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달씨 4시간전

빚과 빛의 알고리즘

“광장을 열어주어서 고마워”


#1.

사십 하고도 여러 해를 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현실에 가까운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좋아하는 연예인이랑 결혼하고 싶다거나, 길거리 캐스팅이나 유명인사가 되는 등의 허무맹랑한 공상을 주로 즐겼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니(저명한 문화계 인사가 내 글을 보고 나를 발굴해 주길 바란다던가) 내가 작가 프로필처럼 쓰던 문구인 ‘서점 주인이 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말 정도가 그나마 이번 생에서 어쩌면 이룰지도 모르는 꿈 정도가 되겠다. 그 또한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고 어쩌면 끝내 도달하지 못할지도. 그런 나에게 올해 처음으로 현실적인 꿈이 생겼다. 그것은 ‘반드시, 빠른 시일 내에, 최대한 노력하면 몇 년 안에, 빚을 갚겠다’라는 것이다.

내 인생에 빚이 없었던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을 덮쳤던 가계 빚의 굴레, 노느라 혹은 데모하러 다니느라 부모님께 내맡긴 채 신경 쓰지도 않았던 대학 학자금 대출, 이십 대 후반에 결혼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내었던 직장인 대출. 그 이후로는 여느 수도권 서민 가정과 마찬가지로 전월세보증금을 위한 대출과 자영업자에게 빌려주는(유일한 동아줄인) 소상공인 대출을 번갈아 타며 점점 그 규모와 단위를 늘려갔다. 부모님의 빚에서 나의 빚으로, 지금은 가정을 꾸렸으니 ‘우리의 빚‘으로. 경기도의 빌라 한 칸을 매매로 얻은 올해, 소위 ’영끌’을 위해 오랫동안 부어오던 남편 이름의 청약마저 깼다. 차마 아이 이름의 청약까지는 건드릴 수 없었지만 우리는 말 그대로 빈 쌀독을 박박 긁듯 작은 동전까지 탈탈 털었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자잘한 빚들을 정리하고 난 우리에겐 두 덩어리의 큰 빚이 남았다.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현실감각이라는 것이 살아났다. 이 빚들을 갚기 전까지 도망가지 않으리라. 아이에게 최소한 빚을 물려주지는 않으리라. 열심히 일을 받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했다. 일을 주는 그들은 나에게 그저 ’빛‘이었다. 전에 없던 친절함이 몸속 깊은 곳에서 우러났다. 이토록 지독한 자본주의라니. 이전의 까칠하고 예민하던 나와 일했던 이들에게 미안할 정도였다.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의 잭 니콜슨처럼 과거에 일하면서 만났던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미안했다고, 그때의 나는 너무 부족했다고(지금도 부족하지만) 머리를 조아리고 싶다.

 

#2.

그리고 올겨울 나는 다른 ’빛’을 보았고 다른 ‘미안함’을 얻었다. 국회 앞을 가득 메운 응원봉 인파를 따뜻한 집에서, 안락한 소파에서, 커다란 티브이 화면 너머로 보면서 많이도 울었다. 많은 빚을 얻어 마련한 이 좋은 집에서 나는 여전히 외로운데 국회 앞의 사람들은 웃고 노래하고, 탄핵안이 부결되던 그 춥고 서러운 순간에도 드론 카메라를 향해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진짜 ‘미래’라는, ‘미래’를 데려올 거라는 확신을 그 장면에서 얻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번에는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나왔다. 그야말로 아스팔트 농사다. 국밥과 커피와 핫팩이 전달되고 sns에는 이들을 후원하자며 익숙한 단체명이 예금주로 적힌 계좌번호가 돌아다닌다. 나는 국밥이 목구멍에 콱 막힌 사람처럼 한참을 주저앉아 넋 놓고 있다가 은행 어플을 열어 두 곳에 얼마를 이체했다. 이 와중에 ‘친한 사람 십만 원, 덜 친한 사람 오만 원’처럼 얼마를 내야 적당한가를 고민하는 나 자신이 싫어 현기증이 났다. 나에게 일을 주는 고객들이기도 하다. 나는 이 글을 써 동문 소식지에 보내줘야 하는데 그걸 요청한 후배도 거기에 있다. 내게 로고 제작을 의뢰한 신문사도 거기서 취재를 하고 있겠지. 패키지를 주문한 농민활동가도, 하반기 내내 만화 작업을 함께 했던 단체 사람들도 거기에…

심장이 쿵쾅거려 종종 먹는 약을 요즘에는 거의 매일 먹게 된다. 실제의 빚과 마음의 빚이 동시에 나의 바닥을 흔든다. 전에는 마음에 소요가 일 때 메모장을 열어 글을 썼는데 이제는 그도 쉽지 않다. 그냥, 버틴다. 나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빚을 갚아야 하니까.

후배가 주말까지 원고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월요일 아침이 됐다. 이번 달에는 글을 못 보내겠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글을 쓴 지 너무 오래됐다고, 요즘의 나는 입이 있어도 말을 할 줄 모르는,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쓰기로 했다.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스팔트 위 빛나는 그들을 위해, 찬 바닥에 자꾸 앉는 그들에 비해, 글 한 편 쓰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그래도 현 시국에 대한 냉철한 평론이라던가 뜨거운 정치적 열망 같은 것은 도저히 쓸 자신이 없어서 일명 ’빚투’, 나의 빚에 대해 고백한다. 이렇게 하면 집에서 티브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누군가의 마음의 ‘빚’도 국회 앞과 거리 곳곳 누군가의 손 안에서 반짝이는 응원봉의 ‘빛‘과 연결될 수 있을까. ’다시 만난 세계‘ 속에서 우리는 비록 멀리 있어도 함께라고 그렇게 ’작은 떨림‘ 전해도 될까.

 

#3.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광장에 울려 퍼지는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 속 가사처럼 울지 않고 강해질 나를 다짐한다. 그렇게 일어나 내가 하는 첫 번째 일이 아이의 아침밥을 차리는 일이거나 설거지거나 빨래거나 컴퓨터를 켜 풀리지 않는 작업의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어나 나의 할 일을 한다. 어제는 울었더라도 오늘은 다시. 당신들이 있어서 그렇게 일어나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 빛나는 사람들아, 다시 세계를 보여주어서, 광장을 열어주어서 고마워.*

 


 

*만화 <진격의 거인> 속 마지막 대사 “머플러를 둘러주어서 고마워”의 느낌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