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그리고 내일의 밥값은 생각하지 않기로 해

오늘의 밥값 / 프롤로그

by 수달씨


비록 돈이 없이
하고픈 일만을 하더라도
돈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하더라도
밥값 해 밥값 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해
-넉살 <밥값> 가사 중




암사동 작업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작업실이래봐야 남편의 먼지투성이 목공방 한켠에 책상 하나, 컴퓨터와 모니터 두 대, 서랍 하나와 몇 개의 와인상자 속 책과 자료들. 그런데도 짐이 많아서 닦고 버리는 데에만 하루가 걸렸다.

서재가 있는 방에 책상을 놓고 작업공간을 차렸다. 아담한 집 사이즈에 맞춰 남편이 만들어 준 매끈한 책상에 먼지를 닦아낸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만 올려두니 간소하다. (이거면 되는데, 그동안 참 많은 짐을 올려두고 살았다.) 작은 화분도 곁에 두었다. 이제 여기서 어떤 이야기들을 써내려가야 할까.


사실 그동안 한번도 집에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여성단체 활동가 생활, 길지 않았던 직장생활, 사업자를 내고도 쭉 공간을 얻어 나와 일했다. 집은 휴식공간으로 두고 싶었고 집에서 규칙적으로 일할 자신이 없었다. 길지 않았다고는 하나 출퇴근이 몸에 배어 아침이면 일이 없어도 일터로 나갔고, 낮에 별일 없이 놀았어도 저녁에는 오롯이 나를 위해 쉬려고 노력했다. 밤에 일을 하고 불규칙하게 꾸려가는 프리랜서의 생활로는 나를 붙들어 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를 그토록 못 믿었던 걸까.


겨울 비수기와 전염병 유행으로 집에 들어앉은 지 한두 달 여의 시간. 집에 있으면 어쩐지 자꾸 집안일을 하게 되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무척 어색하다. 그래도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존재 그 자체로 존재하는 연습은 나 자신으로 오롯이 숨 쉬는 데에 꽤나 도움이 됐다. 하지만 걱정과 불안은 자꾸 주위를 맴돌며 질문을 던진다. 이러다 점점 더 사람을 못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돈을 안 벌어도 될까,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러다 최근 좋아하게 된 어느 래퍼의 <밥값>이라는 노래를 듣게 됐다. 돈 때문에 하고픈 일을 못하더라도 밥값 해. 이십대를 술과 방황으로 보낸 래퍼가 서른 즈음에 써내려간 가사. 조만간 사십 줄에 들어서는 나도 이렇게 방구석에서 방황을 하는데, 이 노래는 나에게 밥값을 하라고 말한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해. 어쩐지 방바닥에 누워있기가 미안해져서 더 듣지 못하고 일어났다.

나에게 밥값이란 뭘까. 지금 당장 나가 어딘가에서 전단지를 돌릴 수도 없고, 없는 작업을 만들어서 할 만큼 에너지가 넘치지 못한다. 들어오는 일을 하는데 급급했던 지난 몇 년, 영혼을 갈아 넣었던 시간들. 소진된 에너지가 채워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누워만 있을 수는 없잖아. 나는 어딜 가서 내 밥값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일어나서 씻고 가벼운 요가를 한다. 집을 간단하게 치우고, 옷을 갈아입고 서재방 작업실로 출근해본다. 책상을 놓은 지 며칠 만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빈 한글페이지를 열어 이 글을 쓴다.

‘오늘의 밥값’. 그래 나에게는 이 글이 오늘의 밥값이다. 어제의, 그리고 내일의 밥값은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의 밥값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오늘의 밥값부터 한다. 이 글이, 이 시간이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는 않겠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것,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닐까.


루틴 없는 생활 속에서 그나마 할 수 있는 작은 일과가 생긴 듯하다. 옆방으로의 출근. 하루에 한 번은 컴퓨터를 켜고 밥값을 할 수 있을까. 창문 너머 들려오는 새들의 작은 지저귐처럼. 이른 봄날의 새순처럼. 나도 작은 움직임으로 기지개를 펴고 세상에 지저귐을 남길 수 있을까.


20200323




---

책상으로 출근해 쓰는 한 편의 글을 통해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영감들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돈이 되는 글이 아니더라도, 내 영혼을 위한 하루 밥벌이로 <오늘의 밥값>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전 01화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