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일로 받아들이는 연습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by 수달씨


면접 같은 미팅이 있었다. ‘이력서’를 쓰지 않아도 되는 삶을 꿈꾼다고 얼마 전까지 생각했었던 것 같은데. 재택근무가 가능한 디자이너 일자리 제안이 있어서 긍정적으로 고려 중이다. 조건에 문제가 없다면 아마 그 일을 하게 될 것 같다.*


미팅을 하면서 상대방은 궁금하지 않을 이야기를 많이도 뿌려놨다. 혼자 일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대화할 상대만 만나면 이야기가 활개를 한다. 1인 기업 대표, 개인사업자, 사장님과 프리랜서 사이 그 어딘가에 지내는 동안 나는 늘 혼자였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어딘가에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을 곳이 없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나는 이제 물을 곳이 생기는 걸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스스로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든, 그저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하든, 아무튼 일이 먼저다.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더없이 운이 좋은 케이스겠지. 그 운이 내게 있지 않다고 해서 섭섭해할 일은 아니다.


대배우 윤여정에게도 ‘배우’란 일이고 직업이라고 했다. 먹고사니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그동안 그 자유로운 사람이 내가 되지 못한 현실을 무수히 한탄했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나만 불행을 타고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인간과 일은 뗄 수 없는 숙명이다. 자본주의라서가 아니다. 원시시대에도 인간들은 토기에 곡식을 모으고 죽음을 무릅쓰고 동물을 사냥했다. 호숫가에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던 소로도 겨울이 오기 전에 땔감을 하고, 농사를 지어 끼니를 해결했을 것이다.


일을 한다는 건 지극히 인간다운 행위,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행위일지 모른다. 내가 꿈꾸던 일하지 않는 고요의 왕국은 가상의 세계에서나, 혹은 엄청난 불평등의 사회에서나 몇몇 운 좋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일지 모른다. 나는 일해서 먹고사는 평범한 시민이다. 그걸 깨닫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다. 일을 일로 받아들이는 연습, 그걸 하는 중이다.



* 결국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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