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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Aug 27. 2023

아이와 광주 여행


이번에는 광주다. 아이가 좋아하는 가수(실은 엄마가 좋아해서 많이 듣게 된 것. 나는 래퍼 넉살의 소문난 덕후다.)의 라이브 공연을 실제로 보고 싶어 했는데 마침 광주에서 공연이 잡힌 것. 더불어 한 번도 타보지 못한 ktx를 꼭 타보고 싶다고 간청하여 집이 있는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역을 거쳐 전라도 광주까지 날듯이 내려왔다. 일일생활권이라는 말을 실감하며.


아이는 처음부터 “이번 여행에서는 돈을 많이 안 쓰는 게 목표예요.”라고 선언했다. 덕분에 카페에서는 핫초코 한 잔 만 시키고, 기차에서 먹는 주전부리의 즐거움도 포기해야 했지만 나의 소비욕구를 억제해 주는 파트너가 있는 여행도 나름 괜찮은 것 같다.


멀미 없이 무사히 기차 역방향 체험도 하고, 게임도 실컷 하다가 광주에 도착. 미리 찾아놓은 맛집이 있는 금남로로 이동하기 위해 전철을 탔다.(금남로, 이름만 들어도 뭔가 벅차오른다.) 광주의 전철은 실내칸에 뭔가 작품 같은 것이 잔뜩 그려져 있고, 서울보다 폭이 좁은 신기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자기가 알던 것과 조금만 달라도 신기하게 보기 때문에 나도 덩달아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밥집은 다행히 웨이팅 없이 맛있게 먹었고, 이제 공연장으로 이동. 팔찌를 받아 손목에 채우고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무대 바로 앞자리를 차지했다. 아이는 무더위 속에서도 한 시간 동안 비지땀을 흘리며 뛰고 손뼉 치고 손을 흔들고 좋아했다. 처음으로 연예인과 만나 사진도 찍고. 너무 떨려서 한마디도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해, 초등학생도 연예인을 만나면 떨리는구나 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공연과 더위의 긴 여운을 뒤로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골라놓은 식당으로 이동, 어마어마하게 맛있는 짬뽕을 먹고 숙소로 들어왔다. 호텔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이번엔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고른 게스트 하우스. 운 좋게도 호텔급의 룸 퀄리티여서 아이도 만족했다. (지난번 여행에서 여관급 호텔을 체험한 뒤라 더욱 그랬다. 자세한 내용은 <아이와 서울 여행> 편 참조. https://brunch.co.kr/@sudalcine/184​)


사실 아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숙소에서 컵라면 먹으며 게임을 실컷 하는 것. 이번엔 컵라면은 없지만 역시나 게임을 실컷 한 뒤 둘 다 일찍 뻗어버렸고, 또 역시나 아이는 새벽같이 일어나 커튼을 활짝 열였다. 통창이 보여주는 시티뷰를 한참이나 감상하고는 게임 모드. 나는 다시 자려다 포기하고 이 글을 쓴다.


이번달에만 두 번째 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했다. 나는 운전을 못해서 언제나 뚜벅이라 아이와의 여행을 계획할 때 조금 더 긴장이 많이 된다. 아이와의 여행은 큰 배낭을 하나 더 짊어진 것 같은 컨디션이라고 보면 된다. 불필요한 동선을 최대한 줄여야 하고, 내 욕심은 좀 더 버려야 하고... (이번에도 나는 공연을 기다리는 동안 카페에 앉아있고 싶었는데 아이가 공연장 로비에 쭉 있고 싶어 해서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커피값은 아꼈다.)


그럼에도 아이와 여행을 다녀보며 느끼는 것은 내 걱정보다 아이가 더 잘 해낸다는 것이다. 힘들 상황을 나는 언제나 미리 염려하지만, 의외로 아이는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여행이 거듭될수록 받아들임의 폭이 늘고 있다고 느낀다. 여행을 통해 넓은 세상을 보는 것, 시야가 넓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안의 받아들임 공간도 함께 넓어지는 것은 아닐까. 바깥만이 아니라 자기의 안쪽도 함께 넓어지는 것. 그를 통해 자신감과 자존감도 함께 고양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여행을 통해 얻는 가장 좋은 점이 아닐까.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는 나 또한 ‘내려놓음’을 조금 더 체득한다. 한 번은, 내가 식당에 손님이 많아 웨이팅이 있을까 전전긍긍하니 아이는 “걱정하는 거예요?”라고 한다. “아니, 걱정이 아니라 웨이팅이 없었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하는 거지.”라고 내가 말하니, 아이는 “그게 바로 걱정이에요.”라고 한다. 이런 아이와 다니면서 나는 나의 걱정과 근심과 지레 겁먹는 습관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아이도, 나도 결국 다 잘 해낼 것이다. 무슨 상황이 생겨도 우리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집으로, 현실로 돌아가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아갈 것이다. 이걸 배우려고 여행을 가게 되나 보다. 이걸 배울 수 있다면 여행에 드는 시간과 돈과 에너지가 아깝지 않다.


통창이 있는 숙소를 좋아하는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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