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유정은 좀처럼 깊은 잠에 빠지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눈을 감는 행위 자체가 위험처럼 느껴졌다. 잠든 사이, 통제되지 않는 어떤 틈이 열리고 그 틈으로 무언가가 스며들 것 같았다. 몸을 비운 순간, 다시 그것이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맡에 앉아 밤새 떠나지 않았다. 눈을 깜박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의식을 붙들고 있는 것이 곧 자신을 지키는 일처럼 느껴졌다.
잠과 함께 식욕도 빠져나갔다. 급식소에 가지 않은 지 이틀째였다. 전 학년이 모이는 그 공간에서,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미 본 얼굴들과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공복은 생각보다 집요했다. 수업 시간마다 배에서 울리는 소리는 조용한 교실 안에서 불필요하게 또렷했고, 그때마다 몇몇 시선이 유정의 쪽으로 미끄러져 왔다. 숨기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결국 유정은 매점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자켓 주머니를 더듬던 손끝에서 지갑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힘이 빠져 한숨이 흘러나왔다.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유정은 고개를 낮춘 채 급식소로 향했다.
식판 위의 음식들은 서로 섞이지 않은 채 정돈되어 있었지만, 유정의 시야에는 하나의 덩어리로 뭉개져 보였다. 숟가락은 자동적으로 오갔고, 씹는다는 감각도 희미했다. 먹는다는 행위는 이미 의미를 잃고, 단지 몸을 유지하기 위한 절차처럼 느껴졌다. 거의 사육에 가까운 식사였다.
식판을 비운 유정은 더 머물 이유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체육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앞을 막아섰다. 어깨에 축구공이 든 가방을 멘 채였다.
유정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그들은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
말투는 가벼웠지만, 가볍지 않은 시선이 따라왔다.
“일단 앉아봐.”
그 순간, 짧은 머리카락이 자신을 보호하지 못하는 얇은 껍질처럼 느껴졌다. 늘 편해서 고집했던 머리였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드러내는 표식 같았다. 유정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시간을 내려놓듯이.
“요즘 학교에서 얼굴 보기 힘들더라. 오늘은 축구 안 해?”
햇볕에 그을린 얼굴 위로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우리 미드필더 자리 비었는데.”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졌다.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유정에게로 몰렸다. 노골적인 적의도, 분명한 호의도 아닌, 해석하기 어려운 관심이 섞인 눈빛들이었다. 유정은 그 시선들을 받아낼 여력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이 저지른 일을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찼다.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서.”
유정은 그 말만 남기고 일어섰다. 발걸음에는 돌아볼 여지를 남기지 않는 조급함이 실려 있었다.
남학생들은 며칠 전,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패스!”를 외치던 유정의 모습과 지금의 등을 겹쳐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현의 말 이후로 윤을 찾았을 때, 그가 남의 일처럼 무심하게 굴던 태도는 유정의 안쪽을 깊게 할퀴었다. 다시는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윤뿐이라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혼자 끌어안기엔 감정이 너무 무거웠다. 오늘 급식소에서 있었던 일까지 모두 말하면, 윤도 이 일이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것 같았다. 해결책이 아니어도 좋았다. 최소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만이라도 필요했다.
유정은 달렸다. 발밑에서 공기가 갈라졌고, 멀리서 함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문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커졌고, 울림은 고막을 두드렸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손잡이를 쥔 손에 땀이 맺혔다. 그리고 결국 문을 열었다.
눈앞의 풍경이 유정을 얼어붙게 했다.
관중석은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부부젤라를 악다구니처럼 불며, 선수 하나 없는 필드를 향해 광기에 가까운 함성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진짜 공포는 그 다음이었다. 관중들의 얼굴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유화처럼 번진 얼굴들, 이목구비는 녹아내려 서로의 경계를 잃고 있었다. 입은 목 아래까지 흘러내렸고, 눈은 젖은 종이에 번진 잉크처럼 퍼져 있었다.
유정의 심장이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다리가 떨렸다.
“윤 오빠!”
외침은 함성에 삼켜져 형태를 잃었다.
유정은 이를 악물고 필드로 내려갔다. 그 순간, 전광판의 시선이 움직였다. 유정을 향해. 조명이 그녀의 얼굴을 잡아끌 듯 비췄고, 전광판 속에서 유정의 얼굴이 과장되게 떠올랐다.
관중들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경기장 전체에 기이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수천 개의 흐릿한 얼굴이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응시했다.
유정은 비명을 삼키고 선수 대기실로 몸을 던졌다. 문을 닫자, 바깥의 광기는 거짓말처럼 차단되었다. 그 안은 버려진 세계 같았다. 의자들만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벽에 걸린 시계는 오래전에 멈춰 있었다. 소리조차 낡아버린 공간이었다.
윤은 없었다.
유정은 다시 필드로 나와 전광판을 올려다봤다. 화면 속 얼굴은 더 이상 자신 같지 않았다. 눈동자는 지나치게 검게 번져 있었고, 그 안쪽에서 미세한 진동이 일고 있었다. 마치 다른 무언가가 안쪽에서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다.
유정은 경기장을 빠져나와 복도로 이어진 문들을 열기 시작했다. 하나씩, 미친 듯이. 그러나 모든 문은 같은 복도로 통했다. 방향을 바꿔도, 문을 세게 밀어도 결과는 같았다. 언제나 처음 서 있던 자리였다.
끝없이 반복되는 공간 속에서, 유정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 붉은 카펫 위로 주저앉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가쁜 숨소리만이 복도를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