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창밖이 좋아서

오늘 같은 날은 꼭 버스를 탄다

by 수달씨



버스에 버스를 갈아타고 원주엘 다녀왔다. 이동 시간만 왕복 대여섯 시간. 원주에는 내가 쓰고 출간한 독립출판 에세이집 <오늘의 밥값>을 입고받아 준 서점이 있다. 내게는 퍽 의미 있는 곳이라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게 오늘이 되었다. 날씨가 꼭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동네의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문구점과 서점에 들르는 걸 특히 좋아했고 편지지나 새로 나온 엽서, 스티커는 시리즈 별로 모았다. 가끔 친적집이나 친구들이 사는 다른 동네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새로 발굴한 문구점에서 눈이 뒤집히도록 낯설고 진기한 물건들을 구경하곤 했다. 새로운 모든 것이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버스를 탈 수 있는 중학생 이후로는 한 바퀴 돌면 다시 집 앞까지 데려다주는 순환 시내버스를 두 시간씩 타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저 창밖 풍경이 좋아서 그렇게 했다. 별 대단한 볼거리도 없었다. 동네에서 또 동네로 이어지는 길들, 작은 가게들, 가로수들, 걸어 다니는 사람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없는 음악사(악기와 테이프, CD를 팔았다) 같은 가게를 지날 때면 언젠가 꼭 한번 저기에 내려서 들러봐야지 했다. 실제로 고등학생 시절, 당시 ‘별밤’ 디제이였던 가수 이적에게 선물할 하모니카를 사기 위해 부러 버스로 한 시간 거리의 음악사에 간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악기 가게였을 뿐인데 그때의 나는 그곳의 모든 것이 신기하고 소중했다. 용돈을 털어 예쁘장한 하모니카를 골라 손수 포장해 라디오 스튜디오로 보냈던 기억. 버스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들이다.


운전을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해야 하지만, 나는 그게 좋기도 하다. 창밖 풍경이란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니까. 날씨를 돈 주고 못 사는 것처럼.

오늘 같은 날은 그래서 꼭 버스를 탄다. 하늘이 파래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흰 구름도 조금 있어서, 버스를 타지 않을 재간이 없다. 나는 도무지 창밖 풍경이 질리지가 않는다. 그렇게 오늘도 버스 여행자가 되고 말았다.



2023/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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