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려다 커피숍에 주저앉았다
아침부터 조조영화를 보러 가려고 서둘러 나왔다가 충동적으로 커피숍에 들어왔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편을 꼭 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영화를 보는 것은 머릿속에 달고 짠 뷔페 음식을 잔뜩 집어넣는 것만 같아서, 지금은 그럴 기분이 아니라고 마음이 자꾸 말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버스를 타고 나오는 길에 떠오른 생각들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불안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내가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라는 존재, 내 의도 여하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삶이라는 선형의 물질에 대해.(영화 컨텍트에서처럼 삶이 끝도 시작도 없는 하나의 원형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인지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므로.)
사실은 그렇게까지 심오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흐린 날의 창틈 사이 바람이 시원하다고 생각했고, 산과 나무들이 많이 푸르러졌다고 생각했고, 오늘의 할 일이나 하기 싫은 일들에 대해, 오늘치 불안과 오늘치 극복 방안에 대해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작가로 살고자 하는 이의 숙명에 대해서도 생각했던 것 같다. 필연코 혹은 기필코 자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숙명. 나는 인스타그램에 내 얼굴이나 가족의 얼굴이 올라가는 것도 싫고 지인이 내 게시글에 사적인 댓글을 다는 것도 싫다. 그만큼 나를 드러내는 것, 나란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그런데도 글을 쓴다. 쓴다는 것은 대체로 ‘읽음’을 전제하는 것을 알면서도. 글이란 자기를 드러내는 만큼 솔직해지고, 그렇게 내밀한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독자와도 더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나는 어디까지 나를 드러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진실해질 수 있을까.
밝은 글을 쓰고 싶다. 에세이집 <오늘의 밥값>을 출간한 뒤로도 ‘오늘의 밥값’이란 주제로 글을 이어가고 있지만, 출간 이후의 글들은 시즌2의 느낌이길 바랐다. 조금 더 즐거운 이야기들로 채워지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하다. 이번주 들어서면서 남편에게 “나는 이제 즐겁게 살기로 했어!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어!”라고 선언했다. 그러고는 먹고 싶은 것을 잔뜩 먹고 중고책방에서 사고 싶은 책을 잔뜩 샀지만 그것이 전체의 기분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약 한 봉지를 털어 넣듯, 몇 시간 정도의 효과는 된다. 의사도 약을 먹는다는 것은 몇 시간치, 혹은 그날 하루를 살기 위해서라도 말했다. 즐거움도 그 정도면 되지 싶다. 영화를 보러 가다가 커피숍에 주저앉았어도,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즐거우면 됐다. 내 즐거움은 이런 식이다. 몇 시간치 즐거움이 선의 매듭을 묶듯 간간히 이어진다. 이 선의 끝이나 방향은 잘 모르겠다. 좋은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묶은 매듭에 의지해 한 발 또 한 발 나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