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주세요

시린 5월의 기억 - 1

by 수다하리

나는 힘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기대하고 있니?

그건 지금의 네게는 역효과야.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들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가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발 한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사랑을 주세요] p.115


내가 좋아하는 책 [사랑을 주세요]의 한 구절이다.

2004년인가? 이 책을 읽은 후, 몇몇 지인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딱 이 구절 때문이었다.


운 좋게 나는 이 책 대신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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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4학년, 겨울방학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는 IMF 시대를 직면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갈 생각이었던 나는 딱히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다. 뒤늦게 취직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조기 취업한 동기들은 우선순위로 회사를 나와야 했고, 신입사원 모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삶의 예측하지 못한 경로 이탈이 일어났다.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날의 좌절감과 막막함이란…….

“이럴 때 운전면허라도 따 둬.”

“영어 공부라도 좀 해.”

나조차 한심한 내가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이 나를 더 위축시킨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운전면허를 딸 수가 없었다. 이만치 돈을 들여 딸을 대학까지 졸업시킨 부모님께, 이런 대책 없는 상황에 운전면허 학원비까지 요구할 수가 없었다. 혹여 학원에 등록하고 바로 취업이라도 하게 되면 학원비는 어떻게 할지도 걱정이 됐다.

컴컴한 마음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간 나는 뭘 해보고 싶다는 의지의 불씨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그랬다.


정작 졸업식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취업을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의 체감은 지루하게 긴 잔상을 남긴다. 그 잔상은 여전히 아픈 상처이기도 하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책 ‘사랑을 주세요’를 읽다가 뚝! 눈물이 떨어진 이유가.

누구든 딱 한 사람만, 그날 내게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하고, 저런 말을 해 줬다면

나는 오히려 쉽게 털고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시 그날의 그 좌절감과 막막함이 찾아온 건 카페를 창업한 직후였다.

안 해 본 일에 온몸은 부서질 듯 아팠다. 종아리를 타고 오르는 저릿한 통증이 피곤을 넘어서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전날부터 비가 오는 5월의 어느 토요일, 그날은 출판사를 하는 지인이 우리 카페에서 ‘작은 출판기념회’를 예약한 날이었다.

참석할 인원은 약 십여 명. 음료와 간단한 디저트, 출판 기념 케이크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 주 목요일 저녁, 카페 문을 닫을 무렵, 손님 한 분이 다음날 선물할 마들렌을 주문했다.

금요일 오후 1시경에 찾으러 오겠다고 예약을 하고 갔다.

‘제시간에 준비하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걱정과 ‘그래 봐야 재료비 빼고 나면, 만 원 남짓 남을 텐데.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지?’ 하는 무너진 자존감 사이 어느 곳을 헤매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날이 밝은 금요일 아침, 피곤한 몸을 세워 겨우 집을 정리하고 가게로 나갔다. 주문받은 마들렌을 만들고 포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평소보다 일찍 시작된 하루는 더 길었다.

토요일 아침. 기절한 듯 쓰러진 전날의 잠이 쉽사리 깨지 않았다.

10시쯤 가게로 나가 케이크를 만들자 생각했는데,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가게에 나가니 12시가 다 되었다. 비가 와서 습도가 높은 탓이었을까? 아니면 만드는 사람의 컨디션 때문이었을까? 달걀흰자로 거품을 올리는 것을 머랭이라고 하는데, 머랭이 잘 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제대로 오르지 않은 머랭으로 반죽을 해 구웠더니 속이 떡처럼 나왔다. 포실포실한 케이크 빵이 아닌 그야말로 떡이 된 제누와즈를 쓸 수가 없었다.

예약된 시간은 오후 4시. 이럴 줄 알았으면 머랭이 잘 올라오지 않을 때, 아무리 아까워도 계란을 다시 풀었어야 했다. 하지만 후회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머랭부터 다시 쳐서 새로 한 반죽을 오븐에 넣었다.

그때 딸아이가 가게로 들어섰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영화 보기로 했어. 영화 보고 팝콘 사 먹게 만 원 주면 안 돼?”

“너, 엄마가 만원 벌라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

시무룩하게 돈을 받아 가게를 나가는 딸이 눈물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내가 울면 우리 엄마는 “네가 울면 내 가슴이 너무 아파.” 하고 말했었다. 그 말 사실이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정신이 멍해지는 순간, 옆 꽃가게 아가씨가 커피를 사러 왔다.

“서우 씨, 내가 지금 너무 울고 싶은데, 울 시간이 없네요.”

괜한 푸념을 한마디 던지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가게를 오픈한 지 두 달쯤 지난 시점이니 잘 아는 사이라고 할 수도 없고, 나이 차이도 꽤 나는 옆 가게 주인이 그저 음료수를 사러 왔을 뿐이었다.

아가씨는 얼마나 난처했을까?

그런데 이 아가씨가 조용히 나를 안았다.

“제가 안아 드릴게요.”한다.

“아, 미안해요. 괜찮아질 거예요.”

그렇게 터진 눈물이 쉽사리 멈추질 않았다.

“괜찮지 않아도 돼요. 울어도 돼요.”

꽃집에 손님이 오는 바람에 꽃집 주인은 안타까운 눈길을 남기고 돌아서야 했다.

온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게 손님을 피해 몰래몰래 꽃집에 숨어 울고 왔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꽃집 아가씨는 나에게 선물이라면 예쁜 장미 두 송이를 주고 갔다.

그리고 그 꽃은 메모지를 하나 달고 있었다.

“가시밭길 지나 꽃길 걸으시는 날까지 함께 고민하고 다독여가며 천천히 가요. 우리 :D”


중간중간 만나는 가시밭길이 어느 순간에도 못 견딜 만큼은 아니었다.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손실로 가게는 접어야 했지만, 카페를 운영했던 순간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물론 우리 가족 덕분이었고, 운 좋게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꽃집 아가씨 덕분이었다.

나는 그때처럼 어리지 않다고 그때만큼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견딜만했던 건, “사랑을 주세요.”책이 되어준 그녀의 말,

그리 간절했던 위로가 되어 준 그 말.

“괜찮지 않아도 돼요. 울어도 돼요.” 덕분이었다.


#사랑을주세요 #힘내지않아도괜찮아 #진실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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