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완벽한 여름

잘할 필요 없고 그런대로 잘하고 있고 - 프롤로그

by 수달씨


모처럼 해가 난 아침, 하늘은 적당히 파랗고 구름은 적당히 흘러 다닌다. 잠자리와 나비, 새들이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마당은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 소리로 가득하다.

아이스커피를 한 잔 타서 현관문 앞에 앉았다. 음악은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 공기와 습기와 바람마저 적당한 여름의 아침. 문득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완벽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생소하고 순수한 감동을 온전히 느끼며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봤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몸속에 담아두고 싶어서.


요즘은 책도 글도 그림도 다 싫어서 뭔가를 하지 않고 지내는 중이다. 사실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데 그게 그렇게 싫지가 않다. 항상 쫓기듯, 혹은 내가 쫓듯 그렇게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생각을 내려놓으니 그래도 살아진다. 하루하루가 특별한 보람이나 이벤트 없이 흘러가도 그래도 살아진다. 이 일상에 무어라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대충 ‘평온함’이랄까 ‘평범함’이랄까 그렇게 불러보는데 그것도 딱 적당하진 않다. 이것은 이름이 없다. 그냥‘일상’이다. 마치 패터슨 마을의 패터슨 씨*처럼.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는 날들.


그런 가운데 만난 오늘 아침, 나는 이 투명한 감동에 놀라서 한참이나 그 감정에 젖어버렸다. 평범한 일상에 주어진 지극히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선물의 순간을 잊고 싶지 않다. 그래서 아주 오래간만에 글을 쓴다. 글로 남기는 것이 이 투명한 감동을 훼손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워하며. 그래도 어딘가에 한 조각 흔적을 남겨두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먼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 구석 벽에 나만이 알 수 있는 흔적으로 ‘나, 다녀가’ 하고 남기는 것처럼.**



*영화 <패터슨>에서 주인공 패터슨 씨는 패터슨이라는 작은 마을에 산다. 직업은 마을버스 기사, 취미는 시 쓰기.


** 하정 작가의 <나의 두려움을 여기 두고 간다> 속 한 장면을 오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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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이어오던 <오늘의 밥값> 연재의 제목을 달리하여 새롭게 연재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연재 제목은 <잘할 필요 없고, 그런대로 잘하고 있고>입니다. 이 연재 제목은 예전에 썼던 글의 제목에서 가져왔습니다. <오늘의 밥값>을 독립출판물로 엮어 책으로 낸 이후의 글들은 차근차근 이 연재로 옮겨올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2023년 2월, 브런치의 연재 글들을 모아 <오늘의 밥값>을 출간했습니다. 2023년 7월에는 <어쩌다 마당 일기>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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