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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소녀 Nov 16. 2020

100 테이블 웨이팅 '우진해장국'

테이크아웃의 위대함


장장 1시간 40분을 기다렸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번호표 340번이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444번이었다. 80팀 정도가 남았을 때, 5분 동안 20명의 손님이 우르르 나왔다. 최대 20분 정도면 들어갈 줄 알고 좋아했다. 오산. 80팀에는 4명 6명 8명까지 단체손님이 많았다. 번호 하나에 한두 명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 오산. 80개의 테이블 번호가 소진되는데 무려 1시간 20분이 걸렸다. 우리는 오후 세시에 밥을 먹었다. 맛있지만 두 시간 가까이 기다려서 먹을 정도는 아닌, 그러나 제주도에 와본 사람이라면 평생 한 번쯤은 먹어볼 만한 [우진해장국]의 점심식사였다. 부드러운 고사리 해장국에 '시장이 반찬'이 되어 두배로 맛있었다. 맛집의 또 다른 비법. 


그러나 전통과 명성의 [우진해장국]도 테이크아웃은 대기시간이 없다. 다음부터 고사리 해장국을 먹고 싶을 땐 커피처럼 테이크아웃을 하자. 쓸데없이 고퀄인 종이컵과 홀더는 없지만, 야무지게 묶은 비닐 봉다리를 뒷좌석 상석에 모시고 냉큼 집에(혹은 호텔, 펜션 등) 와서 호호 불며 먹어도 좋겠다. 식당에서 먹어야 제맛일 것이 특별히 없으니까. 포장해 오는 김에 8천 원짜리 오징어 젓갈을 사 와도 좋다. 젓갈류를 싫어하는 내가 처음으로 매 숟가락에 젓갈 조각을 올려 먹었다. 짜지 않고 입맛을 돋울 만큼 딱 맞게 선을 지켰다. 반찬으로 내준 오징어 젓갈을 먹다가 문득 집에 사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시 모든 사람의 생각 흐름이 비슷한지, 마침 벽에는 '오징어 젓갈 8,000원 판매'가 붙어있었다. 함께 두 시간여 대기시간을 함께해준 친구와 바로 카페를 가기로 하지 않았다면 오징어 젓갈을 테이크아웃했을지도 모른다. 갓 나온 따뜻한 밥에 젓갈 한 조각을 올리고 김 싸 먹을 상상을 하면서. 


제주인끼리의 만남이었다면 100 테이블 웨이팅을 알게된 순간 뒤돌아 떠났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3년 만에 만나는, 지금은 육지에 사는 '상하이 친구'. 상하이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는데 그는 먼저 상하이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와 정착했다. 이후로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그의 회사가 제주도로 워크샵을 왔다. 그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우진해장국'으로 골랐다. 두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에게 이 맛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에는 갈치조림도, 전복뚝배기도, 고등어구이도 많지만 이런 고사리 해장국은 없을 테니까.


우진해장국을 맛있게 먹는 또 다른 비법이 있다. 전날 밤에 반드시 술을 마실 것. 이름이 괜히 해장국이 아니다. 나 같은 술린이들은 해장국의 존재 이유나 가치를 모르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전날에 술을 마셨다면 '기가 맥혔을' 거라는 것.  내가 이곳에 데리고 온 모든 '제주 방문객'들은 우진해장국을 몇 번 떠먹어 본 뒤 모두 똑같은 말을 했으니까. "아, 어젯밤에 술 마실 걸!" 이 해장국에는 주당들의 뇌리를 딱, 때리는 특별한 맛이 있는가 보다.


나는 우진해장국의 사장도, 가족도, 괸당(친인척의 제주 사투리)도 아니다. 그 식당의 지분이 있는 것도, 그들의 지인도 아니다. 심지어 나는 친구들에게 소문난 미맹이다. 맛집 투어 같은 것은 관심도 없고, 제주도의 홍보대사도 아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대가도 없는 앞광고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저 우진해장국이 제주도의 맛을 지키면서, 오징어 젓갈 맛의 선을 지키면서, 여전히 제주 맛집의 명성을 지키면서, 오래갔으면 좋겠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테이크 아웃'이라는 좋은 방법으로 그 음식을 맛봐주면 좋겠다. 줄은 '당장 제주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두 시간쯤 기다려도 아무 상관없고, 사람이 바글바글한 대기실도, 따닥따닥 붙은 내부 테이블도 괜찮고, 오직 입안에 숟가락이 들어갈 때만 마스크를 벗어도 좋다는 사람들'만 서는 걸로. 


제주에서는 오늘 63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제주는 서울처럼 대형병원도, 음압병실도 넉넉한 곳이 아니다. 어제는 한 달 관광객이 100만으로 회복(코로나 이전)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제주 도민들은 오히려 관광지나 식당을 마음껏 가지 못한다. 이곳의 확진자들은 대부분 관광객이 었거나 관광객의 가족, 친구, 지인이었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잠시 얹혀살고 있는 언니 가족은 거의 일 년째 식당에 '가서 밥 먹지' 않는다. 관광객이 몇십만, 백만이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다행이라는 생각만큼 무섭기도 하다. 제주의 딜레마이고 관광지역의 고민이다. 동시에 '안전한 곳에 있다가 무사히 떠나야 하는' 내 개인의 노파심이기도 하다. 


남편이 홀로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현재 버전) 총 다섯 번의 핵산 검사(코로나 테스트)와 두 번의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우진해장국의 맛도 안전도, 제주도와 나 개인의 방역도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 우진해장국의 오징어 젓갈 맛처럼 모두가 딱 선을 지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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