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아침
유정의 눈꺼풀은 또래 아이들처럼 살집이 올라 부드럽게 덮이지 못한 탓에,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살갗 아래로 가느다란 혈관들은 고요히 흐르며 그녀의 내면에 응축된 긴장을 은밀히 발설했다. 코끝은 밤새 찬 공기를 들이마신 탓에 미세하게 붉었고, 속눈썹은 한 올 한 올이 날을 세운 창처럼 단단히 뻗어 있었다. 작고 여린 몸이었으나, 그 안의 모든 기관이 질서 정연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새 유지되던 그 고요한 질서는,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아직 눈곱으로 굳지 못한 눈물이 맺힌 유정의 눈가에 형광등 불빛이 날카롭게 스며들었다.
순식간에 고요가 깨지고, 방 안의 공기가 얇게 떨렸다. 유정의 인상은 반사적으로 구겨졌고, 눈썹은 눈꺼풀 가까이로 끌어당겨졌다. 빛이 눈 틈 사이로 파고드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눈꺼풀을 눌러내렸다.
매일 아침 찾아오는 그 빛의 침입은 아무리 익숙해지려 해도 끝내 몸에 익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눈꺼풀 아래 숨어 있던 유정의 눈동자였다. 그 눈동자는 밤새 자신만의 리듬으로 미세한 궤도를 돌다가, 의식이 깨어나기도 전에 밀려드는 빛의 침투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유정은 어느새 몸을 말아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본능처럼 찾아낸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두께감이 제법 있는 겨울 이불조차 형광등의 빛을 완전히 막아내진 못했다. 연분홍 이불천을 비집고 스며든 빛이 희미한 주황으로 번지며, 닫힌 시야를 서서히 물들였다.
그 빛은 어느새 유정의 감각을 천천히 덮으며,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녹여갔다.
정확히 어디였는지,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주황빛 속에서 오래전의 잔상이 불쑥 피어오른 듯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어딘가로 이끌리듯 몸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말간 무의식의 물 아래로 잠기듯, 유정은 기억 저편의 어딘가에 닿고 있었다. 머릿속은 희뿌연 안개로 가득해, 그때가 몇 살 무렵이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선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시간 속의 유정은 분명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Moon River>가 나지막이 흘렀다. 운전석의 엄마는 콧노래를 흥얼대며 노랫말을 따라갔다. 곡이 세션 연주로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핸들 위 손끝으로 박자를 맞추었고, 흥에 겨운 어깨가 조용히 들썩였다.
창밖의 풍경은 터널 안이었다.
주황빛 조명이 끊어지듯 이어지며 차창을 스쳤고, 그 불빛은 노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사물의 윤곽을 물들였다. 엄마의 어깨 역시 조명에 따라 주황빛으로 환해졌다가, 곧 어둠 속으로 스며들기를 반복했다. 형광등 빛이 스며든 이불 안은, 기억 저편의 그 터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날, 유정은 차 안에 있었고,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드라이브가 한창이었다. 늘 그렇듯 꿈은 끝을 보기도 전에 깨어나기 일쑤였기에, 목적지는 언제나 불분명했다. 터널 밖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모호함이 오히려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아무도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그런 장면이었다.
운전석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엄마를 보자, 유정은 처음 보는 엄마의 몸짓이 괜히 반가웠다. 뒷자리에서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려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 얼굴은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잘라낸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어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상하다 여겼을 테지만, 꿈속의 유정은 그저 ‘안 되면 말고’ 하고 금세 단념해버렸다.
그날, 엄마는 디바였고 차는 그녀를 위한 무대였다. 유정은 그 무대의 유일한 관객이었고, 디바의 얼굴은 끝내 볼 수 없었지만 ‘아무렴 어때. 엄마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 하고 생각했다.
기억은 서서히 유정의 정신을 잠식해갔고, 현실과 꿈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어느 쪽이 진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유정은 그 모호한 경계 속으로 천천히, 조용히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눈꺼풀 위로 드리운 주황빛 어둠을 가르며 짙은 그림자가 밀려들었다. 그것은 이불 위를 스치더니 이내 훌쩍 이불을 걷어내어 바닥에 내던졌다.
“일어나라니까, 좀!”
찬 공기와 형광등 불빛에 갑작스레 노출된 유정은 잠옷 차림으로 몸을 잔뜩 웅크렸다. 민선의 목소리는 아침의 적막을 가르며 방 안 가득 울려 퍼졌다. 나른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예민한 긴장이 또렷이 자리 잡았다.
가까스로 일어난 유정은 침대에 망연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둠이 짙었고, 창밖은 아침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몸은 이미 현실에 붙들렸지만, 정신은 아직 꿈의 어귀를 맴돌았다.
‘새벽인가… 왜 자는 도중에 깨웠지… 어제는 금요일이었는데… 그럼 오늘은 학교 안 가는 날 아닌가… 휴일에 왜 벌써부터…’
머리맡 창으로 찬바람이 한 줄기 밀려들었다. 그제야 해가 짧은 겨울이라는 사실이 몸에 각인되었고, 이른 아침임을 깨달았다. 눈길을 창밖에서 방 안으로 돌리자, 감은 머리에 수건을 틀어 올린 민선이 옷장을 분주히 뒤적이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다급하면서도 단호했고, 어딘가 결심이 깃든 듯했다.
일어나긴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유정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 유정을 바라보던 민선은 처음엔 짜증 섞인 말투로 왜 가만히 앉아만 있느냐고 다그쳤다. 하지만 곧 딸이 사정을 모른다는 걸 눈치채고는 목소리를 한 톤 낮췄다.
“이유정, 저기 옷장 문고리에 걸어놓은 옷 보이지? 씻고 그걸로 갈아입어.”
유정은 고개를 돌려 잠자리 왼편의 붙박이장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문고리에는 처음 보는 옷 한 벌이 걸려 있었다. 종잇장처럼 얇고 희디흰 블라우스엔 금색 단추가 소매와 가슴선을 따라 박혀 있었고, 그 옆에는 무릎 위까지 오는 남색 치마가 걸려 있었다. 치맛자락엔 레이스가 겹겹이 달려 있어, 조금만 움직여도 바스락거릴 듯했다.
옷에 대한 안목이랄 게 없는 유정이 보기에도, 그 차림새는 하나의 완성된 이미지처럼 보였다. 마치 옷가게 마네킹이 입고 있던 걸 통째로 떼어온 듯했다. 그러나 그 낯선 조화는 방 안의 모든 것과 어울리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 옷걸이에 걸린 옷은 묘하게 불편해 보였다. 좁고 누추한 공간 속에서 홀로 위용을 드러내며, ‘나는 이곳에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하듯 버둥거리고 있었다.
유정이 옷 앞에서 한참을 머뭇대자, 화장 솔에 붉은 파우더를 묻혀 두 볼을 쓸어내리던 민선이 곧장 다가왔다. 말없이, 그러나 익숙한 손길로 블라우스를 입히고 치마의 단추를 잠가주었다. 오랜만에 닿는 엄마의 손길은 따뜻하다기보다 낯설었다. 스치는 손끝마다 피부가 움찔거렸고, 유정은 그 반응을 스스로도 어쩌지 못했다. 민선의 손길에는 매일같이 딸을 돌본 사람의 망설임 없는 정확함이 있었지만, 그 속도는 어딘가 급했고 시간을 쫓는 듯 단호했다.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이, 유정은 어느새 다른 차림이 되어 있었다. 처음 입어보는 레이스 치마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섬세한 감촉이 허벅지를 따라 척추까지 서늘하게 타올랐다. 가려운 것도 아닌데, 어딘가 간질간질하고 낯선 감각이었다.
낯선 옷의 감촉과 서두른 준비에 정신이 빼앗긴 와중에도, 유정은 애써 오늘 외출의 목적을 짐작해 보려 했다. ‘가족사진이라도 찍으러 가는 걸까. 그런데 둘만 있는 가족사진이 있을까?’ 엄마는 ‘일찍 나가야 한다’는 말 외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숨기려는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물을 수도 없었다. 혹시 그 질문이 엄마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유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차라리 묻지 않고 따라나서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알려주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겠지, 혹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일 수 밖에 없었다.
유정의 차림이 마쳐지자마자, 민선은 다시 화장대 앞으로 가 앉았다. 진달래빛 별들이 출렁이는 듯 반짝이는 립글로스를 조심스레 입술 위에 얹으며 화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장롱 안 깊숙이 손을 넣어, 짙은 밤색의 투피스 정장을 꺼내 들었다.
유정은 그 옷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해마다 계절이 바뀌고 유행이 지나가도 늘 한 자리를 고집하던 터줏대감 같은 옷. 먼지 속에 묻혀 잊혀졌던 그것은 오늘따라 구김 하나 없이 반듯했고, 색도 다시 살아난 듯했다. 아마 세탁소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밤색 천이 민선의 피부에 닿자, 본래도 밝던 피부는 더욱 뽀얗게 빛났다. 살짝 파인 목선은 고개를 조금만 숙여도 그 너머를 내보일 듯 아슬아슬했고, 높이 틀어 올린 머리 틈 사이로 삐죽이 빠져나온 몇 가닥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바람이라도 스치면 흔들릴 듯한 그 실오라기들은 절벽 끝에 자란 소나무처럼 위태롭고도 단단했다.
유정은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랫배 어딘가, 조용히 잠자던 무언가가 문득 깨어나 작은 떨림을 만들었다. 달 속 토끼가 조용히 떡방아를 찧듯, 익숙지 않은 리듬이 속에서 울렸다. ‘야하다’는 말이 이런 걸 뜻하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품위 있게 차려입은 엄마가, 전라였던 어느 날의 엄마보다 더 낯설게 느껴졌다. 더 조심스럽고, 더 아름답고, 그래서 더 두근거렸다.
거울 앞에 선 민선은 옷매무새를 살피며 몸을 좌우로 가볍게 돌렸다. 움직임에는 묘한 흡족함과 은근한 교태가 서려 있었다. 유정은 아직 어른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아직 자신도 모르게 자라고 있는 여자의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그동안 ‘엄마’라는 이름 아래 눌러두었던 무언가를 오늘만큼은 숨기지 않기로 한 듯했다. 한 여자로서의 자신을 꺼내어, 오랜만에 세상 앞에 내보이려는 순간이었다. 그 모습에는 단순한 외출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