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준희 Apr 18. 2017

당신만의 포도주를 기다리며…

젊은 크리에이터 동료들에게 보내는 편지

한 분야의 대가와 장인을 만나, 운 좋게 '비법'을 전해 들어,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을 알게 된다고 해도, 단순히 머리로 지식을 습득해 '아는 것'과 몸으로 경험하며 '느끼는 것'은 천지 차이인 것 같다.


주어진 하루하루 숙성시키고 체화시켜서, '내 것'으로 온전히 소화시키지 않으면, 그 어떤 [무공 비급]도 한낱 종이 쪼가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또한, 한 사람의 '좋은 결과물'은 단순히 어떻게든 빨리 생산하고 보자는 '조급한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닌 것 같다. 노력한 하루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순간 마음속에 '느낌'이 왔을 때, '군번'과 '계급장' 등 자신을 둘러싼 '패션'과 '포장지'를 다 걷어내고, 맨몸으로 절절하고 진실되게 작업할 때, 그때야 비로소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좋은 포도주]는 포도를 술로 담그자마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종에 따라 기간은 다르더라도, 일정 이상의 '숙성 시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숙성 시간' 없이 단 번에 거저 얻어낼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자본주의' 시대라 '마케팅' 메커니즘이 날로 고도화, 지능화되어, 4년 산 밖에 안 된 '포도주'를 26년 산 포장지를 붙여, 속여 팔 순 있겠으나, 그 분야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와인 평론가'와 예민한 미각을 지닌 '소비자'를 만나면 단번에 '뽀록'나는 것 같다.


[문화 콘텐츠] 분야도 '숙성 시간'을 기다리지 않은 채, 성급하게 (힘들게 완성했다는 이유로) 숙성되지 않은 '결과물'로 빨리 승부를 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잘 포장된 마케팅으로, 숙성 시간을 속여 팔면, '인지도'가 빨리 전파될 수는 있겠으나, 곧 '뽀록'나는 경우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사'에 너무 많았던 것 같다. 포도주 병 밖에 붙은 몇 년산 '라벨 표식'은 본질이 아닌, 비본질이다.


본질은 '70년 산 포도주'라면 진짜 70년을 숙성시킨 것이다. '포도주'는 포도의 종에 따라, '최적의 맛'을 낼 수 있는 기간과 때가 다르다. [크리에이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누군가가 대학 재학 중, 혹은 졸업하자마자 빨리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서 좋은 결과를 보았다고 질투하거나 시기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 사람의 결과물이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정말 좋았다면, 그는 매스미디어가 선동하는 각종 유혹에 쉽사리 당하거나 썩지 않은 채, 하루하루 자기만의 구덩이를 파며 진실되게 자신의 포도를 숙성시키며 내놓았기에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는 '4년 산'에 가장 맛이 좋은 '포도주'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루하루 누가 봐도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누군가가 '좋은 결과물',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그 사람이 부족해서라기 보다, 아직 그 사람의 포도가 때를 못 만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 사람이 언젠가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거라 생각한다. 그가 24년 산, 50년 산, 70년 산 포도주일지도 모른다.


관건은, 그 숙성 기간 동안 그를 괴롭히는 수많은 유혹들에도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더라도 썩어 문드러지지 않고, 언제고 다시 돌아와서 계속 꾸준히 내공을 쌓으며, 작업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맞는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포도가 '최적의 포도주'가 될 타이밍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신만의 포도주]를 생산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길지 않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사는 동안 정말 좋은 '포도주'를 생산해낼 것 같은 사람을 몇 명 만났고, 그중에서 소수는 이미 세상에 그것을 내놓았다. 아직, 내놓지 못한 사람이 있더라도 나는 언젠간 그들이 '좋은 포도주'를 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구도 만들어낼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좋은 포도주'를.


그러니, 당신이 앞서가는 남들의 '속도'를 보고, '포기'하려 한다면... 단순히, 그 이유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진실로 치열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며 작업하는데도, 아직 결과물이 인정받지 못했다고 해도, 당신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언젠가는 당신이, 당신만의 포도주를 만들어내리라 생각한다.


세상에는 '4년 산 포도주'만 있는 게 아니다. 설령, 신이 참으로 가혹해서 당신의 숙성 기간을 70년, 80년으로 부여했다고 해도, 쉽지 않겠지만, 당신이 끝까지 갔으면 한다. '빨리' 되지 않았어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았어도, 적어도 하루하루 뜨겁지 않았던가.


그리고 오래 숙성되었을 때, 최적의 맛을 내는 포도주가 사실은 가장 맛있는 법이다. 숙성 시간이 길었던 만큼, 시대를 초월하여 '맛있는 포도주'가 된다. 때때로 그것은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주었다. 만일, 당신의 숙성 기간이 남들보다 길다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맛'을 맛보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한다.


참, 말은 쉽지만, 그렇게 '숙성 시간'이 긴 사람이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쉬울 리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횡포를 견디며 의식주를 보존하는 것만으로도 만만한 게 아니다. 그렇지만, 정말 좋아한다면 의식주는 다른 노동을 통해서 해결해서라도 끝까지 가셨으면 한다.


인간에게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게 아니라, '유한한 시간'이 주어진 건 만고불변의 진실이고, 그렇다면 살아생전 언제고 '숙성 시간'이 맞는 '최적의 때'가 당신에게 오리라 생각한다.


'때가 올 때까지, 끝까지 숙성시키며 포기하지 않는 것!'
'하루하루 정직하게 노력하며, 썩지 않는 포도가 되는 것!'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생산한 '포도주'를 언젠가 맛보고 싶다. 앞선 세기를 살았던 선배 창작자들이 생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사실'이었다고 믿고 싶다. 그토록 힘들게 완성된 당신의 맛 좋은 '결과물'을 정말로 기분 좋게 맛보고 싶다.


나는 언젠가는 당신이 '좋은 포도주'를 완성할 거라 믿는다. 그날이 왔을 때, 당신의 결과물을 최선을 다해, 음미하고, 깊게 맛보고 싶다. 나도 그날까지 잘 숙성시키겠다. 보다 잘 음미할 수 있도록! 기꺼이 축하하며 당신을 만나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웹(Blog) 사기꾼 기획자들의 종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