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낸 후 이야기 1 / 이제 무엇으로 ‘밥값’을 하나
책을 내고 한동안은 취해 있었다. 아니 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취하기 시작했다. 눈앞에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배고프지도 졸리지도 않았다. 오직 책을 향해 내달렸던 시간이 지나고 지금 나는 취기에서 깨어나고 있다. 내게 남은 건 네 박스 분량의 책 더미와, 세 군데 서점에 입고되어 팔리기를 기다리는(언제까지나 기다리게 될지 모르는) 열다섯 권의 책과, 이백만 원을 내고 얻은 작가라는 이름과 뭔지 모를 부끄러움.
분명 꿈은 아니다.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저 박스들을 보면 모든 게 진짜다. 책을 내고 나면 책을 내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나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사실은 달라진 게 조금도 없다. 갑자기 더 잘 쓰게 된 것도 아니고 더 잘 그리게 된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일이 안 들어오는 반 백수 프리랜서 디자이너, 상환일자 줄줄이 기다리는 대출 부자, 때마다 아이 간식을 뭘 줄지 몰라 고민하는 어설픈 엄마다.
그런데도 돈을 내서 책을 만드니 사람들이 작가라고 추켜준다.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작가라는 이름을 돈을 내고 얻었다. 다행히 나는 책을 만들 줄 알아서 인쇄비만 이백만 원 들었다. 이백만 원짜리 작가라는 이름.
오늘 이웃의 언니가 내 책을 친구에게 선물했다고 했다. 친구에게 “우리 마을에 작가가 있어!”라고 말했단다. 주변에 작가가 있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나도 처음이다. 나도 내가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처음이다. 부끄럽다. 그리고 마지막일까 봐 무섭다. 그래서 급히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다. 페이지는 대충 만들어 놓았는데 다시 책을 낼 돈도 없고, 이 부끄러움을 또 한 번 감당할 수 있을까 싶어서 다음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
이전에 쓰던 <오늘의 밥값>이라는 연재 주제를 마감하고 나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이제 무엇으로 ‘밥값’을 하나. 사실은 <오늘의 밥값>과 빠르게 이별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이름으로 책이 나왔으니 더 할 말이 없기도 하고 있어서도 안될 것 같고 자꾸 아쉬움이 남아서.(제책 과정과 결과에 조금 아쉬움이 있어서 자꾸 잘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다음에 더 잘 하면 되지만 책이라는 실물이 남아버리니 미련을 떨구기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뭐라도 적어야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지나치게 솔직한 심경을 고백한다. 비염으로 약을 며칠 쉬었더니 우울증 약이 잘 듣지 않는다. 마음 상태가 좋지 않다. 봄이 이리 훌쩍 왔는데. 마당에 꽃도 폈는데. 수선화, 히아신스, 매화. 작년에 심은 조팝나무에도 연둣빛 싹이 조르르 달렸는데 인사도 못했다. 내일은 제대로 인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