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의 그 장면들이 사라졌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 상하이 시내 극장을 찾았다. 사실상 네 번째 관람. 국내 상영이 다 끝난 시점에 한국에 들어가게 되어, 동생집에서 VOD로 본 것이 첫 번째. 두 번째는 TV 화면으로 본 것이 아쉬워 100인치 스크린과 빔프로젝터가 있는 언니네 집에서 재관람, 세 번째는 팬심으로 한번 더. 그리고 네 번째는, 아쉬울 것 없이 상하이로 돌아온 후 어느 날의 광고 때문이었다.
쇼핑몰의 전광판은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광고로 들썩이고 있었다. 후훗- 난 이미 세 번을 봤다고.라고 여유롭게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하게 박히는 단어. ‘IMAX’였다. 그것도 ‘LIVE AID’의 7만 명의 관중 한가운데, 아이맥스라는 글자가 웅장하게 서있는 광경이란. 마치 '이제 진짜를 봐야지'라고 프레디가 말하는 기분이었다.
함께 저녁을 먹던 상하이 친구가 재빨리 예매를 했다. 며칠 후 주중 한낮. 극장은 더할 나위 없이 넓고 쾌적했다. 한가운데 좌석에 앉아 있으니 마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맨 앞자리를 차지한 관객처럼 설렜다. 마침내 스크린이 밝아지자 공연 날 아침의 프레디가 큰 눈을 떴다. 아이맥스의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나의 네 번째 관람이 시작되었다.
사실 상하이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몇 달 전, 이 영화의 한국 개봉 시기에 상하이 친구에게 중국 개봉은 언제쯤인지 물었었다. 친구의 대답은 절망적이었다.
개봉 안 할걸. 동성애 영화잖아.
뭐? 그건 음악영화잖아! 동성애는 캐릭터일 뿐이라고.
음… 그래도 개봉 안 할 것 같은데.
사회주의 국가에 사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상하이에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포기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미 말렉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을 받은 이후 상황은 바뀌었다. 그 영향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동성애자' 프레디 머큐리는 이 사회에 허락되지 않았지만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의 라미 말렉에게는 허락된 셈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나는 마침내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퀸을 만나게 되었다.
벅찬 기분으로 영화를 보려는데, 우리 앞줄에서 휴대폰 화면을 밝히며 늦은 입장을 하는 가족이 있었다. 엄마, 아빠, 아들 둘. 그들이 조용히 자리에 앉는데 문득 스치는 생각. 아니 저 꼬마들은 대충 보아도 6~7세가 아닌가? 이 영화가 6~7세가 볼 수 있는 영화였던가? 동성애 영화라서 개봉도 안 하려던 나라에서 전체관람가로 상영을?
영화를 보면서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었다. 비교해보니 대여섯 장면 정도의 삭제와 수정이 있었다. 프레디의 매니저였던 폴이 ‘Love of my life’를 부른 프레디에게 키스한 장면, 프레디와 평생의 동성 연인이었던 짐 허튼과의 키스 장면, 그리고 주인공 메리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고백하던 장면, 퀸이 여장을 하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장면이 삭제되었다. 그리고 밴드 멤버들에게 자신의 병을 털어놓던 장면에서 ‘에이즈’라고 말한 대사가 중국어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았다. 그렇게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체관람가’ 영화로 재탄생되었다. 6~7세의 두 아들은 퀸의 음악은 빵빵하게 즐겼겠지만, 프레디 머큐리가 어떤 삶을 선택하고 살았는지 알 수 없었을 테다.
몇 년 전, 상하이에서 영화 ‘킹스맨 1’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극장에서 이미 관람을 하고 왔지만 순전히 ‘극장을 느끼고 싶어서’ 찾았다. 그때 중국의 영화 사전 검열에 대해 꽤나 큰 인상을 받았다. 킹스맨 1에서 매우 충격적이고도 결정적인 장면. ‘교회 씬’이 통째로 편집되었기 때문이었다. 교회로 들어가던 콜린 퍼스는 어떤 설명도 없이 교회 밖으로 나와 죽었다. 하긴 꽤 잔인한 장면이긴 했다. 함께 갔던 상하이 친구가 나중에 인터넷으로 원래 영상을 관람한 후에 ‘이제야 영화를 제대로 봤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끝난 후, 상하이 친구와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게 다 잘려서 전체관람가가 되었구나!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전체 관람이 안 되는 영화도 있어?” 이게 무슨 소린가. 내가 다시 물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한국에서 12세 관람 영화야. 15세, 청소년 관람불가, 19세 미만 금지… 그런 등급 말이야. 여기는 어떻게 되어있어?라는 물음에 놀라운 대답이 이어졌다. 음… 중국에서는 극장 개봉의 모든 영화가 ‘전체관람가’야. 등급은 없어.
아 어쩐지. 순간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중국 영화에 왜 야한 느낌의 포스터가 하나도 없는지. 그러고 보니 19금 영화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고, 전 세계 영화가 올라오는 사이트에서도 중국 영화는 늘 전체관람가 수준의 영화들뿐이었다. 극장에는 늘 가족 관람객이 함께했고, TV 속에서도 잔인한 장면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 적이 없다. 그 모두가 등급이 필요 없는 전체관람가의 콘텐츠였다. (물론 인터넷을 이용하는 음지의 경로는 너무나도 많다)
사전검열 덕분이었다. 모든 드라마나 영화는 상영 전에 당국의 검열을 통과해야 한다. 중국에서 만들어져 개봉하거나, 해외에서 만들어져 중국에서 개봉하는 모든 영화가 해당된다. 그러니 이 땅에서는 살인범이 돌로 사람 얼굴을 짓이겨 죽이거나, 조폭이 칼로 손모가지를 썰거나, 너무 많이 헐벗고 헐떡이거나, 같은 성별끼리 키스를 하는 영화는 만날 수 없다. 물론 젊은 친구들은 인터넷으로 파일을 다운받아서 ‘아무도 손대지 않은’ 오리지널 영화를 손쉽게 관람하기도 한다.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는 명분으로) 허용되는 분위기다.
인터넷이 인간과 인간을 넘어 사물을 연결하고, 첩첩산중에서도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길거리 야채 할머니들까지도 핀테크의 시대를 누리는 15억 인구의 나라와 ‘사전검열’이라는 단어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아 당황스러운 얼굴로 질문을 이어갔다. 그런 거 불편하지 않니. 검열 같은 것 없이 편하게 보면 좋잖아.
아니. 전혀. 본인이 원하면 오리지널은 다 찾아볼 수 있어. 방법은 많거든. 나도 인터넷으로 보헤미안 랩소디 오리지널은 이미 보고 왔어. 그런데 키스 장면이 잘린 영화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는 충분했어. 주인공들의 손짓과 표정으로 그가 동성애자라는 건 충분히 표현되잖아. 요즘 영화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야한 장면들이 너무 많아. 가끔은 너무 과할 정도로 말이야.
물론 이들의 ‘검열’이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야한 장면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도 나도 안다. 하지만 요즘의 많은 콘텐츠들이 선을 넘는다는 생각을 한다. 19금이라는 단어만 붙으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콘텐츠, 때론 그마저도 설정되지 않은 콘텐츠. 가끔은 영화 속에서 사이코패스가 인간을 죽이는 방법을 내가 왜 그렇게 자세하게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는다. 청소년 들의 게임 속 영상은 어떤 영화보다도 선정적이고 개인 방송의 콘텐츠들은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혐오와 편견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생각해보니 언니 집에서 초등학생 조카와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다가 동성 키스 장면이 나올 때면 자꾸만 조카를 뒤돌아보았다. 그때마다 언니가 조카의 머리 위로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그러고도 열두 살 조카는 퀸의 열렬한 팬이 되었지만.
나도 상하이의 그녀도, 반드시 ‘빅브라더’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5억의 대중에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선정적인 콘텐츠를 보여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선택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허용과 비허용의 선을 그을 것인가.에 관한 문제는 우리에게도 복잡하고 어려운 숙제다. 무엇보다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상하이에 살면서부터 매우 조심스러워졌다. 이래서 싫은 것도 많지만, 그래서 좋은 것도 많이 있다. 나는 여전히 15억의 인구가 하나의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는 시스템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이곳에 살면서는 그저 이곳의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
관객 심의 등급이 없는 나라에는 또 하나의 (우리와)다른 극장 문화가 있다. 팝콘 깨물어 먹는 소리도 내기 미안한 한국의 극장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많은 이들이 영화를 보며 크게 웃고, 가져온 간식을 편하게 먹는다. 햄버거나 치킨을 먹는 옆자리 사람을 (침 흘리며) 날카롭게 쳐다볼 필요도 없이 내 간식을 꺼내 먹으면 된다. 심지어 '어벤저스'를 보러 갔을 때는 히어로들이 악당을 시원하게 물리쳤을 때,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광경도 목격했다. 한 명이 박수를 치면 민폐였을텐데, 다 함께 박수를 치니 축제 같았다.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지만 이후로 극장을 그들처럼 즐기게 되었다.
앞으로도 상하이의 극장을 매우 애용할 예정이다. 혹여나 잘린 콘텐츠가 있다면 인터넷으로 다시 보기를 하면 되고, 허기진 시간에 영화를 본다면 간단한 음식을 사 가서 식사까지 즐길 것이다. 서울에서는 극장에서 음료조차도 마신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많이 변하고 있다. 그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새로운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다음 달에는 '어벤저스 엔드게임'이 개봉한다고 한다. 여기 친구들 몇 명과 IMAX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끼기로 했다. 몇 마리의 치킨도 함께 하지 않을까. 지구를 또 한 번 구한 히어로들에게 박수를 치기도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