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비상구
텅—.
문이 닫히는 마지막 소리가 계단벽에 부딪혀 메아리쳤다.
금속의 진동이 가라앉자, 남은 것은 숨소리조차 묻히는 무거운 정적뿐이었다.
“내가 말했지. 찾아오면 죽여버린다고.”
크게 외친 것도 아닌데, 남자의 목소리는 콘크리트 벽을 타고 퍼지며 쩌렁쩌렁 울렸다. 좁은 공간에 갇힌 말은 날카롭게 반사되어, 칼날처럼 세 사람의 살을 베었다.
“양육비 꼬박꼬박 보내는데 내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술값 없어서 돈 뜯어내려고 왔냐? 우리 엄마 생신에 이런 짓을 하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짓이냐?”
말끝마다 튀는 침과 거친 숨소리가 공기 속을 뒤섞었다. 그건 주먹보다 잔인한 폭력이었다.
남자는 유정 쪽을 단 한 번도 보지 않았다.
“네 딸, 바이올린도 배우고 좋은 옷도 입고 다니더라.”
민선의 목소리는 금이 간 유리처럼 떨렸다.
“내 딸은 오늘에서야 처음 좋은 옷을 입어봤는데.”
유정의 머리가 순간 텅 비었다.
엄마가 자신을 ‘내 딸’이라 부른 목소리가, 심장을 찢고 들어왔다. 그 단어 하나가 온 세상 소음을 집어삼켰다.
“아비가 돼서 돈만 부쳐주면 다냐? 네 마누라는 알아? 결혼하고 딸 키우느라 정신없을 때, 남편이 딴 여자 만들어서 배 다른 딸 하나 더 낳았다는 거? 그리고 그 여자한테 이혼하고 오겠다고 했다는 거?”
민선의 음성은 분노와 울분이 뒤엉켜, 거의 울음처럼 떨렸다.
“딸 가진 건 그 여자나 나나 똑같은데, 왜 선택받은 쪽은 항상 그 여자였어야 했는데?”
그 말에 유정은 이미 상처가 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짙은 피 맛이 입안에 번졌다.
“그래서 왔어. 확 다 불어버리려고. 그렇게 끈끈해 보이는 네 사랑이, 네가 멀쩡한 여자를 미혼모 만들어 놓은 새끼였다는 사실을 알고도 버틸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해서.”
민선의 목덜미엔 핏대가 산맥처럼 솟아올라, 얇은 피부 아래서 꿈틀거렸다. 눈은 한 번도 깜빡이지 않았고,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울음을 삼켰다.
공간에는 땀 냄새와 분노, 그리고 말하지 못한 세월의 잔향이 눅눅하게 깔려 있었다.
화를 억누르는 듯 숨을 깊게 들이쉬던 남자는 더는 참지 못하고 둔탁하고도 큰 손을 민선의 멱살 쪽으로 뻗었다.
그때였다. 민선이 유정의 어깨를 앞으로 밀어내며 외쳤다.
“얘도 네 자식이야. 네 딸이라고.”
그 말에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휘청하던 손끝이 유정의 이마를 스치며, 단정했던 앞머리 몇 가닥이 눈가로 흘러내렸다.
유정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엄마... 제발 때리지 마세요. 제가 대신 맞을게요.”
그 말이 공기를 가르자, 콘크리트 벽이 미세하게 떨리는 듯했다.
민선으로 인해 유정에게 폭력을 휘두를 뻔했다는 사실이 남자를 순간 얼어붙게 했다. 손끝에서부터 힘이 빠지고, 분노로 달아올랐던 숨결이 서서히 식어갔다. 입술은 덜덜 떨렸지만,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휘몰아치던 감정의 열기가 유정의 말에 막혀 사그라지자, 그 틈으로 미세한 연민이 스며들었다.
남자는 잠시 주머니를 더듬더니, 낡은 봉투 두 개를 꺼내 유정에게 내밀었다. 유정은 울음 섞인 숨을 고르며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말도, 눈빛도, 사과도 없이, 그저 종이의 무게만이 두 사람 사이를 잇고 있었다.
잠시 후, 남자는 문을 열었다.
유정은 그 마지막 틈 사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검은 양복 자락 너머로 보인 건, 아직 분노가 다 가시지 않은 거친 등이었다. 그 등은 곧 스르르 굽혀졌고, 노란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달려오자 남자는 조심스레 아이를 품에 안았다.
유정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이 그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잠시 상상했다.
하지만 철문이 스르륵 닫히며 철제 틈새로 빛이 흘러들었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지면서, 상상도 산산이 흩어졌다.
비상구는 이제 단단히 닫혀 있었고, 그 너머의 세상은 빛 한 줄기도 허락하지 않았다.
샹들리에 아래서 반짝이던 웃음소리와 따뜻한 말들은, 이제 꿈속의 잔향처럼 멀어져갔다.
공간엔 오직 숨소리만이 남아, 천천히 가라앉았다.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은 대기의 냉기를 품은 채, 한 시간을 앉아 있어도 좀처럼 체온으로 데워질 것 같지 않았다.
유정은 마치 몇 세대를 지나도 인류에게 발견되지 않을 외딴 얼음 행성에 홀로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모든 색과 빛이 사라진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건 초록빛 비상구 유도등이었다. 그 희미한 불빛은 마치 ‘이곳이 아직 지구 위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깜빡였다.
엄마의 흐느낌은 겨울 칼바람처럼 살을 에며 계단 틈 사이로 흘러내렸다.
유정은 한참 동안 그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울음은 멎지 않았고, 대신 조금씩 낮아지며 어딘가로 스며들었다.
유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작아진 엄마의 어깨를 감싸며 조용히 말했다.
“가자.”
한쪽 귀퉁이에 나동그라져 있던 구두를 주워 엄마 앞에 내밀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엄마가 천천히 신발을 고쳐 신었다. 그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다시 일어설 준비를 하는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잠시의 침묵 끝에, 민선이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자.”
그 한마디가 공기 속을 가르며 퍼질 때, 비상구 불빛이 살짝 흔들렸다.
마치 두 사람의 결심에 응답하듯, 아주 미세하게 깜빡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아리도록 하얗던 겨울 하늘은 물먹은 도화지 위에 남색 물감 한 방울이 떨어져 번지는 듯, 서서히 어둠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낮과 밤이 맞물리는 저녁, 사람들의 희미한 얼굴들이 바다 위 부표처럼 일렁이며, 이제 막 불을 밝히기 시작한 가로등 사이로 흘러갔다.
유정은 룸미러 속 엄마의 얼굴을 살폈다.
눈물에 번진 화장은 얼룩졌고, 그림자에 덮인 얼굴은 더 이상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유정은 차라리 엄마가 호텔에서처럼 울부짖어 주기를 바랐다. 이미 마음을 정리해버린 듯한 그 얼굴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지금이라도 핸들을 꺾어버릴까 봐 — 세상의 모든 미련을 태워버릴 듯한 그 고요가, 유정의 숨을 옥죄었다.
레이스 치마는 군데군데 찢겨 너덜거렸고, 흰 소매에도 어둑한 얼룩이 번져 있었다.
그 꼴을 내려다보자, 복도에서 끌려가던 순간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유정은 무의식적으로 소매를 걷었다. 팔 안쪽에는 검은색과 남색이 뒤섞인 멍이 깊게 배어 있었다. 그 위를 문질러도,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
손끝이 닿을수록, 마치 그 멍이 자신을 알아보듯 스스로 색을 짙혀갔다.
그제야 유정은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은 그저 떠나간 남자의 마음에서 한 줄기 미련이라도 끌어내기 위해, 엄마가 마지막으로 내민 말 한 수였다는 것을. 그 한 수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자신도 함께 무너졌다는 것을.
‘장기 말은 아무리 예쁘게 꾸며도 승률이 오르진 않는다. 지면, 꼴만 더 우스워질 뿐이다.’
유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오래 묵은 한기처럼 천천히 온몸을 식혀갔다.
집에 도착하고 엄마는 곧장 화장실에 들어갔다. 유정은 외투를 벗고 재빨리 주머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 안에는 얇고 하얀 봉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손바닥에 닿은 종이에서는 아직도 미지근한 체온이 느껴졌다.
봉투마다 오만 원짜리 지폐가 두 장씩 들어 있었고, 손을 타지 않은 지폐는 마분지처럼 빳빳했다.
유정은 한 장을 꺼내어 형광등 아래로 들어 올렸다. 빛을 받은 누런빛은 잔잔한 파도처럼 반짝였다.
봉투 뒷면에는 또렷한 활자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김윤희 여사님의 칠순을 축하드립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 두 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육성전자 김형식 대리 드림.
한명숙 드림.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금세 희미하게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