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외살이 낙제생의 고백
수년 전, 상하이에 5년을 산 루이가 말했었다.
이제 다 그지같애. 도쿄로 돌아가고 싶어.
상하이에 온 지 몇 개월도 안됐던 나는,
마냥 이 도시를 사랑했으므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일본으로 돌아가는 그녀를
나는 내내 서운해하고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날이 오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다 그지같애.
며칠 전 기어이 그 말을 뱉고야 말았다.
상하이에 벚꽃이 만개한 화창한 날이었다.
타국에서 마음을 한껏 준 친구들이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리는 것도 그지같고,
대부분의 그들이 결국 친구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것도 그지같고,
해외 생활이 원래 그러하니
만나는 이에게 마음을 너무 주지 말라는 말도 그지같고,
그렇게 마음 없이 다가오는 이들도,
그 이들을 친구로 오해하고
마음을 또 주는 내가 그지같고,
친구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 덩그러니 있는 것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그렇지 않으면 이 도시에서
마음을 나누며 커피 한잔 마실 친구가 없는 것도,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이
시간이 지나도 전혀 학습되지 않는다는 게
너무 그지같애.
알지. 그맘 내가 알지.라고
얼마 전 한국으로 떠난 친구가 위로했다.
매번 같은 시험을 보는데도, 같은 수학 문제를
계속 틀리고 마는 낙제생이 된 기분이었다.
상하이가 싫어서 떠나는 게 아니야.
루이가 덧붙였던 그 말 때문에
그녀를 더욱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나는 그 말을 깨닫는다.
너도 다 그지같았구나.
세상 어디에 살든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이구나.
상하이에 온 지 4년이 넘었다.
감정이 해마다 요동치는 나와는 상관없이 이 도시는 한결같다.
봄이 되면 플라타너스가 꽃가루를 뿌리고
사람들은 눈으로 코로 울면서도
기어이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해가 좋은 날은 한없이 걸어도 지치지 않고
프랑스 조계지의 길은 언제나 아름답고
그 길의 사람들은 늘 여유롭다.
하지만 낙제생의 어느 날엔,
날이 너무 좋아 그지같고
길이 너무 이뻐서 그지같고
커피향이 너무 좋아 그지같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너무 좋아 그지같고
한국에 두고 온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그지같다.
사람이 그리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안다.
이것이 내 해외살이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의 인생에 주어진 '본문'같은 것임을 안다.
몇 년이 더 지나야,
이 본문을 차분히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하이의 아름다운 봄날에는
이토록 그지같은 날들이 많고
나는 내일모레 떠나는 이의 선물을 사러 집을 나선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오래,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