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의 정원 '지베르니'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경험하다
파리에 도착한 후, 여행 초반에 센 강을 매일 걷는 한국 남자를 만났었다. 그 남자는 철없던 과거, 무턱대고 파리에 와서 오로지 맛 집을 찾아다니며 먹기만 하다 귀국했고, 나중에 프랑스 영화나 여행 관련 책을 보니, 못 보고 온 것이 너무 많아 후회가 돼, 몇 년 만에 다시 파리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그는 한 손에 와인병을 들고, 병째로 와인을 마셔가면서 파리를 도보 여행 중이었는데, 센 강에서 나는 그와 몇 번 우연히 마주쳤다. 안면을 튼 그는 나에게 파리를 떠나기 전, '지베르니'만은 꼭 가보라고 했다. 이곳에서 가 본 명소 중에서 최고라고 했다.
……
나는 귀국까지 고작 3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베르사유 궁전>과 <지베르니> 중 어디로 갈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마침 그 남자가 생각이 나서, <지베르니>를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선택이 이후 영화 [비포 선라이즈]와 비슷한 상황을 선물해 줄 것이라고는 그 당시엔 상상도 못 했다.
'모네의 집'으로 유명한 <지베르니 (Giverny)>는 파리에서 80km 떨어진 '베농(Vernon) 역'에 위치해 있었다. 나는 파리 3 존에 있는 <퐁피두센터> 근처의 숙소에서 장기 체류를 하고 있었기에, 베농으로 가기 위해서 '생 라자르 (Saint Lazare)' 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생 라자르' 역은 생각보다 크고 넓어서, 표를 끊는 곳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나처럼 헤매고 있었다. 녹색 머리를 한 일본 여성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며, "이 역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거지, 내가 길치는 아닐 거야."라는 긍정적인 자기 최면을 걸었다.
이 역무원과 저 역무원에게 물어보아도, 방향만 가르쳐줄 뿐 딱히 베농 역으로 가는 표를 끊는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후, 드디어 표를 끊는 곳을 찾았는데, 아주 긴 줄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긴 줄 앞에 서자, 갑자기 한국에 있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무려 국제전화로 어머니와 통화를 몇 분간했고, 조금은 줄어든 줄을 바라보며 헤벌쭉 미소를 지었다.
△ 지베르니 (Giverny) 마을 거리
줄의 끄트머리에는 녹색머리를 한 일본 여성도 그제야 표 끊는 곳을 발견했는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내 차례가 왔고, 베농 역 표를 서둘러 끊고는 플랫폼으로 향했다. 플랫폼에서 기차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편에서 내 어깨를 두드리는 낯선 손의 감촉 이 느껴졌다.
뒤돌아보니, 녹색머리를 한 일본 여성이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나에게 "혹시, 한국 분이세요?"라고 한국말(?)로 물었다. 나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다. 알고 보니 믿을 수 없게도 아방가르드 한 옷차림과 녹색머리를 한 그녀는 무려 한국 사람이었던 거다.
통성명을 하기도 전, 열차는 들어왔고, 일단은 타야겠다 싶어서 기차에 올라탔다. 그녀도 뒤따라 기차에 올랐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탔기에, 어딘가에 일단 앉고 보자 싶어서, 우리는 가까운 좌석에 마주 보고 앉았다.
생 라자르 역에서 베농 역까지는 45분 정도 걸리는 긴 코스였는데, 타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났으니, 이 얼마나 시간을 보내기 좋은 상황이란 말인가…를 생각했다면 거짓말이고, 그냥 자연스레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유럽 일주 중이었는데, 파리 여행은 마무리 단계였고, 지베르니를 다녀와서 프랑스 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넘어간다고 했다. 그녀도 아침에 <베르사유 궁전>에 갈지, <지베르니>에 갈지 고민을 했는데, <베르사유 궁전>에 가는 일행을 뒤로하고, <지베르니>에 혼자 왔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기차를 타고 베농 역으로 향하는데, 마치 이 상황이 어떤 영화에서 봤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연출하고,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명연을 펼친 [비포 선라이즈]의 시작 부분이 이랬던 거 아닌가 싶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남녀가 기차에서 대화를 나눈다…', 파리 여행 중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났지만, 이처럼 신기한 경험은 없었다. 내심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지 않고, 지베르니로 온 선택이 기쁘게 느껴졌고, 여행 초반에 센 강에서 만난 걷기 여행 남자가 고마워졌다.
그녀도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인해 일에 지쳐서, 다니던 직장을 잠시 그만두고, 더 늦기 전에 모아두었던 돈으로 유럽 여행을 왔다고 했다. 친구들은 학교에 다닐 때 한 번씩 갔었는데, 자신은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올 것 같아서… 질렀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할수록 일본 여성처럼 보이는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어지고, 한반도에서 사회 초년생으로 겪었을 각종 어려움을 몸소 경험한 오리지널 대한민국 여성이 내 눈앞에 보였다.
어느덧, 안내방송이 울렸고, 우리는 베농 역에 도착했다.
△ 지베르니 (Giverny)에 있는 갤러리 & 아틀리에
베농 역 밖으로 나오자, <지베르니>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녀와 나는 정류장 앞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각자 바게트와 음료를 주문했고, 아저씨는 흐뭇한 미소로 바게트를 건네주셨다.
밖으로 나와 보니, 때마침 버스가 와 있었고, 그녀와 나는 버스에 함께 올라탔다. 그녀가 바게트를 꺼내서 한 입 베어 물었다. 나도 배가 고팠던지라 그제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그녀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배고픔이라는 생리적 현상이 나를 훨씬 더 압도했다.
버스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가장 뒤편에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웃는 소리가 깔깔- 거리며 넘쳐났다. 바게트를 먹으며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우리를 16세기에 유럽 마을로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아…!' 그녀와 나 모두, 감탄을 하며 창밖에 펼쳐진 현실감 없는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어느덧, 버스에서의 시간이 지나고... 1883년부터 모네가 죽기 전까지 머물렀던 작은 동네 <지베르니>에 도착했다.
지베르니에 막상 도착하자,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해 주위를 살피며 사람들이 많이 움직이는 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비록, 어리둥절 걷긴 했지만, 어디로 걷든지, 어느 곳을 보던지 <지베르니>의 거리 하나하나는 무척 아름다워서 깊이 마음에 남을 것 같았다.
△ 지베르니 (Giverny)의 거리 곳곳에서 만난 아름다움!
넋을 놓고 거리를 걸은 건 비단 그녀 때문이 아니었다. <지베르니>는 기꺼이 넋을 놓아도 좋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거리를 걸으며 그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대화가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정확히 이런 구절은 기억이 난다.
그녀 : 아! 불공평해요.
나 : 뭐가요?
그녀 : 인상파 거장들이 운이 좋았던 거 같아요.
나 : 운이요?
그녀 : 그건 그림이 뛰어났던 게 아니었어요. 봐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훨씬 아름답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동조를 해주었고, 심지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
나 : 지금 대학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학생들 중, 아무나 데려와서 똑같이 그리라고 해도,
인상파 거장들의 그림과 비슷할 거예요. 지베르니는 풍경이 정말 끝내주네요!
당시에는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온 말이었으나, 지금 생각하니 조금 낯이 간지럽긴 하다. 하지만 지베르니의 풍경은 그런 낯 간지러 움을 기꺼이 허락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래서 나는 갈림길에서 조금 더 낯이 간지러운 길을 어렵지 않게 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 지베르니 (Giverny)의 거리 곳곳에서 만난 아름다움!
정원과 자연, 맑은 하늘과 그림 같은 집이 어우러져 환상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지금의 이런 풍경을 한국에서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 : 어디서요?
나 : 아마, 에피톤 프로젝트 1집 <유실물 보관소>의 앨범 표지에서였을 거예요!
그녀 : 오,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나 : 그죠? 날씨가 맑아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 : (하늘을 한참 바라보더니) 베르사유에 가지 않고, 지베르니에 오길 참 잘했어요.
일상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예술의 세계'를 이미 파리에 이십여 일 머물며, 상당히 경험했기에… 인간이 만든 조형물에서 더 놀라울 것은 별로 없다고 느꼈으나, <지베르니>는 자연과 환상적으로 결합한 마을이었고, 그래서 도심이 줄 수 없는 색다른 감성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덕분에 아무리 오래 걸어도 대화가 끊이지 않았고, 무척 즐거웠다. 그날의 풍경은 오그라드는 주제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 지베르니 (Giverny)는 주민들의 무덤도 잘 정제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거리가 더 이상 눈에 차지 않을 때쯤, 주민들의 무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주택과 너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위화감도 들지 않고, 무척 신기했다. 그녀는 무덤을 보더니, 가방에서 필름 카메라를 꺼내서 찍기 시작했다.
나 : 앗! 필름 카메라?
그녀 : 네, 무척 아끼는 거예요.
나 : 와! 한국 돌아가서 현상하면 끝내주겠네요.
그녀 : 잘 찍지는 못 해서…
나 : 여기는 대충 찍어도 그림일 것 같아요.
그녀 : 그러게요. 무덤까지 이리 예쁘니…!
지베르니 거리 구석구석을 다 둘러본 우리는 드디어 정원이 딸린 <모네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줄이 엄청 길었다. 아무리 빨라도 족히 1시간은 기다려야 할 판이었다.
△ <모네의 집>에서 느낀 꽃의 향연. 사진의 저곳이 모네가 말년을 보냈던 바로 그 집!
그녀와 1시간을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보냈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드디어 <모네의 집>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정원에 입장하지도 않았는데도, 꽃의 아름다움에 취했고, 사진과 그림에서 본 바로 그 집이 우리의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났다.
모네의 집 안으로 들어가니, 일본 회화도 몇 점 걸려 있었다. 당대의 프랑스 화가들이 일본 문화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참 전에 돌아가신 일본의 화가는 자신의 작품이 몇 세기 후, 프랑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에 걸려있을 줄 상상이나 했을까? 삶은 이러나저러나 참으로 오묘하고, 신기하다.
집 안을 주방까지 둘러본 후,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모네의 정원>으로 입장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엔도르핀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그녀도 상기된 표정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터널이 나왔고, 그곳을 조금 지나자 환상적인 풍경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림에서만 보던 바로 그 장면이 '떡!'하고 등장한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놀라운 광경에 넋을 놓으며, 말없이 감상하며 걷고, 또 걸었다.
△ <모네의 정원>이 선물해 준, 고마운 풍경
같은 지구인데, 왜 어째서 어떤 장소는 이리도 아름답단 말인가! … 베농 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기차에서, 지베르니에서 반나절을 보내는 동안 쉬지 않고 그녀와 대화를 나눴는데, '자연'을 섬세하게 가공한 <모네의 정원>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더는 말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맑고 동그란 눈동자로 사진기의 셔터를 쉼 없이 눌러댔다. '아…!'나 '와아…!' 정도의 감탄사만 나직이 내뱉었을 뿐, 우리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입이 박제된 듯, 그저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을 보아도, 저쪽을 보아도, 온통 아름다움 투성이었다. 그건 놀러 온 다른 외국인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로 느꼈던 거 같다. 정원 안에서 인간의 언어는 힘을 잃었고, 오로지 자연이 주는 산뜻한 에너지만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황홀한 아름다움에 간신히 적응(?) 할 때쯤 그녀가 나에게 정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녀의 필름 카메라로 나는 그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주었고, 나도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폰을 건네며 내 사진을 부탁했다. 그렇게 그녀는 <모네의 정원>에서 나의 사진을 정성껏 찍어주었다.
유럽으로 혼자서 여행을 가게 된다면, 누구나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1995년작 <비포 선라이즈>와 비슷한 상황을 꿈꿀 것이다. 미지의 장소에서 처음 만난 이성과 보내는 한나절.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그러나 이십 여일을 여행하는 동안 프랑스 문화에 대한 경탄만 있을 뿐…! 현실에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진 않았다. 그래서 여행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여행 초반, 우연히 만난 '와인병을 든 한국 남자'의 조언에 <지베르니>로 가기로 결심했고, <베농> 역을 가기 위해 들른 '생 라자르'역에서 그녀를 만났다. 처음 만났지만, 취향과 감성 코드가 비슷해서 한나절 동안 함께 '지베르니'를 여행하고, 대화를 나누면서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아마, 혼자서 <모네의 정원>을 여행했더라도 좋았겠지만, 뜻하지 않은 귀한 만남으로 더욱더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었던 것 같다.
<모네의 정원>을 나오며, 아이스크림 파는 아줌마가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구매해, 하나씩 베어 물었다. 좋은 날씨, 달콤한 아이스크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벗, 더는 부러울 게 없는 하루였다. 그렇게 <베농 역>으로 다시 돌아왔고, 우리는 파리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안에서 마실 것을 사서 나눠 마셨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기차'는 곧 도착했고, 우리는 돌아오는 기차에서도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곳에 다 쓰질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한나절을 <지베르니>에서 보내고, 돌아온 파리의 <생 라자르 역>은 떠날 때의 그곳과는 다른 느낌을 풍겼다. 지베르니의 아름다운 풍광과 <모네의 정원>에서 맛본 경이로운 풍경에, 새삼 파리의 도심이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생 라자르 역에서 헤어지기 전, 우리는 그제야 통성명도 하지 않고, 한나절을 보낸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계단을 함께 내려갔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연락처를 교환했다. 해는 저물었고, 우리의 하루도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떠나간 장소에서 한참을 있다가, 왠지 모를 웃음이 났다. 삶이란 건, 참 재밌구나 싶었다. 평생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일까? 싶었다. 함께 했던 <지베르니>에서의 시간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2013년, 파리에서 <비포 선라이즈>를 찍었다.
p.s
이번 편은 여행기를 거의 다 써놓고도 공개하기가 민망스러웠다. 그럼에도 이왕이면, 솔직한 여행기를 쓰자고 결심했었고, 이제야 용기를 내어 공개한다. 앞으로 3개월 후면 나의 20대가 끝나간다. (지금은 30대 초반입니다 TT) 해볼 만큼 해 본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청춘의 로망인 <비포 선라이즈>마저 현실에서 경험했으니, 나의 지나온 시간들에 전혀 후회는 없다.
앞으로 남은 20대,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또 다른 인생의 한 시기. 스칸디나비아는 30대의 판타지로 남겨두기로 한다.
"예!? 뭐라고요? 그녀와 한국에서 다시 만났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저에게도 최소한의 사생활을 보호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요."
감히, 말하건대, 당신이 20대이고, 청춘이라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반드시 떠나셨으면 싶다. 분명, 생각했던 것보다 여행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할 것이고, 앞만 보고 달렸던 시간들 속에서 잃어버려야 했던 것들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삐딱하게 보면 여행은 시간이란 자원을 일의 숙련도가 아닌, 잉여에 쓰는 거라고 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이곳에서 정체한 만큼, 그곳을 통해 시야가 넓어졌기에, 마주한 현실을 보다 잘 이겨낼 거라 믿는다. … 모두들, 힘내세요! 그리고 건투를 빌겠습니다!
p.s2
<처음 떠나는 24일간의 파리 여행>이
[한 번쯤 파리로 떠나도 괜찮아]라는 책으로 나오게 되어,
브런치에 "프롤로그", "에필로그", 일부 "에피소드"를 제외한 글은
비공개로 전환하였습니다.
http://m.bookk.co.kr/book/view/17284
△ 위의 출판사 링크에 가시면
기존 온라인 연재물에서 내용 보강과
수많은 '퇴고'를 거쳐서 나온
수다쟁이쭌의 첫 책
[한 번쯤 파리를 떠나도 괜찮아]를
종이책으로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9464018?Acode=101
△ YES24에서 만나보실 분들은 위의 링크로 가시면 됩니다 ^^
독자님들께서 작은 관심을 주신다면,
지속적인 작업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 )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