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밥값 51 / 내가 살던 동네
어릴 때 살던 동네는 석남동이라는 인천의 구석진 마을이었다. 거북시장이라는 시장을 중심으로 동네가 형성되어 있었고 우리 집은 동네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골목의 치킨집이었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살았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아마도 나와 내 언니에게는 치킨 기름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언니의 별명은 ‘통닭’이었고 언니는 그렇게 부르는 남자애들을 쫓아다니며 패주었다.
가끔 치킨 배달 심부름을 하고, 작은 봉지에 소금을 넣거나 무를 담은 봉투를 묶는 일 등을 거들곤 하는 게 치킨집 딸들의 사명이었다. 부엌 찬장에서 마른안주를 훔쳐먹기도 했다. 엄마가 치킨 기계에 감자튀김이나 떡볶이떡을 튀겨주면 그렇게 맛났다.
치킨 기계에 새 기름을 부운 날이면 엄마는 손님에게 나갈 치킨에서 한 조각씩 몰래 빼서 딸들 입에 넣어주곤 했는데 그 맛은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소풍날 아침이면 가게의 테이블마다 올려둔 상자에 그득하게 양념치킨을 채워 선생님들께 갖다 드리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뇌물이나 다름없었을 엄마의 조공이지만 나는 내심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고학년이 되고는 혼자 거북시장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몇 개 없는 옷가게나 소품점을 구경하곤 했다. 시장 뒤편으로는 투견장이 있어 뭔가 음침한 느낌을 주었고 가끔 서커스단이 들어와 전단지를 뿌려댔다. 투견이나 서커스를 직접 구경한 적은 없어서 뭔가 불온한 환상의 세계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은 아저씨에게 동전을 내고 퐁퐁(요즘은, 혹은 다른 동네에서는 방방이라고 부르는)을 타는 것 정도였다. 놀 거리가 없는 시장통의 마을에서 우리는 그렇게 놀고 자랐다.
오늘따라 옛 동네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봄이 와서, 날이 좋아서, 동네를 돌아다니다 떠올린 기억일까. 아니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첫 소풍을 떠날 만큼 커버린 탓에 소환된 어떤 시절의 기억일까. 초등학교 이전 기억이 거의 없는 내겐 석남동과 거북시장을 둘러싼 골목과 가게들이 나를 키워준 고향(실제 고향은 아니다. 태어난 곳은 현재 창원시로 통합된 경남 진해이다) 혹은 나의 출발점과 다름없다. 햇살 따사로운 봄날, 비릿한 따뜻함을 주는 그 시절의 기억을 살포시 부려놓아 본다.
덧. 이 글을 쓰고 네이버에 거북시장을 검색해 보니 아직 존재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만 바로 앞에 ‘석남역’이라는 전철역이 생겼고 동네도 많이 정비된 것 같다. 지금 가면 그때의 그 모습이 아닌 건 당연하리라. 벌써 30년이나 지났으니. 사실상 지금의 석남동, 거북시장은 나의 고향이라 말하기 어렵도록 바뀌어 있겠지. 내 기억 속에서도 실제와 다르게 어딘가 조작된 부분이 있을 것이니 내가 아는 석남동과 거북시장은 아마 오로지 나만의 것일지 모르겠다. 실재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