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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Nov 29. 2022

가끔은

오늘의 밥값 38 / 그래서 오늘은 괜찮아?


지난 주말, 엄마 아빠와 간만의 외식자리에서 말해버렸다. "나도 너무 힘들어. 엄마 아빠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아? 딸내미가 얼마나 힘든지 관심이나 있어?" (부모님은 내가 상담 받았던 일이나 내 우울감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 것을 말해온 사이가 아니니까.)

엄마는 "그래?" 하고 축축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민망함에, 미안함에 그리고 후련함에 그날 평소보다 하하호호 더 많이 웃었다.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엄마는 전화로 사사로운 얘기 끝에 자꾸만 "그래서 오늘은 괜찮아?" 하고 물어본다. 그 목소리가 계속 축축해 맘이 아리다.

최대한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게 엄마 마음인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엄마 마음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걸까. 아마 엄마는 내 존재의 근본이라서(그런데 내 아이가 나를 그런 식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엄청 부담스럽다), 엄마가 상처받는 게 싫으니까, 더 이상은... 남은 생은 웃으면서 살길 바라니까.

내가 중학생 때, 집에 빚쟁이 사채업자들이 들이칠 때 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였을 것이다. 엄마 친구가 집에 찾아와서 엄마에게 쌍욕지거리를 할 때, 아빠 친구가 늦은 밤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드러누워 울 때, 그런 모습을 딸들에게 고스란히 보여줘야 할 때, 그때의 부모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아직도 미어져. 나는 그냥 엄마가 이제는 매일 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내 상처는, 아물 시간이 아직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나도 때론 누군가에게, 세상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타인이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를 상처 내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니까. 때로는 내 대신 누가 상처받아줬으면 하는 날도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나도 가끔은 솔직해도 되는 거지?



2022/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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