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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17. 2023

아이와 서울 여행 - 홍대 편


출근길로 분주한 아침, 신촌의 카페에 아이와 마주 앉아 이 글을 쓴다. 아이와 함께 나온 두 번째 서울 여행이다.


시골에 살다 보니 서울 구경, 도심 구경은 아이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되었다. 게다가 아이가 숙소 혹은 호텔에서 자는 걸 좋아해서 가끔 아이와 단둘이 서울로 여행을 간다. 지난 겨울에는 명동, 이번에는 홍대 앞. 유튜브에서 거리 버스킹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는지 전부터 홍대 앞이 궁금하다고 졸라대던 터였다.


우선 집 앞에서 양재동까지 가는 빨간 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에서 진행 중인 백희나 작가의 동화 전시회에 갔다. 사진도 실컷 찍고, 로봇이 만들어주는 솜사탕도 사 먹고. (이제는 솜사탕 아저씨 직업까지 ai한테 빼앗기는 거냐고 살짝 한탄을 해주고.)


그러다 보니 퇴근 시간에 정확하게 걸려버려서, 어마어마한 지옥철과 붐비는 버스를 체험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신촌까지 가는 740번 버스를 타고, 한강도 지나고, 용산 전쟁기념관도 지나고.(왜 전쟁을 기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살짝 한탄을 해주고. 기념이 아닌 추모라면 모를까.)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쯤 만에 동교동 삼거리에 도착. 어느새 거리는 저녁의 열기로 가득하다. 아이는 큰 건물의 전광판들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같다며 신기해한다. 우리가 사는 퇴촌은 8시면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캄캄해지는 곳. 하지만 여기 홍대 앞은, 진짜 홍대 앞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몇 년 전까지 혼자 칠푼이처럼 놀러 다녔던 이 길을 아이와 손잡고 걷는 밤이 어찌나 낯설고 신기하던지 한참을 조잘거렸다. 인파에 치이며 걷다 보니 만난 버스킹 현장. 아이가 유튜브에서만 보던 것을 실제로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한 순간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뉴진스의 <하입보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댄서들에게 박수도 힘껏 보내주고.


다시 한참을 걸어 또 아이가 좋아하는 치즈돈가스 맛집에 도착, 저녁을 해결한 뒤 미리 예약한 숙소(여관 같은 호텔이었다.)에서 짐을 풀고 몸을 뉘었다. 지난 명동 여행에서 겨울 특가로 너무 좋은 호텔에서 묵었던 탓에 아이는 다소 실망한 듯했지만. “엄마, 침대랑 화장실만 있으면 호텔인가요...“


바스락거리는 낯선 이불 탓에 많이 뒤척인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러 나온 카페. 스타벅스보다 맛있는 케이크를 파는 곳을 소개하겠다며 데리고 왔는데 아이가 잘 먹으니 또다시 뿌듯하다.


여행 준비라는 게 본래 그렇지만, 아이와의 여행을 준비하려면 긴장과 부담이 더 큰 게 사실이다. 동선이 너무 힘들진 않을지, 날씨가 받쳐줄지, 짐이 무겁진 않을지, 가는 장소가 안전할지 고려해야 될 점이 많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이 모든 것이 대체로 즐겁다. 아이가 즐거워하면 더욱 좋고, 나중에 아이가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나이가 될 때 이 순간들이 고생을 이겨내고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역할로 남아주면 더 바랄 게 없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가 될까. 아마 아이가 원하는 곳이 있다면 바로 그곳이 될 테지. 다른 것은 못해줘도, 공부하란 잔소리는 안 해도(아이는 가끔 나에게 “엄마는 왜 TV에 나오는 다른 엄마들처럼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해요?”라고 한다.) 여행에 있어서는 극성 엄마인 나. 어디든지 데려가 줄 테니 이 엄마만 따라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슈퍼 엄마니까.



이삼십대 내내 혼자 돌아다니던 거리를 아이와 손잡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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