져가야 할까, 등의 고민들이요. 그 예로, 1월에 아시아 국가로 출장을 논의하고 있는데, 코로나 상황에서 꼭 가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내부적으로 설득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요. 내부적으로 논의가 진행되는 걸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출장을 가서 대면으로 어떤 논의를 해왔고, 어떤 것들을 보고 싶었을까를 스스로 자문하게 돼요. 여러모로 출장 모니터링의 의미와 필요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아직 답은 못 찾았어요. (웃음)


박희영: 출장 말씀하시니까 드는 생각인데요. 사실 탄소 배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비행기잖아요.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사람으로서 비행기를 덜 타야 하는 상황이 머지않아 올 것 같아요. 가까운 미래에는 현장과 데스크가 협력하면서 출장이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사업관리 영역은 현장에서의 책임이 더 강화될 것 같고, 국내에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연구하고 공유하는 역할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현장을 존중하면서 일해야 하지만, 우리의 미션과 전략, 방향성에 대해 파트너들과 오픈해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어떤 새로운 인사이트를 가지고 현장과 논의할 수 있을지, 내가 이 파트너십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는 거죠.



좋은 일 하시네요: 결국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으로 이어지는 것 같은데요. 출장도 파견도 어려워진 지난 2년의 시간을 보내며 우리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꼭 가져가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뭘까요? 질문이 너무 어렵나요? (웃음)


서진원: 코로나로 출장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에서 근무하는 활동가들에게 많은 고민이 생겼을 것 같은데요. 일의 특성상, 적절한 빈도의 출장이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동시에 개인을 위한 동기부여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런 것들이 어려워진 거잖아요. 이런 시기가 길어질수록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동시에 실무자들의 스트레스는 누적되면서 동기 부여도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개인의 동기부여를 위해 출장을 가야 하는 것은 아닐테고요.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국내 국제개발계에서 무엇이 더 중요해 질까를 생각했을 때, 연구와 평가 영역이 더 강화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사업관리 영역도 중요하지만 이 영역은 현장에서의 책임이 더 강화될 것 같고, 그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을 연구하고 그 안에서 교훈점들을 도출해서 공유하는 역할을 더 강화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다만 아직까지는 업계 전반적으로 레슨 런(Lessons learned)을 공유하는 것을 조금 꺼리는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어요. 도너 중심으로 사업 성과를 보고하는 편이고,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은 공개하기가 조심스럽기 때문인 것 같은데, 앞으로는 이런 분위기들이 좀 더 개선되어서 사업에 대한 연구나 평가가 활발히 진행되면 좋겠어요.


박희영: 요즘 저도 저희 기관의 보고서를 냉정하게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환류의 측면에서 사업의 성과와 챌린지를 외부에 공유하고 싶은데,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기관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런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네요.



좋은 일 하시네요: 실질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자리를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앞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요. 광훈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광훈: 사실 코로나 이후로 우리 본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회계는 회계팀에서 하면 되고, 파견 인력 관리는 인사팀에서 하면 되고, 사업은 현장에서 하면 되는데 그렇다면 본부의 해외사업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어요. 우리가 다 NGO에서 일하고 있잖아요. 시민사회단체는 각 기관의 가치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NGO 활동가로서 국제개발협력의 본질적인 일은 우리의 가치와 방향성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귀결되더라고요. 우리 기관이 가지고 있는 ‘미션’과 ‘가치’를 현장에 계속 심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사람을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박희영: 본질은 당연히 각 기관의 미션이겠지만, 좋은 사업은 현장의 맥락을 아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문서로만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현장에 가서 현장의 맥락을 이해하고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은 출장을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 간의 교감은 성과로 측정할 수 없는 거잖아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이고, 또 하나의 우리가 반드시 가져가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현장의 맥락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한국에서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 도 있어요. 대신 탄소배출 때문에 전략적으로 가야겠죠. (웃음)


신유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니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웃음) 저는 파견도 가보고, 콘텐츠 기획, 사업기획, 인도적 지원 등 여러 포지션에서 업무를 했어요. 현장에 가서 파트너들을 만나보면 그분들은 한국사무소의 방향성이나 특정 이슈에 대한 입장을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물론 우리가 현장을 존중하면서 일해야 하지만, 우리의 미션과 전략, 방향성에 대해 파트너들과 오픈해서 토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의 다이내믹을 통해서 예기치 못한 좋은 성과를 얻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새로운 인사이트를 가지고 현장과 논의할 수 있을지, 내가 이 파트너십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하는 거죠.


박희영: 공감해요. 저는 사업을 처음 할 때 나는 현장을 잘 알지 못하니 해만 끼치지 말자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나보다 현장의 이해가 높은 현지 직원분들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파트너 기관과 논의를 할 때 내가 다 해볼게, 어떻게든 해볼게, 라는 마음으로 노력해왔고요. 현장은 힘드니까 내가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힘들어질 수 있겠더라고요. 또, 현지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다 보니 우리는 우리 기관의 가이드라인이나 도너 컴플라이언스를 지켜야만 하는 책임이 있는데 조금 모호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현장의 요구를 존중하면서 우리 기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가는 것, 책임과 의무를 상호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좋은 일 하시네요: 긴 시간 동안 솔직한 이야기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로가 되었어요. 아마 이 인터뷰를 보시는 다른 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멤버 케미가 좀 좋은 것 같아요(웃음). 다음번에 또 좋은 기회로 다시 이야기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현업이 바쁘지만 또 힘내서 다음 기획 준비해 볼게요.  




좋은 일 하시네요 vol.2

이 시국 활동가; 코로나19 국제개발 활동가들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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