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와야 그것을 떠올릴 수 있어

오늘의 밥값 01 / 커피숍에 앉아 내 집 마당을 생각한다

by 수달씨

커피숍에 앉아 내 집 마당을 생각한다

무엇도 읽거나 쓰고 싶지 않은 나날들을 보내다가, 집을 나오니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한적한 동네 커피숍. 2층 커다란 창가에 앉아 이렇다 할 게 없는 동네 풍경을 바라보다 말고 메모장을 연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작가의 집>. 집에서의 오롯한 고독을 영감 삼아 글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고요하게 나의 작은 집을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있을 때에는 집을 떠올리지 못한다. 커피숍 테이블에 앉아 나의 작은 마당에 핀 민들레와 화분들, 막 새싹이 올라오는 채소 씨앗들을 생각한다. 전셋집이라 온전히 내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월세를 탈출할 수 있게 해 준 이 집에 나는 내 존재의 일부를 조금씩 심어나간다. 떠나와야 그것을 떠올릴 수 있도록 타고난 인간의 미약함. 오늘 커피숍으로 나오길 잘했다고 나를 칭찬해본다.


최근 인스타그램 어플을 다운로드해 무언가 기록해보려고 했었다. 봄이 와서인지 모르겠다.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딘가에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궁금하지 않은 타인의 소식은 피로하고, 행복을 꾸며내거나 자랑질하는 것만 같아 아직은 무엇도 잘 쓸 수가 없다. 사진 몇 장에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거지. 아니, 무얼 보여줄 필요가 있기나 한 걸까.

결국 몇 번을 지웠다 깔았다 반복하며 소셜 세상과 씨름 중이다. 누군가는 뭘 그렇게까지 어렵게 사느냐고 할 일이다.


나는 사회적 존재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전보다 많아지면서 확실히 사회성이 떨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전과는 사고와 행동양식이 많이 달라졌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 내 감정을 우선시하다 보니 다소 불친절해졌고, 욕구 중심으로 행동을 결정하다 보니 우유부단함이 줄었다. 결정이 빨라진 대신에 실수가 늘어간다. 가까운 이에게 말실수하는 버릇은 좀 더 강화된 듯 해 조심이 필요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지켜볼 만하다. 나를 포장하는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든다. 그리하여 이 집단 우울의 시대에도 멘털을 유지하며 어떻게든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관계를 향한 개인의 태도라는 것은 관성이 있는 게 분명하다. 가까웠던 이들과 멀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나를 필요로 하는 타인의 부름에 다시 지나치게 성실히 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흠칫 놀란다. 그 부름에 응하고자 하는 마음씀은 진정한 내 욕구인지, 아니면 다시 사랑에 고픈 자아가 꿈틀거리며 올라오려는 건지. 어쨌거나 이러한 상황에서 잠시 멈추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조금쯤 성장의 증거가 되지 않을까.


말이 고팠는지 글이 줄줄 나온다. 누구도 읽지 않더라도 괜찮은 글이다, 아직은. 사진 몇 장에 행복을 꾸며내 자랑질하는 것보다 거칠게 적어 내려 가는 이런 혼잣말에 가까운 글이 더 지금의 나답다.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워질지 모르는 기록이라도 시원하면 됐다. 그렇게 적어보는 오늘의 밥값.



20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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