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요령피우는 나로 살기
실내자전거를 꾸준히 탄지 몇 달 정도 되어간다. 원래 몸에 근육이 잘 붙는 체질이라 허벅지가 상당히 튼튼해졌다. 평소에는 근육이 붙었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데 가끔 확실하게 확인하는 순간이 있다.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몇백 미터 되는 거리를 뛰거나, 지하철역 계단을 수십 칸 뛰어오를 때. 야생마라도 된 것처럼 겅중겅중 잘도 뛰는 걸 보니 정말로 근육이 붙긴 했나 보다. (내가 주로 타는 13-2번 버스는 한 번 놓치면 최소 삼사십 분은 기다려야 해서 뜀박질에 항상 대비해야 한다.)
다만 폐와 심장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지 그렇게 뛰고 나면 숨이 턱을 지나 목구멍까지 차서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집까지 한 시간 십오 분 걸린다) 숨을 골라야 한다. 삼십 분 실내자전거 운동으로는 심장과 폐 근육까지 붙이긴 곤란한가 보다. 야외 뜀박질을 추가해야 하나,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갑자기 운동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근육‘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몸 근육뿐만 아니라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명상이라던지, 좋은 습관으로 마음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는 온갖 좋은 것은 다 먹는 사람처럼, 마음에 좋다는 행위는 안 가리고 다 찾아서 하는데도 왜 아직 근육이 안 붙는지 모르겠다.)
최근에는 그림 근육, 글쓰기 근육을 길러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야만 한다. 갑자기 하려면 큰 에너지가 드니까. 예전에 은유 작가의 한 글쓰기 책에서 읽었는데 글은 엉덩이가 쓰는 거라고 했다. 책상에 붙어 앉아 있는 것이 글쓰기의 시작이자 핵심이라는 말이겠다.
그것뿐만일까. 영어 공부도, 독서도, 자기 계발도 모두 마찬가지다. 매일 조금씩. 그렇게 근육을 길러 자연스러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왕도는 없다. 지름길도 없다.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 온갖 근육으로 무장된 인간이 되어야만 할까?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도 있을 텐데. 생각만 해도 무겁고 버거워서 없는 근육이 다 아플 지경이다. 이렇게 온갖 근육을 붙인 근육맨이 요구되는 사회라니 영 골치가 아프다. 그런 세상의 요구, 혹은 자극이 견디기 힘들어서 며칠 전 다시 SNS를 지워버렸다. 성실한 사람,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는 거 안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을 사랑하라며? 지금의 내 모습을 인정하고 긍정하라며? 무엇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의 나를 긍정해야만 살 것 같아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나는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일을 미루며 적당히 책임감 있고 적당히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다. 적당한 게으름과 적당한 성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이런 나로 당분간은 살고 싶다. 다리는 튼튼하지만 심장과 폐는 약한 나여도, 그러면 어때? 세상이 말하는 좋은 사람, 건강한 사람에 나를 맞추진 말자. 지금의 나로 충분해.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 자신 기특해서 남기는 오늘의 밥값.
*<오늘의 밥값> 글쓰기를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었는데, 그것만큼 좋은 연재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서 당분간 더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이 연재에 나름의 근육이 붙었나 봅니다. 시즌2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시즌2는 전보다 더 밝은 이야기들로 채워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