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무얼 먹어야 하나

좋아졌다고 생각한 순간 미끄러진다

by 수달씨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소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의 원인을 알 수 있거나 해법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되도록 객관식처럼 선명하게. 상태의 인과관계나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오래 끌고 오지도 않았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사색적이고, 몸보다 머리가 더 작동하는 타입이어서 그런 것 뿐 그게 잘못된 건 아니라고 생각하려면 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억지로 짜내는 생각의 영역일 뿐 마음의 영역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마음 깊숙하게는 늘 타인과 비교하고 모자란 자신을 탓하기 바쁘다. 약이 아직 거기까지 침투하지는 못했나.


좋아졌다고 생각한 순간 미끄러진다. 두 계단쯤 올라갔다가, 그것을 인지하면 바로 한 계단 내려온다. 그래도 제자리는 아니라고 믿기 위한 셈법이다. 몇 계단이나 오르고 내렸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셈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캠핑이나 여행을 가있는 동안 약을 줄이거나 안먹곤 하는데, 다녀와서도 하루 이틀 정도는 더 안먹어본다. 환경이 좋으면 3일에서 4일쯤 약을 안먹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 정도는 좋아진 것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사실 나는 자꾸 내 마음대로 약을 줄이거나 안먹는 것을 시도한다. 빨리 끊고 싶나 보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좋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는 마음을 앞서가면 딱 그만큼 미끄러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이대로는 별론데. 자랑스럽지가 않은데.


아이가 오늘 떡볶이를 먹으면서 엄마는 무슨 대학을 나왔냐고 물었다. 나는 속으로 무슨 대학을 나왔든 무슨 소용일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봐야 지금의 나는 무기력하고 돈도 못버는 우울한 자영업자일 뿐인데. 하지만 그런 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고, 너는 대학을 갈 거니? 하고 물으며 떡볶이만 먹었다. 오늘 저녁은 또 무얼 먹어야 하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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