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 하시네요
입사 후 처음 맡았던 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한 출장이었다. 여러 번 방문 했던 곳이었지만 사업 종료 시점이라 준비할 것이 정말 많았다. 선배들이 ‘출장은 체력’이라는 귀한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는 “비행기에서 푹 자면 된다”고 웃으며 답했다. 출발 전부터 강행군을 지속한 상태에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공항에는 현지 사무소 동료가 마중 나와 계셨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도 잠시, 내일 일정을 위해 서둘러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평소에 이용하던 곳이 아닌 새로운 숙소였는데, 인터넷이 잘 끊기지 않아 머무는데 훨씬 편할 거라는 사무소의 깊은 배려였다. 새로운 숙소는 조금 추웠고, 나는 숙소에 있던 커피메이커에 생수를 넣고 미지근하게 데워서 마시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인생 최악의 물갈이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데 아침부터 설사를 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음식을 섭취했던가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설상가상으로 수도에서 사업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했다. 작은 비행기 안에서 1시간 정도를 보내는 동안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여러 개의 꾸불꾸불한 상봉을 넘어갈 때마다 기체가 위아래로 흔들렸고, 급기야는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겨우 사업장에 도착했을 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급하게 ‘물갈이’를 검색하니 “고열, 두통, 한기, 어지럼증, 잦은 설사, 구토 증상을 보일 수 있다”는 문장이 보였다. 구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나는 일주일 간 그 모든 증상을 성실하게 차례로 경험했다. 하루는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었다가 다음 날에는 고열로 종일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계획한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사업장 한 곳 한 곳을 돌아보고 주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흙먼지가 자욱한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을 때면 어지러움이 심해져 영혼이 가출하는 느낌이었다.
챙겨왔던 상비약을 꾸준히 먹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고, 끼니때 마다 수프를 시켜 먹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숙소 식당에 메뉴가 많아 매일 다른 종류의 수프를 먹을 수 있긴 했지만, 하얀 쌀을 부드럽게 끓인 미음 생각이 간절했다. 현지 동료들과 사업의 마무리를 축하하고 서로의 수고와 애씀을 위로하는 마지막 식사 때에도 나는 야채수프를 주문했다.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서 맛있게 먹는 동료들과 함께 어깨춤을 출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사업장에 머무는 내내 나를 걱정하고 챙겨줬던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컸다. 마지막을 이런 모습으로, 이런 기억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 또한 너무 속상하고 좀 부끄럽기도 했다.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기분으로 사업장에서 1주일을 보내고 다시 수도로 돌아왔다. 사업장에서 수집한 소중한 자료들과 중요한 논의 결과들, 그리고 여전한 나의 물갈이 증상과 함께. 수도에 며칠을 더 머물며 마무리할 일들이 남아 있었기에 계속해서 이런 컨디션으로 지내는 건 무리였다. 결국 주말을 맞아 큰 병원을 방문했다. 긴장 속에서 여러 검사를 진행했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없었고, 의사 선생님은 증상을 완화해 줄 수 있는 약을 몇 가지 처방해주었다. 약을 먹으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너무 따스해서 당장이라도 설사가 멈출 것 같았다.
진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식당에 들렀다. 평소 출장 중에 한식당을 찾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날은 한식이 너무나 그리웠다. 최대한 부드러운 음식을 찾다가 메뉴판 구석에 적힌 만둣국과 계란찜을 발견했다. 손님이 많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한 식당 구석에서, 따뜻하고 뽀얀 국물의 만둣국과 조그마한 뚝배기에 담긴 보들보들한 계란찜을 마주했다.
우선 쌀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서 만둣국 안에 밀어 넣었다. 만둣국에 퐁당 빠진 밥알이 부들부들하게 풀어질 동안, 포슬포슬한 계란찜을 조심스럽게 떠서 호호 불어먹었다. 한국에서는 특별한 음식이 아니지만 이날 내가 먹은 만둣국와 계란찜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그 어떤 귀한 음식을 먹은 것보다도 행복했다. 못내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걱정과 불안과 속상함이 뜨거운 음식을 타고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그 음식들을 다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한 숟갈 한 숟갈에 집중하며 비워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날이 쌀쌀하고 몸이 으슬으슬해지는 날이면 기관 근처에 있는 만둣국 집을 찾는다.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날에는 집에서 계란 3개와 파를 송송 썰어 넣어 뜨끈한 계란찜을 만들기도 한다. 기분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그날의 만둣국과 계란찜을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 동시에 그 때 먹지 못했던 스파게티도 생각난다. 물갈이만 아니었다면 동료들과 함께 웃으며 마지막 식사를 즐길 수 있었을텐데, 못다한 이야기들이 남아 아쉬운 마음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고 다시 현장을 찾을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꼭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아 야무지게 먹어야지. 동료들과 함께 어깨춤을 추며.
글 정다람, 인도주의기관 사업팀에서 4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막내입니다. 학부 때 말라위에서 8개월을 지냈던 시간을 시작으로 이 분야에 입문하였습니다. 사업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동료들과 주민들의 이야기가 늘 궁금합니다.
그림 이유연
편집 좋은 일 하시네요(인스타그램 @suchagood_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