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아내기
브런치에 썼던 지난 2~3년 간의 글들을 매거진으로 정리해 묶고 있다. 120여 편이 넘는데 그중 절반 정도는 이미 책*으로도 출간한 내용들이다. 책을 내고 나서는 완독한 적이 없으니 예전 글들을 다시 보는 것은 출간 전 교정을 위해 읽은 이후 오랜만이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이 다르다. 당연한 말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고, 심지어 오전의 나와 오후의 나도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래서인지 예전 글들을 읽을 때면 다른 자아를 접하는 기분이다. 많이 우울하고, 곧 부러지거나 깨져버릴 것처럼 연약하고 조심스러운 나. 어떻게 그렇게 살얼음판 위에서 살았던 걸까. 안쓰러워서 어떤 글에선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내 책을 읽은 지인이 어느 대목에서 울기도 했다는 말을 듣고 왜지? 했었는데 이제 이해가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주저앉아 울기보다 약 한 봉지를 입에 털어 넣는 편이다.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추거나, 동네를 하염없이 걷는다. 편의점에서 몸에 나쁜 음식을 잔뜩 사다 먹는다. 티브이를 보면서 실내자전거를 쌩쌩 달린다.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기특하고 장하다. 살아남았다는 기분.
그래도 나는 내 글을 좋아한다. 다소 씩씩해진 지금도 좋고 연약하지만 살려고 애쓰는 예전의 글들도 좋아한다. 자기 글을 좋아하지 않으면 책으로 내기 어렵겠지. ‘자기애’라는 것은 무언가 오글거리지만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를 몰래 많이도 좋아했나 보다. 글을 좋아하면서 글 쓴 이를 싫어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애는 자기혐오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꼭 붙어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책으로 묶고 난 뒤로는 내 글을 상품처럼 대하는 태도마저 생겼다. 이 글이 다른 이에게 매력 있는 글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참 우울할 때의 글을 보면서 안쓰러워했다가도, ‘이 정도 감성이면 호소력이 좀 있겠는데?’ 싶은 것이다. 최근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글을 올리면 포인트(돈)로 환원이 되는 플랫폼에 함께 글을 올리기 시작하고는 더욱 글이 상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인기 있지는 않더라도 읽는 이에게 끌림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회수가 좀 나와서 돈을 벌고 싶다! 라고 왜 말을 못 해!)
다소 세속적인 욕망이 섞이긴 했지만 글을 쓴 나와, 글을 읽는 나를 분리할 수 있는 것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글에서, 순간의 감정에서 빠져나와 일상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살아내기 위해서였다. 대단한 삶이 아니라 일상을, 하루를, 오늘을. 글과 함께 해온 지난 시간 그것을 터득해오고 있다. 내게 글이 있어 다행한 일이다.
*<오늘의 밥값>, 수달씨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