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모녀의 외출

by 김승예

유정과 민선은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얇아진 옷차림은 차가운 공기를 조금도 막아내지 못한 채, 그대로 피부를 파고들었다. 유정이 내쉰 숨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 천천히 떠올라 속눈썹에 닿았고, 맺힌 물방울은 금세 결로가 되어 시야를 흐렸다. 앞이 뿌옇게 흐려지자 유정은 성가신 듯 손등으로 눈가를 훑었다.


쌀쌀한 기운이 차 안에 가득 차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오직, 귀에 익어 의식하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엔진 소리만이 잔잔히 깔려 있을 뿐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유정은 룸미러에 비친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율무차빛 아이섀도가 얹힌 눈가는 결연해 보였고, 굳게 다문 입술과 고요히 세워진 이마엔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유정은 시선을 내려 무릎 위에 놓인 치마의 레이스 자락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싫증이 나, 김이 서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별 모양, 하트 모양. 손끝이 지나간 자리에 생긴 맑은 틈 사이로 밖의 세상이 조금씩 드러났다.

출발 직후까지만 해도 익숙한 골목과 간판이 이어졌지만, 20분쯤 지나 동네를 벗어나자 창밖의 풍경은 모조리 낯선 것들로 바뀌었다. 마치 다른 나라의 공기를 마시는 것처럼 모든 것이 어딘가 어긋나 보였다.

차라리 어디로 가는지 알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라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침묵은 공간보다 시간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창문은 금세 유정의 그림으로 가득 차서 투명해 졌고, 더는 그릴 곳조차 남지 않자 졸음이 서서히 눈꺼풀을 눌러오기 시작했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의식이 잠의 가장자리를 맴돌 즈음, 엄마가 마침내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이유정. 너 지금 어디 가는 줄 알아?”

그 한마디가 공기를 가르며 유정의 뇌리를 찔렀다. 유정은 남은 잠의 흔적을 털어내려 눈을 비비며 정신을 붙잡았다. 엄마가 이제 막 꺼낸 말 한 조각도 놓쳐선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다.

“몰라요. 어디 가는데요?”

“아빠 만나러 가는 거야.”

“...아빠요?”

유정은 되묻고 나서도, 그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를 만나러 가는 날인데, 엄마의 말투는 마치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 것처럼 무덤덤했다.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그 말이, 이렇게까지 평범한 어조로 건네질 수 있다니.

열두 해 만에 꺼내든 단 두 글자 속에는 분노도, 설렘도, 미련도 없었다. 오직 사실 하나를 전달하는 기계적인 어조만이 남아 있었다.

‘엄마와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산다는 그 아빠가 왜, 하필 오늘, 우리를 보자고 한 걸까?’

의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유정의 눈동자엔 불안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30분만 더 가면 도착할 거야.”

엄마의 말에 유정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기억 속에서도 흐릿한 존재였던 아빠를, 이제 겨우 30분 남짓한 거리에서 만나게 된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차가 멈춰 선 곳은 익숙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시가지의 한가운데였다.

회색빛 도로 위에 홀로 솟아있는 열 층 남짓한 작은 호텔은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건물이었다
하지만 입구를 지나자 금빛 테두리를 두른 입간판들이 한껏 고급스러운 얼굴로 시선을 붙잡았다.


“김민석 돌잔치 – 1층 ○○홀”
“신랑 한민식, 신부 김미연 결혼식 – 3층 ○○홀”
“김윤희 회갑연 – 2층 ○○홀”


유정의 시선은 본능처럼 입간판 한 귀퉁이를 훑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아는 이름은 없었다.
결혼식, 돌잔치, 칠순 잔치… 수많은 축하의 자리가 차례로 펼쳐지고 있었지만, 그중 어느 하나에도 자신과 엄마의 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때 자줏빛 벨벳 유니폼을 곧게 차려입은 호텔 직원이 무전기로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더니, 이리저리 둘러보던 모녀에게 다가왔다.
“어떤 일로 오셨을까요?”

민선은 뜻밖의 질문에 순간 움찔했다. 마치 남의 집에 몰래 들어왔다가, 한밤중 화장실로 향하던 집주인과 맞닥뜨린 사람처럼 몸을 굳혔다. 그러나 이내 숨을 고르며 침착을 되찾고는 대답했다.
“김윤희 여사님 칠순 잔치... 어느 쪽으로 가면 되나요?”

직원의 표정은 익숙하다는 듯 차분했다.
“B동 엘리베이터 타시고 2층에서 내리신 뒤, 우측 202호로 가시면 됩니다.”


‘김윤희 여사님의 칠순 잔치...?’

유정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를 만나는 자리가, 낯선 노부인의 생일 잔치라니.
카페도, 식당도 아닌 이런 호텔의 연회장이라니. 왜 하필 여기일까. 왜 오늘일까. 왜 이런 식으로.


본관에서 B동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차려입은 내빈들로 붐볐다. 그들은 하나같이 공들인 옷차림에 미용실에서 갓 손질한 듯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그 완벽한 단정함은 마치 잠에서 깨어나도 흐트러지지 않을 것만 같은 인상을 풍겼다. 서너 명씩 무리를 지어 담소를 나누며 웃는 그들의 모습은, 한 폭의 정물화처럼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민선은 경황없는 유정의 손을 불쑥 잡았다. 그 감각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손바닥은 매질할 때의 그것과 전혀 달랐다. 늘 마르고 거칠던 손이 오늘은 진땀에 젖어 축축했고, 묘하게 부드러웠다. 유정은 처음엔 구두의 불안정함 때문에 엄마가 자신에게 기대어 중심을 잡으려는 줄로만 생각했지만, 곧 엄마의 눈동자 속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빛을 보고는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균형의 문제가 아니었다.


202호 앞에 다다르자, 입구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자들과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둘씩 짝을 이루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어머니께서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그들이 주고받는 인사는 기계적으로 반복되었지만, 그 일률적인 형식조차 이 공간의 격식을 완성하는 한 부분처럼 보였다.

그러나 유정의 시선을 붙잡은 건 다름이 아니라, 입구에 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또래 여자아이였다. 자신의 옷보다 훨씬 화려한 노란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찬란한 색감에 유정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아이가 연주하는 바이올린의 고운 현 위로 유정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주제곡이 익숙하게 흘러나왔다. 곡조는 이 잔치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아이의 연주는 묘하게 공간의 긴장을 풀어주었고, 어른들의 시선도 모두 그 아이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다정한 눈빛으로 꼭 한마디씩 덧붙였다. “저런 딸 두셔서 얼마나 기쁘실까요.” “돌 때 봤는데, 어머, 참 잘 컸다.”

그 말들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는 분명했지만, 유정은 이상하게 자신이 평가당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멀어졌고, 그 사이에서 자신만이 색이 다른 그림처럼 떠 있는 느낌이었다.



유정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또래 소녀를 바라보며 막연한 동경에 잠겨 있던 그때, 민선이 갑자기 유정의 손목을 매섭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소녀의 반대편, 손님을 맞고 있던 한복 차림의 부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머, 형님! 잘 지내셨어요? 어쩜 얼굴이 더 좋아지셨어요? 이렇게 오랜만에 뵈니까 너무 반가워요.”

민선의 목소리는 겉으로는 쾌활했지만, 그 아래에서는 눈에 띄게 떨림이 일고 있었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와 말끝에 매달린 힘겨운 억양이, 그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부인은 민선과 유정을 번갈아 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미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스쳤고, 곧 그녀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빛이 스며들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시선을 피하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와? 너 제정신이야? 집에서 술만 퍼마신다더니, 이제 아주 막 나가기로 작정했구나?”

유정은 눈앞의 광경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인자해 보이던 부인의 입에서 칼날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 상황도, 감정의 맥락도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자기 엄마를 향한 것이라는 건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민선은 무너지지 않겠다는 듯, 곧장 고개를 들었다.
“형님, 오랜만에 만난 동서한테 말씀이 너무하시네요? 여기 형님 조카도 있는데.”
그리고 유정을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유정아, 인사드려. 이분이 네 고모야.”

그제야 유정은 이 자리가 환영받는 만남이 아니라는 걸 또렷이 알았다.
공기의 결이 바뀌었다. 잔칫집의 온기 속에 섞여 있던 냄새들이 낯설게 변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조차 멀게 들렸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마음을 서늘하게 스쳤다.
유정은 엄마의 손을 살짝 잡아끌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우리... 그냥 가요.”



반대편에 서 있던 남자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민선과 유정 쪽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는 민선을 알아보자마자 얼굴이 확 붉어졌고, 한마디 말도 없이 민선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 손길은 닭의 목을 비틀 듯 무자비했다. 주위를 의식할 여유도 없이, 그는 민선을 끌고 비상구 쪽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민선은 발끝을 바닥에 박듯 버텼다.
“왜 끌고 나가려는 건데!”
순식간에 복도가 터졌다.
“내가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기라도 해? 왜 날 숨기려는 거야!”

목소리는 분노를 넘어, 울음과 절규의 경계에서 터져 나왔다.

눈동자엔 광기와 억울함이 뒤섞여 흔들렸고,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얘도 네 자식이야! 네 다른 딸은 바이올린도 켜고, 예쁜 드레스도 입고, 아빠도 있는데 왜 얘는 아무것도 없어야 해? 아빠 노릇도, 딸 가려가면서 하냐?”
민선의 외침은 단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았다.
“얘도 할머니 보고 싶고, 친척도 갖고 싶어! 우리 딸, 들어가서 할머니 좀 만나겠다는데 넌 왜 막아!”

복도는 얼어붙었다.
잔칫집의 웃음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하객들의 입이 일제히 다물렸다. 축하의 공간은 순식간에 불청객의 무대로 변했고, 공기 속엔 동정과 비난이 뒤섞여 팽팽하게 맴돌았다.

바이올린 소리도 뚝 끊겼다. 연주하던 소녀는 악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현실을 깨달은 듯 허둥지둥 아이의 눈을 가리고,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

눈부신 샹들리에 아래, 한때 축복의 공간이었던 그곳엔 이제 비명과 눈물, 조소와 수군거림만이 남아 있었다.
금빛 불빛이 아직 그 위를 비추고 있었지만, 그 빛마저 차갑게 식어가는 듯했다.


유정은 그 한가운데서 온몸이 조여 오는 듯 숨이 막혔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만 같았다.
“엄마... 제발... 나 아빠 없어도 돼. 그냥 가자... 제발...”
유정의 떨리는 목소리는 금세 눈물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그때 남자가 이를 악물고 고함쳤다.
“이 미친년아, 따라오라고 했지!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이렇게 찾아와서 추태를 부려!”
순간, 민선의 팔이 휘청이며 중심을 잃었다. 그는 그녀를 질질 끌고가기 시작했고, 민선은 온몸으로 버티며 소리쳤다.
“놓지 마, 유정아!”

유정은 울먹이며 엄마를 붙잡고, 그를 향해 뻗은 손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눈물이 고일 새도 없이 이마에는 핏줄이 솟았고, 꽉 깨문 입가에서는 비린맛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팔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내팽개쳐진 유정의 손이 허공을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결국 민선의 몸은 유정과 함께 무참히 밀려나, 비상구 계단으로 내던져졌다.

쾅—.
쇠문이 벽을 치듯 울리며, 세상과 단절된 공기가 두 사람을 삼켰다.
한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비상구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유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틈 사이로 보인 건 연회장 입구에 나와 홀로 서 있는 한 노부인이었다.
곱게 틀어 올린 머리, 주름마다 단정하게 다려진 한복, 두 손을 가슴에 고이 모은 자세.
그녀의 입술은 닫혀 있었지만, 눈빛만은 어딘가 흔들리고 있었다.
당혹, 근심, 그리고 잠시 스친 슬픔의 그림자.

‘저 사람이... 김윤희. 내 할머니구나.’
유정은 생각했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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