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란 이런 기분
나의 증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해 본 적은 없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나타나는 몸의 증상도 아니고 당연하게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까.(가끔 심장 두근거림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겪는 어려움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그저 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다, 이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이다, 또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라는 생각만 갖고 살았다.
그래서 병원에 달려가서는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너무 외롭고 무섭다고 했다.
무서웠다. 사는 게 무서웠고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무서웠고 다가올 일들이 온통 무서웠고 그중 죽음은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그것을 의사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였다. 불안. 그건 나에게 당연한 감정이었다. 베이스에 깊숙이 깔린, 버블티를 시키면 바닥에 가라앉아있는 둥글고 커다란 코코넛 알갱이처럼 당연하게 거기에 있는. 그게 없는 순간은 생각할 수가 없다. 하도 당연해서 나는 누구나 그런 줄 알았다. 원시시대에 날씨와 먹거리와 들짐승들을 걱정하며 잠을 설치던 옛 인류처럼. 오랜 시간 몸에 각인되어 있는 걱정과 불안. 그런 종류라고 생각했다.
겨울 장거리 여행을 떠나면 집의 보일러가 터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지갑이나 휴대폰을 두고 오지 않았을까 걱정하고, SNS에 그림을 그려 올릴 때마다 누군가 욕을 하진 않을까, 내가 쓰고 그리는 글이나 만화로 인해 사생활이 노출되어 곤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도 걱정한다. 내가 만든 책의 저작권이나 세금 문제 같은 것에 휘말려 골치 아픈 일을 겪게 되진 않을까도 걱정.
치매보험 광고를 보면 이렇게 살다 나도 곧 치매에 걸리지 않을까. 나는 종신보험 가입도 안되어 있는데 이대로 길바닥에서 죽으면 한 번의 목돈 기회가 날아가는 것은 아닌가. 이대로 죽으면 나의 가족에게 유산은커녕 빚만 남기고 떠나게 되는데. 엄마가 디자이너인데도 아직까지 내 아이에게 사진앨범 하나 만들어주지 못했는데.
사는 것도 무섭지만 이대로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아서 약을 먹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당연했던 걱정과 불안이 약으로 조절된다. 나는 한편으로 ’뇌가 조종당하는 것은 아닌가, 약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의사는 그런 걱정은 의사인 자기가 할 일이라고 했다.) 지금의 일상에서 평화로움을 느낀다. 평범한 일상이란 이런 기분이구나.
약을 먹지 않아도, 타고나게 멘털이 강한 사람이 있다.(가령 나의 남편.) 멘털 부자, 멘털수저라고 부른다. 부럽고 샘이 났던 적이 있다. 나는 매일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정기적으로 여행도 가고 책도 이렇게 많이 보는데. 행복해지려고 이렇게나 노력하는데. 왜 매일 유튜브나 텔레비전을 보고 잠드는 남편보다 마음이 건강하질 못할까.
약을 먹은 뒤로는 그런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른 거지 뭐. 하하. 유쾌하게 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아이가 영어 안 쓰기 게임을 하자고 하면, “엄마는 불안해서 약도 먹는데 그런 불안을 조장하는 게임은 불안해서 못해.” 하고 우스개로 말할 수도 있다.
불안은 당연하지 않다. 그걸 알게 되고는, 이전까지의 나를 연민할 수 있게 되었다. 참 힘들었겠다. 괜찮아. 이제는 죄책감도, 걱정도, 불안도 없는(혹은 적은) 세상에서 살 수 있어. 그런 감정 느껴도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서 글을 쓰고 책을 내었다. 지금 이 글도 그래서 쓴다.(기록의 목적도 있지만.) 멘털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 물론 그중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글쓴이이자 내 첫 번째 독자다.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 당신도 할 수 있어.
2023/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