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 안내판에는 실내에서 꼭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과 헬스장 전용 운동화를 신어 달라는 당부가 적혀있다. 남자는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것도 아닌데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신고 있는 운동화 그대로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 신발을 신고 헬스장에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큰 덩치의 남자는 늘 러닝머신 바를 잡고 걷는다. 건강이 좋지 않은지 자주 거칠게 목구멍으로 가래를 끌어올려 뱉기도 하고, 팽하니 코를 풀기도 한다.
신경이 안 쓰이는 건지, 우리처럼 뭐라 말하기 조심스러워 참는 건지, 딱히 남자에게 주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일부러 좀 떨어진 자리에서 운동을 하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 애써보지만, 그 시간은 불쾌하다. 남자는 운동하는 시간뿐만이니라, 오전 내내 나에게 그림자를 남긴다.
예전에 나는 의류회사 기획팀에서 일했었다. 매장 혹은 고객관리센터에서 고객의 불만 사항을 해결해주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 고객은 꼭 기획실과 얘기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난처해하는 매장 담당자의 부탁으로, 나는 전화를 연결해도 좋다고 했다.
고객은 초등 고학년 아이를 위해 다운재킷을 구매했는데, 입혀 보낸 날, 나뭇가지에 긁혀 옷이 찢어졌다고 환불을 요구했다. 고객은 이미 이는 소비자 과실로 환불이 불가하며, AS도 유상으로 처리된다고, 더욱이 다운 재킷 제품의 경우, AS 공정이 쉽지 않아서 추가로 5만 원의 경비가 발생한다는 매장의 설명을 들은 터였다.
고객은 등산복인데, 당연히 산에 입고 가면 나뭇가지에 걸릴 수도 있지, 그걸 어떻게 소비자 과실로 몰아갈 수 있냐며, 애초에 옷을 잘못 만든 거라고 언성을 높였다. 여자의 분노에 내 귀가 뜨끈뜨끈했다.
그때 회사에서 직원끼리 하는 농담이 있었다. 고객은 무식할 권리가 있고 우리는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선 ‘아웃도어의류 = 등산복’이 아니다.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획 시 카테고리를 등산, 골프, 캠핑, 타운 등으로 세분화한다.
그즈음 아웃도어 다운 의류의 트렌드는 초경량화였다. 옷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필파워가 좋은 거위털을 충전재로 사용했고, 저 데니어 원단을 사용해서 기본적인 무게까지 감소시켰다. 얇고 밀도가 높은 원단을 사용하여 무게도 방풍력도 개선한 그 제품은 타운웨어로 기획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그 제품이 등산복으로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옷을 입고 무슨 일이 있었을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활동력이 큰 초등 고학년 남자아이기에 발생한 문제일 수도 있다. 고객도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건 아닌듯했지만, 고가의 옷값을 손해 봐야 하는 터라 인정하지 않았다.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지만, 고객은 이틀 동안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예민한 나는 이틀 밤잠을 못 잤다. 동시에 매장 담당자도 닦달했던 모양이다. 매니저는 내게 전화해 초췌한 목소리로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 물었다. 정말 내 돈이라도 주고 끝내고 싶었다.
친한 공장 담당자에게 어렵게 부탁해서 고객과의 타협점을 만들었다. (블랙컨슈머에게 방법을 가르쳐줄 수도 있어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그리고 고객과 다시 통화했다. 정말 좋은 제안이었음에도 고객은 이번에는 다른 스타일 제품으로의 교환을 고집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장소를 사무실에서 직원 휴게실로 옮겼다. 그리고 전화를 걸어 정말 이렇게까지 하면 안 되는데,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고객님의 입장을 고려했다고 호소하며, 나도 모르게 푸념의 말이 나갔다.
"고객님, 제가 이틀 동안 잠을 못 잤습니다."
그제야 여자가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한다. 그렇게 내 제안을 승낙하고 전화를 끊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는 이틀이나 나와 함께한 후, 비로소 전화기 너머로 사라졌다.
내 친구 L은 직장에서 상담 업무를 한다. 어디나 그렇듯, 뭐든 남 탓인 사람이 있다.
한동안 L은 만날 때마다 직장에서 일어난 황당하고 억울한 얘기를 했다. 스트레스가 차고 넘쳐서 그 얘기가 저절로 흐를 지경에 이르렀지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직장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얼굴도 평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