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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달씨 Jan 17. 2024

다 살 길이 있다

오랜만에 글을 적는다. 무거운 짐 같은 것을 많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깨 위에 쌓이는 눈처럼 조금씩 무거워진다. 가볍게 살고 싶다. ‘00 하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도 그만하고 싶다.


<카페는 단단하고 사장은 물렁해요>라는, 카페 사장이 쓴 독립출판물을 읽으면서 이토록 물렁한 글과 물렁한 책이라니, 라는 생각을 했다. 물렁하고 무해하다. 나도 그런 글과 그런 책을 만들고 싶다. 물렁하고 무해하게 살고 싶다.


내 이름에 들어가는 ’진‘ 자가 한자로 ’참 진‘이라서 나는 이토록 지독하게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걸까.(심지어 ’닦을 수‘에 ’참 진‘이다. 참됨을 닦는다... 언제까지 닦아야 하나?) 그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지 오래 됐고 이런 내가 이제는 싫지 않다.


아침 공기가 쨍하다. 이런 겨울을 좋아한다. 흐린 날은 참기가 어렵다. 카페 안 옆 테이블의 손님들이 연신 “발 시려!” 하며 동동 구른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커피를 시키려고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라테가 먹고 싶었는데. 얼마 전 다녀온 여행 중에 내내 읽었던 책* 때문에 ‘채식 지향인’에서 ‘채식인’이 되어볼까 고민 중이다. 쉽게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느슨하게’나마 이어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가볍게 먹고 가볍게 움직이고 가볍게 살고 싶지만 늘 마음뿐이다. 쉽게 발목을 접질리는, 딱딱하고 경직되고 무거운, 돌덩이 같은 나의 몸과 마음에 윤활제가 필요해.


비 온 다음 날, 영하의 날씨에 땅바닥이 얼었다. 등산화를 신었는데도 미끌미끌. 미끄러지는 것은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일 중 하나다. 딱딱한 내 몸이 작은 미끄러짐에도 바스스 깨질 것만 같다.


남편이 자동차 바퀴에 윤활제 같은 것을 칙 뿌렸다. 어떤 기능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 사는 방법이 있구나 싶다. 어떤 일은 다이소의 몇천 원짜리 물건 만으로도 해결이 된다. 그래, 버티지 말고 방법을 찾으면 되지. 다 살 길이 있다.


너무 겁먹지 말자구.



*<사회적응 거부선언>, 이하루 (온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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