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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n 07. 2023

‘플랜테리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물은 소품이 아니다


연일 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온도도 습도도 적당하다. 하늘은 파랗고 풀들은 초록초록 하다. 바람도 선선해서 매일같이 빨래를 널어놓고 싶은 6월의 초입.


나에게도 좋은 날씨라면 식물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특히 실내에 있는 화분 식물들에게는.

너무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아서 요즘은 아침 분무를 하지 않고 창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식물에 생기가 넘친다. 아주 드물게, 긴 텀으로 새 잎을 보여주는 몬스테라도 최근 새 잎사귀를 밀어 올렸다. 지난겨울 지나치게 가지치기를 해줘서 미안했던 보스턴고사리의 잎들도 부쩍 풍성해졌다.


건조한 겨울에는 한 곳에 모아놓고 열심히 분무해서 공중수분을 유지해줘야 하지만, 요즘 날씨엔 거실에 모아두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식물들을 이 방 저 방으로 옮겨보았다. 드라세나와 버킨은 해가 다소 들지 않는 영화방(스크린이 설치된 서재 겸 작업실 겸 영화상영실이다.)으로 가서 전자파를 막아주렴. 아이비와 스킨답서스는 침대 옆으로 가서 공기정화도 해주고 핀터레스트 속 멋진 침실 사진처럼 꾸며주렴.


이곳저곳 옮겨주다 보니 왠지 식물이 모자란 것 같다.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꽃시장에 가서 더 데려와야 하나? 조금만 더 채우면 멋진 플랜테리어*를...


그렇게 며칠을 지내고 나니 흩어진 식물들에게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거실보다 환기나 빛이 부족하다 보니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나기도 하고, 걸리적거리거나 발에 채이는 상황. 이런 취급을 받기에는 나와 지낸 세월이 꽤나 긴 식물들인데 나는 어쩐지 미안해져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았다.


요즘은 반려동물처럼 반려식물이라는 말도 흔히 사용된다. 나는 뭐든지 ‘반려’를 붙여버리면 죄책감이나 강박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까지 태도를 취하지 않지만. 기왕에 식물을 돌보기로 했다면, 공기정화라던지 전자파 퇴치라던지 인테리어라던지 하는 기능적인 목적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식물은 소품이 아니다. 그 애들도 나름 살아있고, 움직이고, 나와 소통한다(고 느낀다). 목마르면 처지고 빛이나 영양이 모자라면 잎을 떨군다. 습기가 과하면 짓무른다. 벌레가 생기면 바람이 안 통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애들을 액자처럼 빛도 없는 벽에 걸어두고, 정물처럼 창문도 없는 구석에 세워둘 수는 없다.


그런 이유로 나는 플랜테리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것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식물을 집에 들이는 이유는 각자 다르겠지만, 기왕 들였다면 그것들이 살아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소통해 주었으면 한다. 아침이 되면 닫힌 문을 모두 열어주어야 하고 집을 오래 비우고 나면 잘 있었냐고 안부를 물어야 한다. 식물을 기르는 특별한 왕도도, 죽이지 않는 비법도 달리 없다고 생각한다. 자주 죽게 한다고 너무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다만 같이 사는 동안 소통하는 것, 알아주는 것, 그거면 된다.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를 합성한 신조어로 식물을 이용해 공간을 꾸미는 인테리어 스타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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