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울의 맛 그리고 브런치의 시작

by 수달씨

일주일 만에 집을 벗어나 서울에 나왔다. 어쩐지 정말 시골 사람이 된 듯 어색하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이런저런 생각. 커피는 역시 남이 내려준 커피가 가장 맛있다. 집에서 내려먹는 커피가 아닌 브랜드 있는 커피에서 서울의 맛이 난다. 간만에 먹은 라떼 효과로 시원하게 화장실도 다녀왔다.

가끔 메모장에 끄적거리는 글을 어떤 웹진에 기고하곤 한다. 작고 조용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지인이 자기 같은 친구들의 작은 이야기들을 모아 만드는 매거진이다. 고맙게도 일기장에 적은 글 수준일 내 이야기도 가끔 실어준다. 잘 다듬어진 글은 아니지만 어떤 순간의 내 감상이 활자화되어 세상에 박히고 누군가에게 읽히는 영광, 혹은 부담. 그 완벽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서툰 나와 마주하기 위해 글을 보내곤 한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 Y와 가끔 서로가 쓰거나 읽은 글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Y도 같은 매거진에 연재를 한다. 카페에 앉아 이번 호의 글들을 읽고 '너무 좋아!' '아, 좋다!' 하다가 Y에게 톡을 보냈다. 이번 호의 글이 유독 따스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애인이 수달씨가 글을 계속 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칭찬에 고픈 나라 덥석 물긴 했는데 어쩐지 자꾸 생각해보게 되는 말이다. "계속 쓰면 좋겠다"라니. 독자로써 계속 읽고 싶다는 말일까, 계속 쓰는 게 필자에게 좋겠다는 말일까.

물론 양쪽 다 이겠지만 칭찬에 고픈 수달씨는 앞쪽에 무게를 싣고 싶고, 현실주의자 수달씨는 뒤쪽이 '찐'이라고 말한다. 타인의 칭찬, 분명 동력은 되지만 달콤한 맛일수록 몸에 쌓이면 나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래도, 그래도... 누군가가,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 글이 계속 쓰이길 바란다는 마음은 고맙고 따스하다. 분명한 위로이고 선의다. 멀리서 나란 사람이 글을 통해 더 힘내 살아가길 응원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그러니까 글은 필자가 독자에게 향하는 목소리만은 아닌 듯 하다. 글쓴이가 글쓴이에게 전하는 말이고, 읽은 이가 글쓴이에게 전해주는 따스한 마음들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어디서든, 어떻게든.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어떤 이는 글로써 말을 하고 어떤 이는 읽음으로써 말을 한다. 그 두 가지가 모두 있기에 글은 언제나 유효하다. 아! 를 아! 라고 하지 않아도, 사랑을 커피나 설탕이나 책상이라고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주는 이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쓰고 읽는 행위가 주는 위로의 무게를 잘 알기에 함부로 부족한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 내 삶이 누구에게 보일 만큼 아름답지도, 아름다울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은 뒤론 sns도 닫았다.

완벽이라거나 진실, 도덕 같은 것을 내려놓고 나의 서투름을 마주하며 혼자 글을 써 온 몇 달. 나는 언제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인 걸 깨닫는다. 엄마 엉덩이를 따라다니며 조잘거리던 어린 시절의 마음으로 브런치를 두드려본다.

작은 이야기라도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있다면 세상의 쓸모를 조금쯤 남길 수 있을까.


2020.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