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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un 23. 2023

농사의 맛, 이 맛이었어

어쩌다 마당 일기 29


어제는 끙끙거리면서 토마토 줄을 묶었다. 너무 몸이 아파서, 그리고 너무 하기 싫어서.


한동안 쉬던 요가를 다시 시작한 날이다. 온몸의 근육 여기저기가 소리를 지른다. 몸이 너무 아프고 정말이지 하기 싫었는데도 토마토 줄 묶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비가 왔기 때문이다. 비가 온 날은 땅이 물러서 지지대용 막대기를 땅에 박기가 편하다. 사실 이미 많이 늦었다. 토마토 밭은 잡초와 함께 정글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벌써 초록색 토마토이 알이 여기저기 달렸다. 토마토는 막대에 잘 묶어주면 위로, 일자로 자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닥을 기어 다니며 자란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땅과 잡초와 줄기와 열매가 혼연일체가 될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기 싫어, 하기 싫어’ 읇조리며 했다. 마음을 바꿔 먹으려는 노력조차 싫을 때가 있다. 그래도 그냥 했다. 정신없이 휘고 구부러진 토마토 줄기를 막대에 매는 것은 쉽지 않다. 곁순이 이미 너무 많이 생겼고 곁순마다 꽃과 알이 달려버려서 이제 와 정리하기엔 늦은 것 같다. (토마토는 위로 키가 커지도록 자라게 하기 위해 본 가지 외의 곁순을 제거해줘야 한다. 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은 아니지만, 곁순들이 너무 자라면 정글이 되고 수확량이나 열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때를 놓치지 않았다면 쉬운 일이다. 모종을 심자마자 지지대를 박고 묶어 줬더라면. 곁순 만이라도 제 때 살폈더라면. 그런 후회들을 나는 매년 한다. 작년에도 이와 비슷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투덜투덜 거리며 열몇 개의 지지대를 세우고, 줄기를 묶고, 잡초를 대강 정리하고 들어와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시골집의 찬 바닥, 등을 감싸는 냉기가 서늘하다. 피곤함에 꿈뻑 졸다 깨다. 그래, 이런 피로감이었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몸으로 하는 노동의 맛. 아무리 투덜거리며 반항해 봐도 개운하고 후련한 건 어쩔 수 없다. 뜨거운 물로 샤워 한 판 하면 더 개운하겠지. 잊고 있었던 농사꾼의 피가 돈다. 그래, 이 맛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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