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값 05 / 지긋지긋한 비, 그만 좀 내려라
비. 또 비다.
서늘한 아침, 잔뜩 찌푸린 창밖의 하늘을 보고 순간 욕이 나왔다. 올여름 들어 하늘을 보기가 어렵다. 지극히 햇빛 지향형 인간인 나에게는 살기 힘든 기후다.
"에잇, 지긋지긋한 비! 그만 좀 내려라." 침을 칵 뱉는 것처럼 소리 내어 뱉어버렸다.
반만 뜬 눈으로 아이와 남편을 출근 보내고 잠시 현관 앞에 섰다. 열린 현관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쾌적하다. 잠바에 팔을 끼워 넣고 커피 한잔을 내려 마당으로 나왔다.
제법 굵은 빗줄기. 처마 밖으로 손을 내밀어 동그란 빗물을 받아본다. 이번 비는 오래갈 것 같다. 평상에 비닐을 못 씌웠는데... 아 몰라.
눅눅한 캠핑의자에 기대앉아 초록이 우거진 마당을 째려본다. 했어야 하나 하지 못한 일들이 눈에 거슬리지만 애써 외면. 제멋대로 자란 허브와 토마토들, 휘어진 고춧대, 쓰러져 얼굴을 땅에 박고 있는 해바라기... 수확기를 놓쳐 말라가는 강낭콩들. 미안하다~! 마음속으로 오른손을 뻗어 외쳐본다.
참새 서너 마리가 고양이 밥을 훔쳐가느라고 분주하다. 쟤네는 이 비에 지치지도 않나. 처마 아래 둥지를 튼 딱새 부부도 오늘따라 더 바쁘다. 물어온 먹이를 아기새들에게 줘야 하는데 이 인간은 언제 비켜주려나, 하는 표정으로 멀리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 새들은 우리에게 둥지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의 미션 임파서블 수준으로 은폐 엄폐를 하며 날렵하게 움직인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걸.)
평상 옆에서 지렁이 한 마리가 땅 위로 기다랗게 몸을 꺼내고 있다. 저 긴 몸이 전체 다인지, 아직 반만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지렁이는 연한 몸으로 저 단단한 흙을 어떻게 뚫고 나오는 걸까. 그의 근력에 대해 잠시 생각하는 찰나, 지렁이가 없어졌다. 오, 겁나 빠르다.
너희는 오늘도 바쁘구나. 왠지 마당의 표정이 신나 보여서 머쓱해졌다. 비가 오면 좋아하는 애들도 있을 텐데 내가 너무했다. 너희들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또 미안하다!
습하고 덥고 정체되어있던 어젯밤 공기를 밀어내고 비를 품은 시원한 공기가 마당 가득하다. 지긋지긋 오래 매달려있는 감기도 비에 좀 씻겨 내려가면 좋겠다. 구름 낀 마음도, 길고 긴 전염병의 날들도 같이 데려가 주었으면.
202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