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주정뱅이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뿌리치고 술집을 갑니다.
술집에 들어서서,
그래도 아버지인지라
아들 걱정이 되었는지 가게 밖을 내다봅니다.
눈길에 자신의 발자국만 보이자,
“아! 따라오지 않았구나.”
하며 안도하고 돌아섭니다.
그러다 언 듯 술집 앞에 웅크려 앉아있는 아들을 보게 됩니다.
분명 눈길에 남은 발자국은 자신의 것뿐이었는데, 아들은 어떻게 왔을까 잠시 생각하던 아버지는 깊은 후회와 반성을 했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으니까요.
간혹 우리 아이에게 화가 나는 날이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그 아이에게 보일 때인 것 같다.
결국 그 아이가 밟고 온 발자국이 내 발자국 위인 것을 …
카페를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카페에는 앉을자리가 없었다.
그즈음 우리 카페는 모두 앉아 공부를 하니 웬만한 독서실보다 조용했다.
간혹 얘기하려 찾아온 손님들이 눈치를 보다 나갈 정도였다.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아침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대학교 중간고사가 끝났단다.
텅 빈 카페에서 처음 맞이하는 5월은 쓰렸다.
때마침 남편은 일주일간 해외 출장을 갔다.
평소라면 남편이 대충이라도 아이와 저녁을 챙겨 먹었을 텐데 모든 것이 미숙한 그때, 남편이 없는 동안 아이 저녁을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딸아이가 저녁으로 치킨을 먹겠다고 해서 사 오라고 돈을 주었다.
가게 밖에 잠시 서 있을 때, 아랫길 음식점 주인이 지나다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장사 잘되세요?”
“잘 안되네요. 근데, 저는 아르바이트도 한번 안 해 본 초보인데 처음부터 잘 되겠어요?”
나는 자위적인 대답을 건네며 웃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저도 아르바이트 한번 안 해보고, 가게 처음인데, 오픈하자마자 손님이 너무 많아서 번호표 나눠 줬어요. 장사 시작한 지 5년 됐는데, 그사이 창업할 때 받은 대출금 다 갚고, 아파트 두 채 사고, 상가도 하나 분양받아 놨어요.”
“우와- 대단하시네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차차 나아질 거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다스려야 했던 내가 그녀의 말에 초라해졌다.
그렇게 카페 안으로 들어섰는데 치킨 냄새가 확 밀려들었다. 치킨을 사 오라고 허락한 사람은 분명 나였다. 그런데, 너 먹을 만큼만 사 오지 왜 이리 많이 사 왔냐, 냄새나서 손님이라도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러냐? 딸에게 한바탕 짜증을 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딸은 카페에서 공부를 했다.
가게를 시작하기 전에는 집에서 아이 공부를 봐주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가게로 공부할 것을 가지고 나와 엄마와 함께 있어 주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내 곁에 있었다.
뒷길 감성주점 여사장이 때마침 놀러 왔다.
내가 아랫길 음식점 주인 얘기를 하자, “그래서 애먼 영이 잡았어요?”한다.
“너, 이 언니 와서 살았는지 알아!”
딸에게 내가 화를 낸 건 히스테리가 아니라 네 잘못 때문이라고 확실히 해 둬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딸이 주점 여사장을 쳐다보며 “감사합니다.”하곤 웃었다.
사실은 좀 미안했다. 그런데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주 토요일, 카페에서 예정된 작은 행사 때문에 서둘러 가게로 나왔다.
한참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딸아이가 신나게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 나 친구들이랑 영화 보기로 했어. 영화 보고 팝콘 사 먹게 만 원 주면 안 돼?”
왜, 곱게 돈을 주지 못했을까?
“너, 엄마가 만원 벌라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
시무룩하게 돈을 받아 가게를 나가는 딸이 눈물을 훔치는 것이 보였다. 울고 나간 딸아이를 문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들이 안아 토닥였다.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가 미쳤구나. 도대체 내가 우리 딸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내가 6학년 때, 그러니까 딱 우리 딸 나이였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졌다. 궁여지책으로 부모님은 작은 식품 가게를 시작했다. 두 분은 새벽에 청과물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종일 가게를 지켜 장사를 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는 시든 야채로 반찬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때 우리 식구는 가난했고, 생활은 고단했다. 입었던 옷은 빨래가 되었고, 세탁을 마친 옷은 옷장을 거치지 못하고 빨랫줄에서 걷혀 입혀졌다가 다시 빨래가 되었다. 평일에 이불은 아침에 사람이 빠져나갔다가 밤중에 들어올 뿐 자리를 달리하지 않았다.
그런 순간에도 엄마는 일 많이 하면 팔자 드세진다고 나에겐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지친 삶의 짜증까지 다 삼켜지지 못했나 보다. 나는 짜증 받이가 되거나 억울하게 야단맞는 일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가장 아픈 시절이 거기에 있었다. 그런데 그날, 눈물을 훔치며 어린 내가 지나갔다.
내가, 내 딸을 그날의 나로 만들어 놓았다.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딸이 가게로 돌아왔다.
나는 딸의 손을 잡았다.
“엄마가 미안해.”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터졌다. 아이가 따라 울었다.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돈 달라고 하는 게 사실 나도 너무 미안해. 그런데 친구들이랑 뭘 하려면 나도 돈이 좀 필요해.”
“알아. 엄마가 미안해. 우리 딸이 그렇게 생각 없이 돈 쓰는 아이가 아니라는 거 아는데, 엄마가 실수한 거야.”
그날 눈물을 먼저 닦은 것은 내가 아니라 딸이었다.
딸은 오히려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엄마, 우리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고, 아빠도 엄마 장사 잘 안돼도 괜찮다고 하잖아. 엄마, 그냥 좀 편히 하면 안 돼?”
눈 위의 발자국은 아버지에게 후회와 반성을 주었다.
하지만 술집 앞에서 기다렸던 아들은 휘청거리는 아버지를 그저 걱정했을 것이다.
발자국이 묻혔지만, 어른의 발자국을 맞추려 보폭을 넓힌 아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아들의 마음을 딸아이에게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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