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 대하여(1)
기억하는 한 적어도 20년 전에, 제주 시청이 있는 구시가지 도로변에서, 하루 종일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있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그 사람은 자신만의 '자리'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짱구분식 앞, 횡단보도 옆 커다란 배전반 옆. 사실 앉아 있는다기보다는 반쯤 누워있었고 돈을 넣는 바구니는 있었지만 딱히 적극적으로 구걸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밤이고 낮이고 길거리에 있는 모습에 약간의 동정심은 들었지만 거의 무관심으로 지나쳐갔다. 그저 풍경 중의 일부처럼, 눈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엄마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가 그 사람과 말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엄마로부터 얘기를 들었다. 하루종일 앉아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여 엄마는 그에게 말을 걸고, 집으로 데려오고, 함께 식사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몇 달 간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결국은 싸워서 안 만난다고 했다. 자기만 일방적으로 주는 게 맘에 안 들어 다투었다고,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면서, 내가 다시는 뭘 주나 보냐고 하면서.
또 집으로 가는 골목길 주차장 앞에는 트럭에서 뻥튀기를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커다란 봉지에 색색의 뻥튀기를 싸게 팔아서 엄마는 종종 거기서 뻥튀기를 사 와 가족들이 다 함께 나눠먹고는 했다. 엄마는 그 노점상 주인과 금방 친해져서 매일매일 수다를 떠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얼마나 집중해서 수다를 떨었는지 주인과 엄마가 얘기를 하는 동안 어떤 사람이 주인 몰래 곁에 놓인 지갑을 훔쳐갔고, 몇십만 원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엄마 잘못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몇만 원이라도 주려고 하면서 위로했는데, 어찌 된 건지 그 과정에서 말다툼을 해서 더 이상 말을 안 하게 됐다고 한다. 아마 주인장은 엄마의 잘못이 아닌 건 알았지만, 엄마를 볼 때마다 지갑을 도둑맞은 게 떠올라서 속이 쓰려 누구든 원망하고 싶지 않았었을까 싶다. 어쨌든 엄마는 이게 내 잘못이냐면서 한참 토로했다.
그 외에도 여러 번 엄마는 수많은 동네 아줌마들과 친구가 되었다가 절교했다를 반복하며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뭐 절반 이상은 남의 욕이긴 했지만, 나는 그런 엄마가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다고 느껴서, 내 경계 밖의 사람은 흐릿하게 무관심으로 보거나, 경계 안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으면 긴장하고 예민해지곤 했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그런 경계를 훅훅 넘나들고는 했다. 엄마의 호기심이나 동정심을 자극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엄마와 말 상대가 되고 싸움 상대가 될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지나치고 말았던 동네 구걸하는 사람1, 동네 노점상1도 엄마에게는 친구이고 원수이고 그랬다.
만약 엄마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고, 많은 사람과 두루두루 평탄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마당발 같은 사람이기만 하다면 엄마 얘기가 그렇게 특별히 재밌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누구에게든 오지랖을 부리며 도와주고 해결해 주려고 하고, 결국엔 생색을 내다 싸워버린다. 세상에서 제일 흥미진진한 게 싸움 얘기 아닌가. 엄마는 아는 사람 수만큼 싸운 얘기가 있다(!!). 엄마 본인은 싸우는 걸 좋아하지 않고 그냥 그 사람 잘못이었다고 하지만, 상대방이 조용한 사람이든 회피하는 사람이든 결국은 싸움의 복판으로 끌어내는 것도 엄마의 재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억울하고 화내게 될 만큼 타인에게 호의와 감정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재능. 그릇이 큰 걸까 작은 걸까, 딸인 나는 그저 맞장구치며 계속 듣고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