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오늘의 밥값 12 / 인생은 어차피 똥물

by 수달씨

요즘은 딱히 할 말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굳이 몇 자 적어보려고 메모장을 열었다.

어쩐지 감정이 투명해졌달까 선명해져서 내가 지금 슬퍼하는지 기뻐하는지 지루해하는지 화가 나는지 어떤지가 잘 보인다. 그러니 오래가지 않고 쉽게 가라앉는다. 마치 마음이 흙탕물에서 맑은 물로 가는 그 중간쯤의 느낌. 모래와 물이 쉬 분리되어 잘 가라앉는 느낌이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없다. 어쩌면 평화롭고 어쩌면 지루한 나날들. 나를 들볶던 내가 없으니 시간도 많아졌다. 자주 심심해한다.


힘든 주변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이 좋다. 언제 다시 흔들려 흙탕물이 될지 몰라도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제고 흔들릴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어차피 인생은 전반적으로 똥물에 가깝다는 걸 안다. 잊지 않을 생각이다.


그래도 인생 전체적으로는 맑은 물과 흙이 반반 정도만 되는 삶이면 좋겠다. 쉬 흔들려도 곧 제 색깔을 찾아가는. 너무 깨끗하지도 더럽지도 않은 정도의 똥물이라면 이 삶도 견뎌볼 만하겠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로는 될 대로 되는 게 목표라는 어느 평론가의 말이랑 비슷한지 반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하루는 흔들리더라도 인생 전체적으로는 결국 내 색깔을 찾아가는 물처럼 살고 싶다.

그런 거면 살아볼 만하겠다.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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